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쟁점 셋-조직

지역을 중심에 세워라

‘지역을 중심에 세워라!’ 이것이 97년을 맞는 시민사회단체의 조직운동 화두다. 이는 과거 중앙집중적인 운동방식에서 탈피하려는 시민운동진영이 지역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운동의 중심을 지역에 구축하려는 것이고, 한편으로 대통령선거 이후 새롭게 전개될 시민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채비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시기 대다수 시민운동은 대정부 비판 및 감시, 시민입법운동, 국가 주요정책 입안 등 굵직한 중앙차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왔다. 따라서 지역과 중앙 간의 균형적 발전이 어려웠고, 중앙단체들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실제 ‘시민 중심의 시민운동’을 펼치기 위한 조직적 대안으로 지역운동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실제 시민운동진영은 운동의 대중화와 실질적인 참여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하는 속내를 감추고 있기도 하다.

지역운동 전략, 양적 확대냐 질적 심화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어떤 관점으로 지역운동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 경실련(현재 41개의 지역조직에 2만 명 회원, 중앙상근자 80명, 지역조직 상근자는 어림잡아 103명이라고 함) 이광렬 조직국 부국장을 만났다.

“지역에 시민단체가 생성되는 것은 지역발전의 모토가 됩니다. 이유는 지역현안에 대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상대주체’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시민운동의 오지인 강릉, 속초, 남원 등은 지역현안이 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됩니다. 이런 틀을 깨는 원동력이 시민사회단체라면 각 지역에 단체를 많이 만들어 시민사회운동을 확산해야죠. 올해 경실련 신규조직 확대전략 사업의 목표는 ‘100개의 지부조직 건설’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10개의 지부를 건설했던 경실련은 올해 서울시 구지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구단위 사업들을 세밀히 기획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에 기초한 도협의회 건설도 추진중이다. 이는 중앙에서 지역문제를 모두 담보할 수 없는 이유로 시도별 협의회를 만들어 지역현안을 해결토록 하기 위함이다. 실제 경실련에는 경기도협의회와 영남협의회가 구성돼 있고, 이들은 각각 교육비리와 낙동강 수질오염 문제로 자치단체와 충돌한 적이 있다. 이와같이 경실련은 조직의 전국화라는 관점에서 신규조직 확대전략을 폄으로써 구부터 도, 중앙까지 조직의 단일체계를 세우고 자기운동의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결의를 단단히 한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의 조직확대전략과는 상이한 입장에 서 있는 단체가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이다. 중앙환경련은 자발적으로 지역에서 환경운동단체가 생기는 것은 환영이지만, 우선적으로 지역지부조직을 건설할 계획은 없다. 환경련(현재 26개의 지역조직에 2만 5,000명 회원, 전국 150명 상근자, 중앙조직 상근자 60명이라고 함) 권헌렬 국장의 말이다.

“지역운동의 활성화는 수적 확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합리적 통합을 위해 관리할 수 있는 조직만큼만 확장한다. 앞으로 군산, 제주지역만 확대되면, 있는 조직을 안정화하도록 할 계획이다. 질적 결합력을 높이고 사업내용을 심화시키는 작업을 중심으로 펼친다. 앞으로 전문환경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조직운영을 확보하면 ‘지역 뿌리내리기’에 집중한다.”

지역조직 건설에 있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은 경실련과 환경련이 각각 조직의 역사와 뿌리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라는 중요한 양대 축을 나눠 지역운동의 중요 관점으로 삼는 시민단체들이 지역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경실련 이 부국장의 말이다. “여천공단 환경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앙경실련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성명서를 급조해 날리는 정도였죠. 대응할 게 없더라구요. 그때 지역문제는 지역이 푼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깨달았고, 중앙의 편협한 생각을 역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습니다.” 이런 상황이 중첩되다보니 경실련에서는 전면적인 조직확대전략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래서 앞으로 중앙경실련은 정책생산 및 개발, 지역경실련은 실제 실행단위로 움직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환경련은 여기에 “현장강화론”을 덧붙인다. 권 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역운동이 고민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다 한들 실행할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환경련은 ‘직접 투쟁방식’ 중심으로 지역운동전략을 짭니다. 지역주민과 활동가가 함께 부딪혀 지역현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중앙의 상근인력을 팀제로 전환하고, 앞으로는 활동가 역량도 대폭 지역으로 배치할 겁니다.”

