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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05월
  • 1999.05.01
  • 132
시민운동의 정치학
수혈론이 한달여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 던진 한 마디가 젊은 세대들과 시민사회운동진영에 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국민회의는 당 쇄신을 위해 대표적 시민운동가들과 젊은 세대들을 대거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질세라, 신진인사의 영입을 포함한 당 쇄신을 말하고 있다. 각종 언론에서 수혈론은 흥미로운 보도거리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입대상 명단이 나돌기도 하고, 수혈로 인해 밀려날 수도 있는 중견의원들은 전전긍긍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혈액형이 같아야 수혈이 된다’거나 ‘대통령의 혈액형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 혈액형은 문제가 안된다’는 등의 농담까지 가세되어, 수혈론은 최근 중요한 안주거리이자 정치적 화두로 존재하고 있다.

수혈론을 좋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집권당이나 제도정당을 개혁하기 위해서 새로운 감수성과 비전을 갖는 젊은 세대들이 대거 충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라면 굳이 나쁘다고 할 것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수혈론이 제도정당 내의 역학관계에도 묘한 파장을 일으켜, 그동안 찬밥 신세에 있었던 당내 개혁그룹들이 상한가를 기록한다고 하니, 완전히 부정적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개혁적 정치인들을 충원하는 중요한 풀이 되었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현재 시민사회운동이 개혁적 정치 ‘엘리트’ 충원의 한 풀이 된다는 것이 특별히 이상스러운 것은 아니다. 현재처럼 정치가들이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은 그만큼 세대교체 및 인물교체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쩌면 수혈론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혈론에 대한 논란 속에서 내가 비판적으로 보는 점은 젊은 세대들이 진출대상을 집권당이나 기성정당들로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초점이 집권당을 비롯한 제도정당의 쇄신 문제에만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개혁적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젊음을 불살라야 할 현장은 과연 어디인가, 단지 제도정치 진출만인가.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제도 정치현장은 개혁적 젊은 세대가 진출할 현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개혁적 젊은 세대들이 제도정치의 현장으로 가는 것을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민주노총과 국민승리21이 추진하고 있는 ‘제도권 외곽’에 있는 진보정당추진운동도 한 정치현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정치에서 ‘당선가능한’ 당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개혁적 젊은 세대의 역할을 대단히 축소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반공주의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협소화되어 있는 제도정치의 진보적 확장을 위한 정치적 실천도 생각해볼 만하다. 앞으로 환경당 같은 실천이 나타난다면 그것도 중요한 한 영역이 될 수 있다. 사실 어떤 점에서 수혈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80년대 몇몇 명망가적 학생운동가들에 국한된 것이지 개혁적 젊은 세대 일반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제도정당만이 정치진출 현장 아니다

그러나 내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도정치를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 ‘생활정치’의 현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혈이라고 할 때 우리가 제도정당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사고 속에 은연 중에 ‘제도정치중심주의’적인 경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운동이나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유명인사가 되거나 일정하게 인지도를 갖게 되면, ‘한자리’를 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들 스스로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협소한 사고이다. 국회의원, 장관, 나아가 국무총리도 할만한 사람이지만 평생을 생활정치의 현장에서 싸우며 살아가는 것도 개혁적 젊은 세대가 꿈꿀만한 모습이다. 제도정치가들도 존경하고 감히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시민사회가 나타나야 하고, 이는 시민사회의 ‘초정치적인’ 원로와 운동가들이 많이 나타나는 데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시민운동의 현장에 있는 우리는 이미 넒은 의미의 ‘정치 현장’에 있는 것이다. 환경운동, 여성운동,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청춘을 바치면 살아가는 것, 풀뿌리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참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 ‘사회주의 붕괴’의 폐허 속에서 공동체적 실험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 ‘네트사회’ 속에서 새로운 전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생활정치의 의미심장한 시도들이다.

나는 제도정치는 생활정치라는 더욱 큰 정치의 극히 적은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도정치가 우리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중요한 활동영역이 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정치가 올바로 서는 것은 좋은 인재가 충원됨으로써도 가능하지만, 제도정치를 올바로 세우는 생활정치 혹은 풀뿌리 정치의 역량이 강화될 때, 그래서 제도정치가 바로서지 않으면 생활정치의 ‘등쌀’에 도저히 배겨나지 못할 때, 제도정치가 바로서게 된다고 믿는다.

돌이켜 보면, 87년 6월항쟁 때까지 우리 사회는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의 도정에 있었다. 87년 6월항쟁을 분기점으로 해서, 독재정권시대가 종결되고 최소한 민주적 절차와 공간이 열려지는 절차적 민주주의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87년 이후 현재까지의 과정은 바로 그러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확장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민주주의 심화의 과정은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화 수준을 뛰어넘어 본격적인 정치적 민주화로, 다른 한편으로는 절차적 민주화를 뛰어넘어 사회적 민주화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를 제도정치 혁신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생활정치의 개척 및 강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이 땅의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온전케 하기 위한 민주주의 심화의 과제가 진행돼왔다고 하면, 사회진보를 위해 기존의 민주화 역량이 사회각계로 진출하면서, 기존의 권위주의적 관행과 생활양식, 행동양식, 가치 및 태도 등을 혁신하는 생활민주화운동이 확산되어왔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는 ‘제도정치 중심주의’적 사고는 바로, 87년 이후 거대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변화의 과정을 단순히 전자의 측면, 즉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과정은 우리 사회 민주화의 한 영역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좀더 시야를 넓혀 제도정치를 일부로 하는 생활정치의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표적 시민사회운동 지도자의 제도정치 진출 반대한다

문제는 제도정치와 생활정치의 관계이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제도정치는 생활정치의 작은 일부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원칙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역량은 생활정치역량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민주화의 주요내용을 이루는 제도정치 혁신은 사회적 민주화역량 나아가 생활정치 역량이 강화될 때 비로서 가능하다. 어떤 점에서 비제도정치 역량이 강화될 때, 제도정치가 올바로 서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생활정치 현장에서 훈련된 인자들이 정치민주화의 현장으로 이동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는 제도정치를 하게 되면 임원직을 그만두어야 하는 강력한 ‘반(反)정치적’ 규약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반제도정치적’ 규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의 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을 극단적으로 분리시켜 봐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생활정치의 개척 및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민사회적 실천들이 아직 흘러넘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점에 있다. 87년 6월항쟁 이후 각계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민주화역량 및 생활정치역량은 아직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생활정치의 역량이 흘러넘칠 때에라야 비로소, 그 흘러넘치는 역량의 일부가 제도정치의 쇄신을 위한 역량으로 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운동의 ‘흘러넘치는’ 역량의 극히 적은 ‘일부’가 제도정치의 쇄신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흘러넘쳤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운동의 저수지는 풍부한 저수량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민운동 역량은 결코 ‘흘러넘치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가들, 특히 시민사회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적 역량들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반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생활정치의 현장에서 제도정치의 쇄신까지를 강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민주화의 과정은 과거 반독재운동을 하던 개혁적 세력들, 반독재민주화운동과정에서 민주적 의식세례를 받은 세대들이 사회각계로 진출하여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이었다. 반독재를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던 진보개혁적 역량들이 사회각계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이었고 사회 각 영역에서 사회진보적 진지를 만들고 그를 근거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행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친한 몇몇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거나 장관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작은 정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정부 및 제도정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영향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리는 이미 (생활)정치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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