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1287

도시안의 쉼터, 동숭동 샘터사옥

도시안의 쉼터, 동숭동 샘터사옥

도시는 사람을 위한 건물이 모여 가로의 풍경을 만들어 가며,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생명력 있는 사람살이의 터전이다. 사람들이 도시 속의 어느 거리를 지날 때 그 장소에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면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사람의 편에서 도시가, 그리고 건축물이 지어져야 함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결국 도시는 대중들의 삶속에 녹아 있는 생활문화의 진솔한 모습을 담고 있어야 한다.

서울의 도시공간에서 이처럼 생명력 있는 장소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지만 늘 사람들로 붐비고 일상의 도시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동숭동 대학로는 나름의 독특한 도시풍경을 간직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장소이다.

문화의 거리로 불리는 대학로는 이름에서 풍기듯 서울대가 자리했던 곳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네 대학들이 넓은 캠퍼스에 울타리를 치고 모든 건물을 몰아놓고 있지만 서울대가 동숭동에 있을 때는 단과대학별로 흩어져 있었다. 관악산으로 서울대가 이전하자 동숭동은 새로운 주거단지로 조성되었다. 그러면서 문리대 캠퍼스를 끼고 흐르던 하천은 물길이 아닌 자동차 길로 변했다. 그곳이 대학로이다. 편리성을 지나치게 의식해 도심에서 하천의 물줄기를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길이 자동차 길로 바뀌게 되면 도시환경의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도시민들의 생활행태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대학로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기존에 도로 가까이 지어진 집들 가운데 주거공간이던 건물들은 젊은이들을 겨냥해 소비적 성향의 시설로 대체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로는 또 다른 문화적 장소로 거듭나 있다. 문화예술이 시민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시설들이 모여 있고, 젊은이들이 찾는 몇 안 되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대학로인 셈이다. 이로 인해 이곳은 이전의 가로 풍경과 다른 도시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돼왔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지금 대학로의 도시환경을 예고하는 건축물이 세워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화공간

한국의 현대 건축계를 대표하는 거장 건축가 김수근(1986년 작고)의 설계로 지어진 샘터사옥이 바로 그것이다. 동숭동 샘터사옥은 건물의 다정함, 사랑스러움, 자연스러움, 편안함을 가득 담고 있다. 바로 건물과 길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로 통합되도록 해놓아 건물 이용자나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편안함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수근의 공간 만들기와 재료를 다루는 솜씨, 도시 속의 건축이 가져야 할 사람을 위한 공간미 등이 돋보이는 샘터사옥은 김수근의 벽돌건축시대를 대표하는 1970년대 후반의 작업이다. 이후 근처에 세워진 문예회관 대극장과 미술관, 길 건너의 해외개발원 등 그가 설계한 붉은 벽돌 건축은 대학로라는 문화거리의 성격을 독특한 가로풍경으로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요즘은 벽돌이 치장재로 주로 쓰여 잘 다듬어진 말끔한 인공적 맛이 너무 강해 보이지만 샘터사옥을 지을 당시인 1970년대만해도 벽돌은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강점이었다. 김수근은 이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주로 씀으로써 인간에 친화적인 재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이런 생각이 주변의 건물들을 설계할 때에도 지속됐다. 그래서 김수근의 벽돌 건물이 지닌 친숙함이 대학로를 한때 붉은 건물 일색으로 만든 적도 있었다. 새로 짓는 건물은 주변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붉은 벽돌을 써서 지으라는 구청의 권장지침이 만들어질 정도였던 것이다. 행정관청의 지나친 획일적 사고나 욕심 탓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김수근의 벽돌 건물은 대학로의 도시 가로 풍경을 주도하는 선도적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대중교양잡지 『샘터』의 본사이기도 한 이 건물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이 펼쳐지는 소극장과 밖을 향해 개방적인 공간구조를 하고 있는 커피숍 등이 있어 늘 사람들의 발길이 붐비는 문화공간이다. 건물이 담고 있는 이런 기능에 걸맞게 샘터사옥은 사람들을 배려한 흔적이 구석구석 엿보인다. 우선 길을 지나던 시민들이 건물로 드나들기 쉽게 길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돋보인다. 샘터사옥은 건물 앞뒤로 나 있는 출입구에 문을 달지 않고 누구나 자연스럽게 건물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게, 길이 연장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밖으로 열려 있다. 정면의 진입부에 밖으로 크게 열려 있는 공간은 지나던 사람이 공중전화를 걸기 위해 잠시 머물 수도 있고, 소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있는 길이 자연스럽게 마당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마당은 건물 앞뒤를 연결하며 자연스럽게 뒷길로 통하는 건물 안의 골목길이 된다. 그래서 이 건물 1층은 주변의 다른 길로 연결되는 통로 구실도 해준다. 건물의 1층을 비워서 사람을 위해 내어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데 그치지 않고, 건축과 도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라는 것을 건축의 공간미학적으로 실현해 보여주는 일에 해당한다.

생활공동체의 안목이 드러난 샘터사옥

건축물은 일반적으로 부동산으로 인식되어 왔다. 재산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 중의 하나가 바로 건물이라는 인식인 것이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 같은 땅이라면 가능한한 면적을 넓고 크게 지으려는 욕심이 컸다. 그래서 최대한의 용적을 확보하면 그만큼 건물 면적이 넓어져서 임대를 해도 수익이 늘어나게 되니 이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개 건물 짓기의 방식은 이랬고, 지금도 여전히 집 짓는 데에서 가장 큰 관심은 재산가치를 가능한한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학로 넓은 길에 인접한 대지에 건물을 지을 경우 땅값을 생각하면 이런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말 지어진 샘터사옥은 그렇지 않았다. 도시개발과 경제성장으로 온통 혈안이 되어 있었던 때에 이런 흐름을 깬 건물이 대학로에 지어졌다는 것은 의미로운 일이다. 땅값이 비싼 장소에 세워진 건물들이 대개 면적 활용을 높이려고 가능한한 길쪽으로 더 삐져나오고, 심한 경우 보행에 지장까지 주고 있는 우리네 도시환경에 비추자면 그런 유혹을 버리고 시민들이나 건물 이용자를 위한 공간을 조성한 건축주와 건축가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간의 생활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안목이 높은 이들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건물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외부는 붉은 벽돌의 따스함이 스며 있다. 김수근의 붉은 벽돌 건물이 대개 그러하듯 샘터사옥도 어김없이 담쟁이덩굴이 외부를 감싸고 있다. 여름철에는 푸른 담쟁이가 건물을 에워싸서 건물 외벽이 안 보일 정도로 푸르른 자연이 살아 있다.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조형성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소박하고 솔직함이 드러나 있고, 거기에 담쟁이덩굴이 드리워져 있으니 친숙한 감성이 생길 수밖에 없을 터이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을 살아가듯 공간을 나누어 시민들에게 내어주고 있는 샘터사옥은 건축이 도시에서 사람과 친화적으로 만나는 법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주연 월간 『건축인』주간·건축비평가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