현재 경실련과 환경련뿐 아니라 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이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도 지역운동 활성화에 대한 원천적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29개 단체가 회원조직으로 결합한 여연의 97년 지역운동전략은 ‘풀뿌리 여성조직 건설’이고, 전국의 부문별 계급계층 조직인 전국연합의 지역운동 고민은 모든 시민사회단체간 연대의 폭을 확장하고 사안별로 공동대응하는 평상적인 연합전선운동의 확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동안 중앙과 지역간 ‘관계’에서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여연은 역할규정 때문에 지역·중앙간 문제가 있었다고 남인순 사무국장은 전한다. “중앙차원에서 시민단체협의회 가입을 제안하려다 안 돼 원하는 단체별로 개별적 가입을 하기로 했죠. 단체간 균형적 역할규정의 문제가 참 중요하더군요. 그래서 여연은 정책과제 개발과 생활자치 지도력 훈련, 여성단체 네트워크 지원 등 지자체를 겨냥한 생활과제 공동전략회의에 집중할 것이고, 회원단체들은 직접적인 시민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는 행동전략을 짜는 것을 중심에 세울 작정입니다.”

또다른 문제는 지역 안에서의 네트워킹 문제다. 경실련 이광렬 부국장의 말이다. “과천에는 과천시민모임이 있고 과천경실련이 없어요. 참여연대의 입장이라면 지역에서 잘 하는 단체와 연대한다는 전략을 세우겠지만, 경실련은 일단 과천시민모임에 경실련 만들려한다고 노크해요. 한 지역에 여러 단체가 있으면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지 잘 하는 단체가 있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올바른 시민운동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소통로 확장과 도시개혁운동

이런 다양한 문제의식 속에서,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성장한 환경련이 지역운동 활성화 방안의 핵심으로 지적한 것은 지역단체와의 ‘의사소통로 확장’. 권 국장의 말이다. “지역단체 모두가 모이는 사무국장 회의를 매달 개최하고 여기서 대다수 사업이 결정되지만, 여전히 중앙과 지역이 부딪히는 문제는 의사소통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중앙·지역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의사소통체계의 전용선을 확보하려고 준비중입니다.” 실제 환경련은 의사소통의 곤란으로 몇 번의 오류를 경험했다고 전한다.

“위천공단문제 때문에 지역과 문제가 있었는데, 지역은 개발반대가 주민으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면서 주민의견을 따르자는 것이었고, 중앙은 아무리 주민의 생각이 개발찬성이라도 그린(Green) 이념에 벗어나는 문제를 따를 수 없다는 생각을 견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죠.” 지리산 반달곰 멸종위기 문제만 해도 지역에서는 밀렵 밀거래 문제에 포인트를 맞추지만, 중앙은 유한계층의 소비문제로 접근하는 차이가 드러난단다.

경실련 지역운동 활성화 방안도 ‘의사반영구조의 체계화’란다. 그러나 경실련 지역운동전략의 사실적 핵심은 ‘도시개혁운동’이다. 살맛나는 건강한 도시,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도시, 시민이 참여하고 시민이 주인되는 자율적인 도시건설을 원칙으로 하는 이 운동은 지난 7년간의 경실련운동을 되짚고 2기 경실련의 출범을 알리는 첫 신호음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 조직국장 하승창 씨는 “문제는 참여공간이 협소하고 지역에서 중앙의 일을 멀게 느낀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자꾸 동력이 떨어지고, 그렇다면 대안이 뭐냐? 각 도시를 어떤 도시로 만들거냐, 몇 개의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고 모든 지역이 고루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은 뭔가를 고민하다 도시개혁운동이 태동된 거죠. 도시개혁운동은 복지와 교육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한 도시 사례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운동의 이슈를 생활 전체 규율과 사람에 관심갖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며 도시개혁운동을 개괄했다.

