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738

양심은 쇠사슬로 묶을 수 없으리

『옥중 19년』/서승 지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패배할 수 없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양심 내지는 존재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흉포한 권력에 굴복해 양심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는 의지, 그런 것이 끝까지 나를 지탱해 주었다….”(서승의 출옥 직후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옥중 19년』 p.159)

간첩, 사형수, 비전향 장기수, 고문, 분신, 굶주림, 폭력, 죽음…. 듣기만해도 등골이 오싹한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어느 한 인간의 몸과 삶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면, 그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가 끝끝내 비전향의 신분으로 감옥을 나온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서야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난로의 불길조차 꺾을 수 없었던 강한 의지의 소유자. 가공할 폭력과 고문, 공안기관과 감옥 안에서 끈질기게 이루어지는 배신과 전향의 요구.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버린 한 인간의 얼굴. 그 어느 것 하나 보통사람의 일상경험 속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극단의 경험들’이다. 서승의 『옥중 19년』은 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허구와 상상에 가득찬 소설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사실에 근거한 기록물이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치떨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서승(徐勝) 선생은 재일교포 2세이다. 역설적이게도 식민과 분단의 아픔이 이 땅보다 더 진하게 배어 있는 곳, 일본.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일교포 사회. 조총련과 민단의 건물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고 인공기와 태극기가 한 골목안에서 동시에 펄럭이고 있는 곳. 슬픈 역사가 만들어낸 바로 그 공간에서 서승 선생은 태어나고 자랐다.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승 선생이, 아니 많은 재일교포들이 견뎌내야 했던 더 큰 고통은 ‘그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유학시절인 1971년, 그는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사건’이라는 희대의 용공조작 사건에 휘말리게 됐다. 장기집권을 위한 정권의 야욕은 한 인간의 삶을 너무나도 처참하게 짓밟았고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 깊숙한 곳까지도 파괴하려 들었다.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폭력과 몸서리치게 간사한 회유가 번갈아가며 그를 괴롭혔고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으면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은 고문이 계속 되었다.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죽음과 본능적 공포 사이의 갈등

“팔을 감싸고 있던 얇은 스웨터가 타들어 가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다. 경비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지만, 기세가 붙은 불길이 어깨에서 얼굴로 옮겨오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 ‘으∼윽∼으악’하는 비명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와버렸다……죽어야 한다는 의지와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 사이에서 갈등하며 데굴데굴 굴렀다.(『옥중 19년』, p.39)

하지만 질기디 질긴 것이 목숨이었던지 타오르는 난로의 불길은 그의 육체를 휘감고 삼켜버렸지만 목숨만은 끝내 앗아가지 못했다. 이 책 『옥중 19년』에는 그와 같은 절대권력의 가공할 폭력과 그것에 맞서는 한 인간의 치열함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옥중 19년』을 일그러지고 짓밟힌 인간의 ‘억울함과 분노의 토로’로만 볼 수 없다. 이 책 전체에 흐르는 기조는 그러한 격한 감정보다는 훨씬 더 차갑고 냉철한 관찰과 서술이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흩어져 있는 ‘감옥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조각들을 철저하게 재배치한다. 『옥중 19년』의 주무대는 물론 ‘감옥’이다. 서승은 그를 가둬두었던 바로 그 ‘감옥’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보여준다. 감방의 위치, 수형자의 일상생활, 간수와 수형자의 관계, 식당과 화장실, 감옥들 사이의 차이, 계절의 변화… 20년의 긴 세월이 그 모든 기억을 가능케 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학자적 엄정함과 치밀함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되살려진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이 한 편의 책으로 그는 변변한 석사학위도 없이 일본의 유명 사립대학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의 교수가 됐다. 그가 만약 ‘투사’이기만 했다면 교수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투사’임과 동시에 ‘학자’였기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터전을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옥중 19년』은 회고록이자, 역사서이고, 사회사 연구서이자, 정치학서이며, 아련한 편지글이자, 처절한 선동문이기까지 한 복잡한 책이라는 점이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한다.

그가 그려내는 ‘감옥’은 그러나, 단순히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의 공간’이 아니었다. 70년대를 거쳐 1990년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정치변동은 감옥 안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꺾이고 좌절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수형자들의 투쟁은 감옥의 열악하고 폐쇄적인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켜왔다. 수형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담벼락과 엄중한 감시의 눈길도 그들만의 ‘통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 모든 과정을 서승 선생은 『옥중 19년』이라는 한 권의 책 안에 담아내고 있다.

기본권을 위한 거부와 저항의 몸짓

하지만 결국 이 책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전향(轉向)’의 문제, ‘사상과 양심의 자유’의 문제,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문제일 것이다.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인권대통령’과 ‘준법서약서’,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의 현실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얼마전 그나마 끝까지 비전향을 고수했던 강용주 씨를 비롯한 일부 양심수들이 석방됐지만, 아직도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지키려는 많은 이들은 그 ‘종이 한 장’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종이 한 장 쓰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죠?”라고 공작원은 자주 말했다. “그럼 종이 한 장을 왜 그렇게 억지로 쓰게 합니까?”하고 나는 반문했다.(『옥중 19년』, p.158)

『옥중 19년』에는 무수히 많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에서, 그 자신 너무나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이자 비전향수였던 서승 선생마저 고개를 숙이고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 수십년을 차가운 감옥 안에서 끝끝내 자신의 의지를 지켜내고 있는 이들이 결코 ‘거물급 인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박한 이론가도, 눈부신 전과를 올린 전투가도 아닌 이들이 고요하면서도 끈질긴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종이 한 장’을 둘러싼 지리한 전쟁.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처럼 어리석을 정도로 전향제도와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 끝내 지켜내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싸움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권력의 실체에 대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상한 웃음 뒤에 감춰진 악마의 미소가, 목숨을 담보로 끈질긴 투쟁을 벌여나가는 이들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옥중 19년』에서 드러난 절대권력의 실체는 한편으로 잔혹하고 무지막지하지만 또 한편으로 더 없이 치졸하고 초라해 보인다. 그 엄청난 힘을 총동원하고도 뼈와 살만 앙상하게 남은 왜소한 한 인간의 의지를 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앞표지엔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람의 마음은 쇠사슬로 묶을 수 없으리”. 그러나 서승 선생을 끝내 묶지 못했던 쇠사슬은 사라지지 않은 채 주위를 굴러다니고 있다. 이제 그것을 치워버리는 일이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쇠사슬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치 못하리.”

홍일표 참여연대 정책실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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