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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09월
  • 2010.09.01
  • 682


자본에 포획된 주류문화,
그 사이에서 문화다양성 모색하는 사람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



강지나 참여사회 편집위원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테이프를 듣고 흥얼거리거나 기타 하나 잡고 ‘그날이 오면~’ 같은 노래를 합창하던 광경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에 노래할 때는 가사는 기본으로 외우고 있었고, 노래를 잘 부르는 한 개인의 기교나 춤보다는 어떤 정서를 함께 공유하고 느낀다는 것이 중요해서 가슴으로 울부짖듯 합창을 했던 것 같다. 그 많은 노래들은, 그 노래를 함께 부르던 문화는 지금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질문을 따라 한때 민중문화기획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다음기획의 대표로 있는 김영준 씨(48세)를 만나보았다.

  다음기획을 찾아가는 길. 홍대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기획사 사무실 앞에 오니 여고생 둘이 기웃거린다. 팬들(혹은 가수지망생?)의 모습을 보며 다음기획 소속 가수들, 방송인의 인기가 실감났다. 기획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준 대표는 큰 키에 목소리도 우렁차고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호인이었다. 역시 민중문화를 선도하고 지금은 대중문화 속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사람다운 풍모가 느껴졌다. 김 대표는 대학시절 노래패 ‘새물결’ 활동으로 문화예술계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때도 그는 가수로 활동하기 보다는 기획, 연출을 담당했었다.

  “84년 학원 자율화조치를 통해서 문화운동을 표방하는 서클들이 대학 내에 많이 생겨났다. 그 당시에 문예패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순수했던 거 같다. 어떤 목적의식 없이 단지 주류문화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을 갖는 흐름에서 그런 문화가 생겨났다.”


자본에 포획당한 문화

선후배 모두 모여 둥그렇게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 한 곡조씩 돌아가면서 뽑고, 그 노래가 때로는 합창이 되기도 했다. 대중집회가 있는 날이나 문예패 공연이 있는 곳에서는 ‘꽃다지’나 ‘노찾사’같은 유명 노래패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92년 서태지와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문화의 판세가 바뀌었다. 노래는 가사가 있고 마이크에 반주가 있어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대학축제에서는 고 김광석 씨나 안치환 씨가 부르는 민중가요보다는 TV에서 보던 화려한 춤과 무대 매너를 겸비한 인기연예인이 등장했다. 

  “자본으로부터 포획당하지 않는 소비문화는 없다. 80년대와 90년대를 구분하는 문화적인 소비행태를 보면 그 지점에서 나뉜다. 90년대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주류문화가 쏟아내는 상품을 단지 소비하는 세대였고 80년대까지는 주류상품의 메커니즘을 거부하는 대안적인 형태의 민중문화가 존재했었다. 노래로 치자면 ‘노찾사’가 대표적인 그룹이라고 볼 수 있고 일정 정도 주류시장 진출에도 성공했었다.”

  안치환 씨나 권진원 씨의 노래가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90년대 서태지류의 새로운 문화가 대중문화의 주류를 장식했다면 그 밑에는 면면히 다른 대안적인 문화의 형태도 흘러오고 있었던 거 아닐까? 지금 흔히 7080문화라고 하는 코드도 거기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들의 생산능력을 놓고 보면, 80년대를 풍미했던 대안적 문화를 생산했던 주체들과 그 토대가 현재 너무 빈약하다. 내가 민중문예판을 떠난 지 15년쯤 되는데, 실제로 작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그런 판을 짤만한 문화적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없어졌다. 과거의 화려했던 문화 주체들의 생산능력이 퇴행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주류상품에 대안이 될 수 있을 만한 콘텐츠를 제대로 못 만들어낸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자본의 속성을 넘어설 수 있는, 그나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사실 우리 주위에 자본에서 자유로운 문화행태라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 곰곰이 따져보면 비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소규모 클럽들을 전전하는 인디밴드들은 자기 앨범 하나 내기 위해 몇 년을 무명으로 버텨야 하고, 인디 영화나 저예산 영화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근근이 버텨오던 것이 올해는 그 예산마저 삭감되었다. 그 뿐인가? 대학로의 연극인들은 몇 년 동안 혹독한 투자 가뭄을 겪으면서 생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디 문화든, 상업 문화든 다양성이 보장되고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그 비옥함 속에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이 피어날 텐데 한쪽으로만 쏠리는 현상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음악이 음악 외적인 요소로 장식되는 시대

