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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05월
  • 1999.05.01
  • 118
DJ개혁 잔치는 끝났다?
얼마전 느닷없이 최장집 정책기획위원장이 사표를 냈다. 그 후임으로 진보적 성향의 김태동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임명됐지만 최장집 교수의 사임이 몰고온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이를 계기로 개혁 포기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보수기득권 세력이 개혁과 현정부에 대해 본격적인 공세를 전개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았다. 지난 1년동안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이 팽팽하게 맞서왔는데, 이제 정권 내부에서 최 교수를 밀어내는 양상을 보임으로써 힘의 저울추가 보수세력쪽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경제청문회에서 경제실패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재벌을 증언대에 세우지 않은 것도, 재벌개혁을 개혁 당사자인 재벌과의 협의를 통해 추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5대 재벌의 힘을 더 키워준 것도 보수세력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다.

보수세력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전직 대통령들의 최근 활동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성묘를 핑계로 자신의 출신지이자 절대적 지지기반이었던 부산 지역에 가서 현정권을 독재정권이라 규정하는 등 국민의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저급한 수준이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재개의 의욕을 보인 것은 현정부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정치 재개의 의욕을 강하게 내비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최장집사건의 정치적 의미

최장집 교수가 우리나라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 프로그램의 총지휘자나 책임자도 아니다. 그러나 보수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조선일보}의 ‘최장집 죽이기’가 있었기 때문에 최 교수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상징적인 의미를 띌 수밖에 없다. 안보상업주의의 선두주자인 『조선일보』가 최장집 위원장을 이데올로기 공세의 표적으로 삼은 것은 『조선일보』의 성향이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보수기득권 세력의 개혁세력에 대한 공세의 일환이었다. 다행히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조선일보』의 무모한 행동에 맞섰고, 법원이 양심적 판결을 내림으로써 보수기득권 세력이 다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 교수가 물러난 배경은 무엇일까?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2000년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보수계층을 의식해서 진보적인 성향의, 그래서 『조선일보』가 표적으로 삼았던 최장집 교수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같은 해석이 타당한 것이라면 국민의 정부가 개혁의 추진보다는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을 통한 임기의 안정적 보장을 택한 셈이 되는 것이다.

보수기득권 세력은 50년만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도 그 힘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지난날 권위주의 정권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따라서 국정운영의 실패로 인한 IMF 체제 성립의 책임을 나누어져야 할 보수기득권 계층은 국정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국민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정부를 호되게 질책해 왔다. 개혁에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하이에나처럼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잡기에 나섰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이른바 최장집 사건인 것이다.

DJ정부, 개혁신뢰 회복하라

국민의 정부는 보수기득권 세력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정치력 부족이 그 원인일 수도 있고, 보수기득권 세력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달리 표현하면 정권만 김대중 대통령에게로 넘어왔을 뿐 힘과 영향력 그리고 돈과 정보는 여전히 보수세력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정부는 DJP 연대에도 불구하고 소수정권으로 출발했다. 따라서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통합이 개혁에 맞선다는 점이다. 개혁의 대상을 끌어안음으로써 개혁의 정당성이 약화되고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국민통합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나라의 미래와 개혁은 더 중요하다. 보수기득권 세력을 끌어들여 개혁세력으로 만들거나 개혁세력으로 바꾸지 못하더라도 가만히 있게만 만들어도 개혁은 한층 힘있게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보수기득권 세력과 무원칙하게 타협함으로써 스스로 약점을 노출시켰고, 개혁은 보수기득권 세력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통합의 명분은 화려했으나 보수기득권 세력에게 굴복한 양상이 되었다. 무원칙한 통합의 추진은 결과적으로 개혁대상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나아가 그들에게 개혁의 칼을 맡김으로써 개혁도 실패하고 여야의 갈등, 공동정부 내의 갈등, 계층간의 갈등, 지역갈등의 심화 등 분열과 갈등만 심해졌을 뿐이다. 가재도 놓치고 구럭도 잃은 셈이다.

정부는 개혁이 잘 추진되고 있는데 개혁의 성과에 대한 적극적 홍보 부족으로 국민들이 그 성과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놓는 개혁의 성과가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내세우는, 특히 각종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 회복의 성과는 아마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회복과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북포용정책 이외에는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200만 명이 넘는 실업자에 대한 대책을 비롯 부정부패 척결, 정치개혁, 중소기업 정책, 지역갈등 극복, 정치인 사정 등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거나 별로 뚜렷한 성과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발등의 불인 경제회복에 치중하느라고 다른 분야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현정부의 개혁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을 보면 개혁의 청사진이 마련돼 있지 않으며, 개혁의 구심점도 형성되어 있지 않고, 국민의 지지도 많지 않았다. 더구나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믿었던 기본적인 개혁조치(예를 들면 양심수의 전면 석방, 종합적 부정부패방지법의 제정,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등)마저도 나몰라라 하자 개혁의 원군이 되어야 할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국민들까지도 국민의 정부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른바 ‘무늬만 개혁’인 것이다. 이런 개혁은 국민을 감동시키지도 못하고, 그 성과가 국민에게 체감되지도 못한다. 게다가 제2건국을 추진하면서 섣부르게 시민사회단체들을 한 줄로 집합시키려다가 반발을 삼으로써 개혁지원세력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의 개혁이 신뢰를 상실함으로써 온 나라의 개혁세력은 하나로 모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보수기득권 계층이 사사건건 개혁에 시비를 걸었고, 개혁은 점점 뒷걸음쳤다. 개혁은 시지프스의 바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보수세력의 도전 이겨야

개혁은 이 시대 최대의 과제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어느 지도자보다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 성향을 지녔다.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기대도 어느 때보다 높다. 김대중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개혁을 추진한다면 보수기득권 세력도 개혁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정부는 보수기득권 세력에 대해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조심스럽다. 개혁을 추진해보지도 않은 채 지레 겁을 먹고 보수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살펴온 것이다.

개혁의 필요성이 강할수록 개혁을 거스르는 역풍도 거세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그 역풍을 이겨내야 한다. 보수기득권 세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레임덕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대통령과 정부가 더 이상 잃을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선택은 개혁의 진용을 추스리고, 개혁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서 힘차게 추진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개혁의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정홍보 탓을 할 정도로 안이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제 국민의 정부가, 문민정부가 걸었던 불행한 몰락의 길을 밟지 않으려면 개혁을 중단하거나 보수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지 말고, 개혁의 심화를 통해 보수세력의 ‘도전’을 헤쳐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개혁의 정치만이 국민의 정부가 사는 길이다.
손혁재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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