전국연합은 지역운동 활성화 방안을 교육훈련사업으로 잡았다. 중앙의 요구를 제외한 지역주민의 요구가 뭔지, 그것을 위해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지역운동 워크숍을 몇 차례 가졌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는 게 박홍순 조직국장의 변이다. 그러나 이런 전국연합의 고민과는 배치되는 지역연합조직들이 있다. “진보적 시민운동방식에 공감은 하고 있으나 민중운동에 익숙한 지역단체들이 실제로 움직일 여력이 없는 거죠.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지역, 그렇지 않고 민중운동을 지향하는 지역간 편차도 심각합니다. 그렇지만 다수 연합조직은 앞으로의 전국연합 조직발전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긍하는 편이죠. 실제 진보적 시민운동의 내용을 받아안고 실천하는 몇 개의 단위조직이 있습니다. 인천연합은 인천환경련과 연대하여 핵폐기장 반대싸움을 펼쳤으며, 울산연합은 울산시 버스요금인상반대와 공동배차제 실시 싸움을 했죠.”

현재 전국연합은 과거 대정권투쟁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민의 생활상의 이익, 요구, 자주적 권리의식 등 생활밀착형의 진보적 시민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해 구상중이다.

각 지역단체와 수평적 네트워크 구축도

이런 지역지부조직 건설보다는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을 지향하는 데 무게를 더 두고 있는 시민단체는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이하 참여연대)다. 참여연대가 네트워크 조직을 지향하는 이유는 지역 내에서 한 단체의 힘을 키워 지부를 만들고 이로 지역 내 패권주의를 형성하는 것은 올바른 시민운동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지역에서 자립적이고 활동력 있는 단체들에게 조건없이 지원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가 표방하는 수평적 지역운동 네트워크의 상은 개방적인 연대운동, 정보 자원 인력 사례 경험의 집중과 유통의 장 건설, 지역운동간의 공동사업 및 협력의 틀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런 참여연대는 현재 20개 지역단체들과 네트워크 조직을 유지하면서 지역운동 간담회와 워크숍을 열고 있다.

현단계 참여연대의 지역운동 수준에 대해 지방자치센터 김민영 간사는 이렇게 전한다. “현재 참여연대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역단체들은 조직의 규모와 수준이 다 다르지만, 일단 참여 의사가 있는 단체들은 모두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북시민운동연합이 전주에서 시민운동을 준비하는 모든 그룹들을 대표해 참석하면서 수평적 네트워크의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것과, 다른 작거나 큰 지역단체들이 참여연대를 정보유통과 집중의 장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참여연대는 97년 지역네트워크사업으로 참여민주주의적 시민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사업(지역구 국회의원 감시운동, 자치행정의 투명화와 주민참여를 위한 5대조례제정운동, 작은권리찾기 캠페인)과 주민생활최저선확보운동과 관련된 공동사업(지역사회복지실태에 대한 기초조사, 지역복지과제에 대한 여론 형성 및 요구운동, 복지관련 조례제정운동)을 각 지역네트워크단체에 제안하고 있다.

확대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 도전

97년을 맞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처럼 다각적으로 전체 시민운동내의 지역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시민이 주인되는 시민운동, 아래로부터의 시민운동,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세 가지를 모색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고리가 지역운동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확대·심화·발전시키려는 전략 짜기에 여념이 없다. 또 제 시민사회단체들은 참여와 자치, 그리고 연대의 담론으로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의 정형을 만들고자 애쓴다.

이런 노력들은 80년대 ‘민중운동’에서 90년대 ‘시민운동’으로 운동의 중심이동이 이뤄진 것처럼, 97년 대선 이후 새롭게 전개될 21세기형 시민운동의 상은 지역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지역운동’으로 잡힐 것이라는 관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지역단체들이 지방자치단체에 일정 정도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런 힘의 역관계로 소위 정부나 기업 등 개발동맹에 대한 ‘사회적 대안세력’으로서 지역단체가 올곧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역운동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려는 거다. 제 시민사회단체에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마련중인 지역운동전략은 앞으로 구체적인 지방분권화를 이루고, 보다 확대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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