자본에 포획당한 문화산업은 그 상품 자체의 형태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한국사회가 국가주도의 고속성장을 달리던 시기에 문화적 행위는 삶의 가장 마지막 순위에 처져 있었다. 자칫하면 딴따라나 퇴폐적인 것으로 딱지 부쳐지기 일쑤였고 그저 TV에서 해주는 ‘젊음의 행진’이나 ‘주말의 명화’정도에 만족했었다. 그러니 용돈을 모아 LP판을 사 모으고, 음악 감상을 위해 DJ가 있는 음악다방에 가거나, 기타를 사서 코드 연습을 하는 것들은 매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노력하지 않아도 도처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작은 MP3 플레이어만 있으면 아니 핸드폰만 있어도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새로 나오는 가수들은 숫자도 많고 자주 바뀌어서 한 그룹의 이름을 다 외웠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그룹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되기를 꿈꾸며 불철주야 노력하는 청소년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었다.      

  “과거에 음악은 듣는 것 위주의 감상용 콘텐츠였다. 이제 음악은 의상이나 춤 같은 비주얼적 요소도 강해야 하고, 음악적 기술도 첨단이고, 가수 관련 상품 마케팅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체도 그렇다. CD는 곧 없어질 거 같고, 아이폰같은 스마트폰이 유비쿼터스처럼 테크놀로지의 혁신을 가져왔다. 반주 없이 몇 초짜리 짧은 음원으로 승부하는 세계가 지금 음반시장이다. 더 이상 음악은 감상용이 아니고 장식용이다.”  

  스타를 키워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부상도 큰 몫을 한다. 과거의 기획사가 매니지먼트를 강점으로 하는 소위, 가수 하나를 잘 관리하면 되는 차원이었다면 지금은 프로듀싱의 시대이다. 어떻게 발굴해서 훈련시켜서 스타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SM이나 JYP 등등의 기획사는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회사가 되었고 스타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혹독한 연습과 준비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모두 다 거대자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한류 열풍까지 가세했으니 국경을 초월한 문화산업자본의 파워는 막강하다. 

  “얼마 전 유명 아이돌 그룹을 따라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본에서 그들을 대우하는 수준이 한 나라의 대통령 정도 돼 보였다. 현재 한국의 아이돌 시장이 일본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프로듀싱을 통해 트렌드를 주도해 가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나 같은 기획자는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다음기획은 그나마 이런 식으로 15년을 버텨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돌도 없고 대형스타도 없는데 말이다(웃음).” 

  SM이나 JYP와 다음기획은 같은 연예기획사라해도 확실히 걷고 있는 행보가 다르다. 다음기획은 키우는 아이돌도 없고 신인들의 오디션도 보지 않는다. 김 대표의 말대로, 가장 큰 장점이라면 처음에 인연을 맺었던 가수들과 별일 없이 오래 간다. 그 첫 타자가 정태춘 씨였다. 

  “민예총에서 활동할 때 민족음악협의회에서 정태춘 씨를 처음 만났다. 사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정태춘 씨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나로서는 영광이었다. 정태춘 씨가 함께 일해보자고 했을 때 나는 이미 그에게 포섭되어 있었던 거 같다(웃음). 90년 가을부터 개인 매니저로 일했고 ‘92년 장마, 종로에서’ 음반을 기획해서 냈다.”

  그렇게 지내다가 95년, ‘노찾사기획’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회사를 살려내라는 특명(?)을 받고 김 대표는 그 회사 대표 자리에 앉게 된다. 이름을 다음기획으로 바꾸고 전문적인 매니지먼트사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가수 윤도현을 만난 것도 그때쯤이었다.

