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쟁점 다섯-정보화

디지털사회, 위기인가 기회인가

얼마 전 독일의 한 일간지에선 일 년 동안 독일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로 ‘멀티미디어(Multimedia)’를 꼽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인터넷이란 말이 이 최고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이제는 단지 컴퓨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컴퓨터들의 ‘네트워크’가 중요해진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로서, 현실공간의 인간 세상과는 조금(?) 독립적인 가상공간으로서, 인터넷은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터넷을 둘러싼 정보화 논의 중에는 자본과 권력의 문화정치적인 전략이 숨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을 분리시키려는 시각이다. 그것은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을 서로 다른 세계로 이해하며, 현실공간의 모순과 가상공간에서 발생하는 모순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가상공간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온 세상 모든 이들을 만날 수 있는, 막연히 좋은 곳으로만 그린다.

사회적 불평등 심화시킬 정보화 사회

하지만 현재 그런 가상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으며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는 않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의 상업화와 규제 바람은 정보에 대한 사용자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차단시킬 것이다.

선진국들에 의한 정보통신 기술의 배타적인 사용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보다 넓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표준화 정책은 남국과 북국, 선진국과 후진국의 간격을 영구히 하여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즉 정보제국주의적 착취와 수탈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진행되는 정보화 사회는 국가정보통신기반 구축정책(The 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이하 NII), 전자주민카드제 실시, 정보통신 검열, 교육전산망의 유료화 정책 등 거대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에 있어서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94년 12월 정보통신부의 발족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존 체신부에 속해 있던 정보통신분야를 독자적인 부서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지난 95년 8월에는 이러한 정부정책을 법제화한 ‘정보화 촉진 기본법’을 제정했다. 동시에 지난 95년 3월에는 2010년까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을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초고속 국가정보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구축 종합추진계획’을 확정·시행에 들어갔다. 이 계획에는 2015년까지 산업체 및 일반 가정을 연결하는 초고속 공중정보통신망 구축계획이 포함돼 있으며, 이에 45조 원을 투입하고 이중 정부가 1조 8,000억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NII 정책은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의 초고속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 Highway) 건설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미국 내 모든 기업들을 정보고속도로/NII의 ‘핵우산’ 아래로 모아 전세계적인 정보통신산업의 흐름을 선도해 이전의 초강대국 미국의 꿈을 다시 실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자본이 동원된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들이 거대 자본의 참여를 유도하며 그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다. 결국 이렇게 되면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기업 이익만이 강조될 뿐 여타의 사회적 이익, 이해들은 무시될 것이다. 경쟁과 시장, 그리고 자본에 의존한 정보통신정책은 궁극적으로 특정 기업 등의 사적 부문의 발전만을 가져오고, 사회 전체적인 이익의 증진에는 심각한 폐해를 끼칠 것이다.

이는 향후 사회에서 중심적인 가치가 될 정보의 사적 집중과 이용을 강화시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자, 사회적 약자와 정보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즉, 미디어에 대한 공공 접근(Public Access)이나 보편적인 혜택(Universal Service) 같은 공공정책이 들어설 자리가 점점 더 취약해질 전망이다.

현재 NII 정책은 초고속 정보고속도로 건설계획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정보와 자본 측에서는 정보고속도로 건설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에서도 정보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캐나다 정보고속도로 자문위원회(IHAC)는 정보고속도로를 통해 거대 기업의 이익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일자리는 더욱 적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98년까지 전자주민카드제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전자주민카드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국민연금증,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 인감증명서, 지문 등 7가지 41개 항목의 개인신상 정보를 하나의 IC 칩 속에 담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여러 증명서의 형태로 따로 지급하고 관리하던 개인신상 정보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측은 많은 서류를 하나의 카드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매우 편리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제도가 실행된다면 우리는 이 카드 하나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값을 지불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정보를 돌아다니며 카드를 사용한 모든 곳에 남기고 오게 될 것이다. 즉,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를 거쳐서 몇 시에는 어디에 있었고, 거기에서 몇 명 분의 비용을 지불했는지 등의 일상생활에 대한 정보와 출신, 병력, 학력, 재력, 경력 등 신상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 게 될 것이다.

