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쟁점 넷-재정

체질 개선하면 돈이 보인다

최근 들어 시민운동단체의 재정문제가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비판의 요지는 시민운동의 재정이 지나치게 기업과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재정의 건강성 회복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재정문제와 관련된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당장 필요한 재원 확보에 급급한 형편이고, 그래서 결국 기업과 정부에의 재정의존도는 줄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렇듯 시민운동단체의 재정문제가 불거진 것은 고도성장의 당연한 귀결이다. 현실적인 역량의 한계를 전업적 활동가의 집합체인 사무국을 강화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돌파하려는 시민운동단체들의 발상은 어떻게 보면 제3공화국 시절의 개발독재논리를 연상케 한다. 민간부문의 자발성과 활력을 제쳐놓고 상명하복이 특징인 관료조직을 동원해 군사작전을 수행하듯이 추진했던 것이 한국의 경제성장이요, 개발독제체제였다. 마찬가지로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소수의 전업적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를 주도적으로 개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결과 시민운동단체는 시민참여에 기반한 바닥역량을 충실히 강화하기보다는 언론이 제공하는 허상에 사로잡혀 엘리트적 활동에 일관했던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의 재정문제는, 결국 압축성장했지만 구조적으로는 허약함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시민운동의 체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운동단체들의 재정에 있어 구체적인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며, 현재의 조건에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재정문제 하나-참여 없는 운동구조

회비를 포함해 시민단체의 재원을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회원회비(개인 또는 단체), 각종 프로그램 참가비, 기업체와 정부의 후원금 및 기부금, 기업과 정부의 연구(프로그램) 용역 등이다.

우선 회원회비(프로그램 참가비도 넓은 의미의 회비)가 잘 걷히지 않는다고 한다. 회원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운동의 단절이다. 80년대 현장을 가득 메웠던 활동가들 중 새로운 시민운동단체에 전업적 활동가로 둥지를 튼 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그룹들은 시민운동의 주체로 전환되지 않았다. 그들 자신의 패배주의도 원인이지만 시민운동이 구 사회운동과는 ‘단절’을 통해 성립됐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의 전략적 선회가 아니라 80년대 사회운동의 부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회원들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쩌면 지금과 같이 거대 사무국과 중앙중심의 조직구조로는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시민운동이 풀뿌리(grassroot)운동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소수의 활동가와 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한 평범한 생활인, 평범한 시민, 평범한 회원들의 참여구조는 없다. 참여가 없으면 관심이 멀어지고, 관심 없이 회비를 내기는 어렵다. 중앙단체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단체의 중앙조직은 정책개발, 정보교류, 지도력 훈련, 중앙정부 감시 등에 주력하고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의 근거지는 지역조직, 풀뿌리조직으로 넘겨야 한다. 지방자치를 통한 정부의 분권화가 지방의 활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편인 것처럼 시민운동의 분권화가 시민참여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재정문제 둘-기업과 정부 의존도

시민단체의 재원 가운데 논란의 대상은 후원금 및 기부금, 연구(프로그램)용역 등이다. 후원금이나 용역도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다는 구성비와 사용처, 성격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고 본다. 바람직한 구성비의 절대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경우나 이러한 재원이 사업비보다는 경상비(인건비, 유지비 등)에 투입되는 경우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럴 경우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이러한 재원은 안정적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한 까닭에 시민운동단체의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시민운동단체가 자신의 고유한 과제를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시민운동단체가 단체의 고유한 목표와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돈이 되는 사업만 하게 되거나 또는 우선순위에서 밀리지만 용역 발주자가 제시하는 과제를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종래에는 용역 파트너(발주자)로부터 제안만 있으면 파트너의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것이나 수용함으로써 결국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는 일이 많았다. 인천에서 한 단체가 당시 지역사회의 현안으로 부각됐던 매립지 시공사로부터 용역을 받은 것, 무주리조트 건설과 관련해 용역을 받은 것, 현재 미제로 남아 있는 시화호의 시공사인 수자원공사로부터 억대의 용역을 받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몇 가지 해결방안과 대안들

앞서 지적했듯이 시민단체의 재정문제는 시민운동의 구조문제다. 따라서 단체들이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원론적으로 시민운동의 체질개선을 통해서 가능하다. 분권화를 통해 시민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시민참여 확대는 회비수입을 늘리는 밑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개편을 통해 시민운동단체는 부수적으로 중앙사무국의 감량화를 이룰 수 있고,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재정문제 해결과 직접 관련이 있는 방안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제도개선

현행 기부금품 모집 금지법은 어떠한 공개적인 모금행위도 실질적으로 불법화하고 있다. 거의 사문화된 법률이기는 하나 지난 해 필자가 속한 단체에서 북한 수재민을 위한 가두모금을 계획하고 이를 시행하고자 했을 때 통일관련 부처에서 이 법률을 들어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선진국가에서 보듯이 시민운동의 가두모금, 호별방문 모금을 비롯해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금 캠페인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법률이 개정돼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기부행위에 대해서는 임의단체의 경우에도 기부자가 세제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세제도 바꿔야 한다.

