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9월 2010-09-01   1166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미국의 대 이란제재 동참여부에 따르는 독과 실

미국의

대 이란제재 동참여부에 따르는 득과 실

글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란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서울에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고 하면 “그래요?” 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곧 얼굴이 환해지며 멀리서 온 한국의 여행객에게 친근감을 내비친다. 서울 강남역 네거리부터 삼성역까지 4㎞에 이르는 주요도로의 이름이 바로 ‘테헤란로’다. 1977년 이란 테헤란 시장이 서울시와의 자매결연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붙여진 이름이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 사이의 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운 탓에 전쟁에서 패하자,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과 친미국가들을 혼내주려고 석유수출을 중단했었다. 그래서 일어났던 제 1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우리 한국인들은 ‘석유의 힘’(이슬람 산유국들의 힘)을 새삼 확인했었다.

한미동맹이 우선인가, 이란과 교역에 의한 국익이 우선인가

따지고 보면 이란은 한국으로선 매우 중요한 중동의 교역국이다. 이란 테헤란 거리를 메우고 있는 자동차 3대 가운데 1대꼴이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 또는 프라이드의 이란형 모델인 사바(SABA)다. “프라이드는 이란의 국민차”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동차뿐 아니다. TV,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75%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란의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면서 마련하는 가전제품 4대 가운데 3대가 한국제품인 셈이다. 테헤란 중심부의 전자제품을 파는 가게들은 한결같이 SAMSUNG이나 LG 로고를 크게 붙인 간판들을 내걸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석유와 가전제품을 포함해 한국-이란은 한해 교역규모가 10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세계 제 2위의 석유 매장량(1위는 사우디아라비아, 3위는 이라크)을 지닌 이란으로부터 해마다 전체 원유수입량의 10%쯤을 들여온다(2009년은 9.5%, 47억 달러). 한국의 대 이란 수출 규모는 자동차, 가전, 중소기업 제품 등 40억 달러. 그리고 한국 건설업계와 조선업계 기업들이 이란으로부터 10억에서 20억 달러에 이르는 공사계약을 따내왔다.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한국-이란의 관계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우방국가나 다름없다. 이란 사람들에게 한국은 먼 나라가 아니다. 한국의 인기 드라마 ‘대장금’이 이란 TV에서 방영될 때는 시청률이 80%에 이를 정도였다.

  잘 알려진 바처럼 이란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다. 지난 1979년 2월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툴라 호메이니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혁명(이른바 호메이니혁명) 뒤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끊었다. 이란혁명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40%의 지분을 지녔던 이란 석유이권(나머지는 영국 40%, 팔레비 왕조 20%)을 잃은 것이 미-이란 외교관계 악화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논란의 핵심은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다. 그렇지만 이란 정부의 공식입장은 어디까지나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론’이다. 사우디에 이어 세계 제2의 석유자원 보유국인 이란이지만, “언젠가 다가올 석유고갈에 대비해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이 북한처럼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만들 것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지난 6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통과시킨 제 4차 이란 제재 결의안(1929호)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이끌어낸 외교적 승리의 전리품이다. 그 결의안은 △이란 은행들에 대한 제재와 거래 감시, △이란에 대한 유엔 무기금수 조치 연장 △이란으로 금지대상 물품을 운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공해상 조사와 압류조치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대 이란 제재 결의안을 엄격하게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다. 문제는 이란과의 교역관계가 많은 우리 한국을 향해 미국이 강력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요구 가운데 하나가 이란 멜라트 은행 서울 지점의 자산동결 혹은 폐쇄다. 나아가 미국은 한국 기업들의 동참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이란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사정을 잘 꿰고 있는 이란의 고위관리들도 “만일 한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한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이란 시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유대인들이 한미 대외정책 주무르나

한국 정부는 미국 눈치 보랴, 이란 분위기 살피랴 곤혹스런 모습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정부의 선택기준은 어떠해야 할까? 당연히 국가이익이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이란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 제 2의 석유대국 이란과의 좋은 관계는 한국이 절실하게 바라는 유가 안정과도 맞물린다. 미국이 앞장 선 대 이란 압박대열에 한국이 함께 줄을 선다면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한국에 이롭지 못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 국민적 비판 여론에 아랑곳없이 아프간 지방재건팀PRT을 파병했던 이명박 정부가 이란 제재에 동참해 또다시 한미동맹의 들러리로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끝으로 생각해볼 점 하나. 지정학적으로 이란은 미국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 사정거리 3천 km의 샤하브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 중인 이란이지만, 미국의 본토를 위협할만한 처지도 못 되고 능력도 안 된다. 그런데도 미국은 왜 이란이 ‘평화적으로 이용’하겠다는 핵에너지 개발문제에 그토록 과민반응을 보일까. 그 해답은 두 사람의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미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2006년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발표한 ‘이스라엘 로비’라는 글에 담겨있다. 요점은 “미국이 이란 핵개발 문제에 그렇게 신경 써야할 절실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에 매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이란을 봉쇄하는데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이란 제재에 나선다면? 유대인들의 손에 한국의 국가이익과 대외정책이 놀아나는 셈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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