이런 전자신분증명제도는 뉴질랜드나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에서도 실시하려 했으나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던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진행되는 정보화 사회 모습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원형감옥의 상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다.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하는 자에게는 영 보이지 않는, 판옵티콘이라는 그 완성된 형태의 감옥이 전자 주민카드제도를 통해서 한국사회에서 98년부터 실현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 검열, 구시대적 올가미

우리 나라에는 60년대를 지나 80년대 혹은 90년대까지 금서(禁書)로 분류되는 책, 혹은 자료가 있다. 간혹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는 이런 책들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읽었다는 이유로 구속당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순간, 그 재수 없는 경우가 나에게도 닥친다면 하는 걱정이 들어 책꽂이를 살펴보곤 했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금서로 낙인 찍힌 책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게 허락(?)돼 있지 않는 말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기 위해 사람들은 ‘언더(under)’라는 공간을 활용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금서와 금언(禁言)의 열풍이 정보통신 공간, 흔히 하는 말로 가상공간(Cyberspace)에서도 휘몰아치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한 번 잘못 올렸다고 재수 없는(?) 경우를 당하거나 경고장을 받는다. 혹은, 아주 그 세상에서 추방(ID 삭제)되기도 한다. 그런 황당한 사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가 전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찜찜한 글들을 삭제한다. 그 세상에서 바로 그 말들을 추방시키곤 하는 것이다.

가상공간이 가지는 문화적인 강점은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은 기존 매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현실공간에서 누릴 수 없는 풍요로운 의사소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자기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 글은 마음에 안 들어, 저 입장은 틀렸으니 반박글을 올려야지” 등 스스로 판단하면서 자발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국가권력은 감히 토론에 참여한 사용자들의 수준을 무시하고 “저런 글은 읽으면 안 됩니다” 라며 추방시켜 버리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특징은 사용자 개개인에게 이전의 매스미디어가 차지하고 있었던 영역을 나누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개인 사용자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입장(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입장)을 직접 개진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집권과 편성권이 특정의 이해집단에게 한정돼 있던 그런 매체가 아니라 수용자 자신이 편집권과 편성권을 가진, 자신만의 매체를 가지게 된 것이다.

통신 공간의 검열은 이렇게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는 매체에 또다시 구시대적인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오고가는 말들을 통제해 그들이 원하지 않는 말들을 바로 그 공간에서 추방시켜 우리들의 의식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러한 올가미를 피해 또다시 ‘언더’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언더’란 불가능하다.

시민운동은 정보화 미래 직시해야

정보화 사회는, 자본 측이 70년대 이후 자본주의적 모순의 해결방안의 일환으로 보다 유연한 생산방식을 찾아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돼왔다. 인류 공동의 자산인 정보를 상품으로 둔갑시켜 독점하고 있으며, 정보유통의 매개가 되는 미디어를 독점해 언론-자본복합체(Media-Capital Complex)라는 권력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추진되는 언론, 재벌들에 의한 정보화는 이러한 새로운 권력형태의 창출이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거대언론 자본들은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라는 감각적인 용어로 포장된 새로운 상품을 팔면서 일반인들에게 왜곡된 정보화 마인드를 심어주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초고속 정보고속도로가 생기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일하며 훨씬 많은 보수를 주겠노라고 약속하고 있으며, 초중고등학생들에게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더 나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전자주민카드제도가 시행되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훨씬 간편해질 것이라고 떠든다.

하지만,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더 많은 실업을 줄 것이고, 학생들에게는 교육기회의 차별을 주게 될 것이다. 전자 주민카드제도의 시행으로 7급 이하 공무원들은 대량 실업사태를 맞게 될 것이고 개개인의 모든 사적 정보를 관리하는 권능을 국가 기관에 주게 될 것이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며, 공공정보는 사적 자본에게 집적, 집중돼 사적 이윤창출을 위해서 이용되는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은 정보화 사회 미래를 바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임완철 정보연대 SIN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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