그밖에 미국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우편을 통한 모금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데, 이 경우 상대방이 개인수표를 넣어 회신하는 경우에만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우리도 도입하는 방안, 시민운동단체가 회비 또는 기부금 모금의 수단으로 지로나 신용카드 전표 등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모금을 위해 공영방송 채널(공중파TV, 케이블TV, 라디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있다.

공적 기부 캠페인

우리사회 안에 공적 기부(Donation)가 활성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단체의 공동 캠페인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종교적 신앙을 공유하는 원로 몇 분이 시작한 ‘재산상속 안하기 운동’ 같은 게 사실은 시민운동단체를 통해서 확산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생을 마치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공익기금(Fund)이나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경우가 일반화돼 있다. 우리라고 못하란 법이 있는가? 평소에도 자신의 소득 가운데 얼마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일종의 시민적 경제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캠페인에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외국의 어느 기업은 자기 회사 사원이 특정 단체에 기부금을 내면 해당 액수만큼 그 사원 이름으로 보태준다고 한다. 이것도 일종의 매칭펀드 개념인데, 그밖에 기부의 다양한 방식과 형태, 필요성, 의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 일은 한 단체가 할 수 없다. 시민운동단체들이 공동으로 기획해서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공공요금의 면제 또는 차등 적용

시민단체의 지출 가운데 전화비, 전기료, 우편요금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대부분의 공공요금 책정에, 용도에 따라 차등을 두듯이(산업용, 공공용, 가정용, 상업용 등) 시민단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민단체 지원특별법 등을 통해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우편요금의 경우 정식으로 등록된 간행물이 아니더라도 공인된 시민단체에서 발간하는 인쇄물이나 서신에 대해서는 낮은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 그밖에 단체에서 각종 비품구입시 특소세를 면제하는 등 공무원에 준하는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 전용선을 저렴하게 제공해주는 방안 등이 있다.

공공시설 활용 방안

시민운동단체가 기본적인 사무국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을 갖추고, 나머지 각종 토론회나 교육프로그램 장소로는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실비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또는 자치단체별로 이와 같은 시설을 마련해 시민운동단체가 사용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익 기금을 설립하자

회원회비로 활동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들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또는 기업에 재정의 일부를 의존하는 구조는 시민운동단체의 독립성을 해친다. 시민운동단체가 재정의 100%를 회원회비로 충당하는 것이 이상이자 목표지만 선진사회의 시민운동을 보더라도 이러한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결국 시민운동의 독립성도 해치지 않으면서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절충장치는 각종 공익기금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청소년기금, 마약기금, 평등기금, 녹색기금, 주택기금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수천 개의 공익기금이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시민운동단체가 주축(Initiative)이 되어 설립한 것도 있지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앞장선 것과 기업이 설립한 것도 많다. 대개는 민, 관, 기업의 3자가 함께 출연한 경우가 많다. 시민운동단체나 지역사회운동가(Social Worker)들은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이러한 기금에 신청하고,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금이사회는 이를 심사해 기금운영의 방향과 지원대상을 결정한다. 가까운 일본의 가나가와현 정부는 ‘민간협력기금’을 조성해 역내의 민간단체들이 제3세계 국가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시민운동지원기금’이 만들어졌으나 정부나 민간기업의 참여가 거의 없다. 아직 우리 정부의 발상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녹색서울시민위원회를 만들어 민간환경단체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실질적으로는 지방정부의 재원이 시민단체에 직접 전달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단체장이 교체되면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불완전한 형태다. L그룹이 만든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지원기금’은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L그룹의 영향권 하에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한 문예진흥기금이나 체육진흥기금은 운영을 정부가 직접하거나 하부조직화돼 있는 기구를 통해 정부에 의해 운영이 독점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부나 기업이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시민운동단체를 직접 통제하거나 또는 생색을 내겠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발상의 전환을 이루도록 촉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익기금의 설립이 용이하도록 관련법규나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선행돼야 한다.

재원 마련에 원칙을

시민운동의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앞서 열거한 의식개혁과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시민운동단체는 불가피하게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에 손을 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이라도 최소한의 원칙과 자존심은 지켜야 할 것이다.

시민의식을 바꾸고, 제도를 고치고, 새로운 기금을 설립하는 등 앞서 열거한 변화를 이루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시민운동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상과, 지금까지 시민운동단체가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기울인 노력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

이런 과제들은 시민운동단체가 힘을 모아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일이다. 한두 단체의 힘으로는 되지도 않을 뿐더러 명분도 약하다. 지금처럼 제한된 자원을 나눠먹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명분을 높여야 하고, 명분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무국을 키워야 하고, 비대한 사무국은 다시 재정압박을 가져오고, 재정압박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돈의 색깔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용역경쟁을 벌이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앞서 말한 과제는 일단 파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시민운동단체가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일구는 것이다.

윤석규 안산 YMCA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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