  “선배 한 분이 오디션을 봐서 뽑은 가수가 윤도현이었다. 94년에 1집을 내고 활동을 하다가, 밴드를 하고 싶다고 해서 밴드 전용 연습실을 만들어 줬다. 당시 사람들이 나한테 미쳤다고 했다. 연습실 인테리어만 4천만 원 들었으니까… 사실 YB는 눈물 젖은 빵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밴드다(웃음). 뜨거운 감자는 이제야 대중적인 인기를 확인하면서 전국 투어를 하고 있는데 공연장에서 말 그대로 물이 올랐다. 김C는 여러 가지로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이 생산적인 일을 할 때 제일 행복하다면서 TV 예능활동을 하지 않기로 한 것, 이번 앨범을 제작·기획한 것 모두 다 김C 의견대로 한 것이다. 난 한 번도 가수들이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을 막거나 말린 적이 없다. 해줄 수 있을 만큼은 다 해준다.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표가 가진 자세를 듣자하니 김C가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의 5천 원이하 식사발언에 대해 다음기획이 소속 가수들에게 해주는 후한 대우를 거침없이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그 발언 이후 다음기획은 포털사이트 검색 1위가 되고, 누리꾼들의 찬사가 쏟아졌었다.

  “김C가 우리 회사를 너무 좋게 얘기해 줬는데, 사실 내가 JYP어도 연습생이 수십 명인데 그 밥값이 얼마나 많이 나가겠나? 그러니까 5천 원 이하로 밥을 먹도록 한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웃음). 오히려 나는 그런 기획사들이 누굴 키워서 스타로 만들어 보자는 발상자체가 억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미운오리새끼

다음기획 소속사 가수, 방송인의 면면을 보면 TV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여느 인기 연예인과 다른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뭔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대중예술인 나름의 독특한 개성과 정신을 갖고 있다. 이런 강한 색깔이 종종 시대를 잘못 만나서 미운털이 박히게 된 상황이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김제동 씨를 노제에서 사회를 봤다고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김제동 씨는 한번도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나 입장에 대해 뭐라고 표명한 적이 없다. 지방선거 때 특정 정당의 띠를 두르고 나가서 노래 부르고 유세를 따라다녔던 연예인들은 그대로 놔두면서, 전직 대통령 노제라는 국가가 주최한 행사에서 사회를 봤다고 좌파라고 하는 건 이중차별이다.” 

  그런데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대중적인 반MB정서에 편승하는 반사이익을 취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김제동 토크쇼가 그런 정치적 외압에 의한 희생양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그렇게 매진행렬을 이어가며 성공할 수 있었을까? 김 대표의 사상적 지평에서 비롯된 다음기획만이 가질 수 있는 저항적인 이미지 전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을 타진하며 질문을 던져 보았다.

  “누가 그걸 ‘탄압마케팅’이라고 썼더라. 백 번 양보해서, YB는 노래하는 밴드니까 방송 안 나가도 콘서트하고 음반 판매하면 된다고 해두자. 김제동 씨는 방송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예능인이다. 맨날 토크쇼만 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겠나? 방송에 나가지 않으면 김제동 씨는 직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김제동 토크쇼가 매진 행렬을 이어간 것은 토크쇼가 진행되면서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고 점차 확산된 현상이지 동정표 때문에 처음부터 매진이었던 것은 아니다. 소위, 찍혀서 방송에 못 나가면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회사인데, 왜 일부러 그런 이미지를 이용하겠나? 일부 사람들이 소신 있는 행동이라고 박수들 쳐주는데, 그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지는 못한다. 솔직히, YB나 김제동 씨가 가진 어떤 이미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그룹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적 문화생산자로서 다시 서기 위해

김영준 대표는 자신은 그저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장사꾼일 뿐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냥 몇 백 원 투자해서 다운받는 흥행성 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그가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행보가 역시 그러했다.

  “15년간 다음기획을 이끌어 왔는데, 그간 자본에 포획되지 않는 대안적인 형태가 뭘까 고민해 왔었다. 그 연장선에서 다음기획을 조합 형태로 전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선 회사가 가진 노래에 대한 판권을 가수들에게 다 돌려주고, 각자가 조합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때 가수들이 매니저로서 내가 필요하다면 나를 다시 고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인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대안적 문화란 무엇일까? 우문같지만 던져 보았다.

  “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현재는 산업과 자본에 의해 다양성이 줄어들고 너무 획일화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소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인터넷이 많은 정보를 주고 있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비행위를 한 쪽으로 몰아가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가는 문화소비행위를 만드는 흐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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