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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09월
  • 2010.09.01
  • 1556

미국의 기부문화 그들도 착하진 않았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최근 세계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미국의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기부서약’운동을 벌이고 있다. ‘포브스Forbes 400’이라는 목록에 있는 억만장자들을 접촉해서 6개월 만에 40명이 호응하여 1,500억 달러(약 18조 원)를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이 운동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중국과 인도의 부자들도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우리는 척박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한탄하고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부러워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착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에게도 저변에 존재하던 전통적인 나눔 문화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듯이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미국은 종교적인 이유를 포함하여 초창기부터 기부문화가 발달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대규모 기부는 사회적인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기부행위는 두 번의 티핑 포인트가 있었다. 석유왕 존 D. 록펠러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등이 사회적 압력에 떠밀려 거액을 기부했던 20세기 초반이 1차 티핑 포인트였고 지금 워런 버핏 등의 자발적기부가 2차 티핑 포인트이다.

  미국의 산업화는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시작된다. 전쟁은 은탄환(돈)으로 진행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전쟁자금이 풀리면서 모든 생산시설은 풀가동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농업 국가였던 미국이 산업 국가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거의 완전한 자유방임경제체제에서 1880년대를 지나자 엄청난 경제력 집중이 진행되고 독점체인 트러스트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을 비롯해 US 스틸 등이 대표적인 트러스트형 독점체로 등장한다.

  1차 티핑 포인트로 일컬어지는 시기는 부호들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청난 과소비를 즐겼던 1870~1900년까지이고 미국 역사가들은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부른다. 철도 부호 반더빌트 가문이 프랑스의 고성을 뉴욕 맨해튼으로 통째로 옮겨와 과시형 소비를 일삼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끝없는 부자들의 과소비 속에서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결국 1877년 총파업이 발생하고 200여 명의 노동자가 숨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군대를 동원해야 진압할 수 있었던 당시 사태 이후 계급갈등의 공포가 전 미국에 확산되었다.

  록펠러나 카네기가 요즘에 와서는 존경을 받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카네기는 1892년 발생한 ‘홈스테드 제강소 파업’을 악명 높은 핑커턴 탐정회사를 동원하여 짓밟았던 주인공이다. 폭력을 동원한 노동운동탄압에도 원조였던 셈이다. 록펠러도 마찬가지이다. 1914년 콜로라도 러들로 탄광의 파업을 진압한다며 민병대 병력으로 하여금 광부들이 거주하던 천막촌에 불을 질러 어린아이 등 14명을 질식하여 숨지게 유도한 장본인이었다. 록펠러가 대규모 자선에 나선 것도 이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된 이후부터이다. 카네기나 록펠러는 선행으로 악행을 감춘 성공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도덕적으로도 머크레이커Muckraker 혹은 ‘추문폭로꾼’ 등으로 표현되는 언론인들의 활약으로 이들의 추악한 면이 드러났다. 머크레이커는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의 인물 가운데 더러운 구석만 찾아다니는 머크-레이크Muck-Rake에서 따온 말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이더 타벨이라는 여성인데 그녀는 록펠러의 폭력과 협박, 판로 봉쇄 등으로 무너진 펜실베이니아 군소 원유 채굴업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스탠더드 오일의 이면에 있는 뇌물 수수와 협박, 폭력의 실상을 취재해 1년 여에 걸쳐 잡지에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1904년에는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책으로 펴냈다. 한마디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산 것이다.

  미국 사회는 들끓었고 록펠러는 철저하게 외톨이가 됐다. 검찰은 불법 행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길이 바로 ‘기부’다. 록펠러는 이전에도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지만, 이후 미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구 퍼주기’ 시작한다.

  덤으로 미국에서는 이런 사회적 갈등 때문에 혁신주의 바람이 불면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 같은 개혁을 표방한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유방임의 나라 미국에도 1910년대 들어 소득세가 도입된다. 마치 요즘 우리의 현대나 삼성이 불법행위가 드러나 사회 환원을 발표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래서 2차 티핑 포인트로 보이는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자발적 기부활동도 작금의 양극화 확대 상황에서의 대응으로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방차원이라는 것이며, 또한 단순한 치부가 아니라 세계경영자로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아야 자신들의 부도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또 하나 미국의 사례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통계가 영국의 경우 모든 영국인들이 자선활동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통계 자료(The British Social Attitudes Survey, 2004)에 따르면, 영국인들의 30%는 자선단체에 한 번도 기부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연봉 2만 파운드 이상의 고소득자들이 2만 파운드 이하의 저소득자들보다 기부를 더 적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당 지지자들이 진보적인 노동당 지지자들보다 기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보수당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자선활동 행위를 공공 사회보장제도보다 더 높은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부자는 힘들다고 치더라도, 큰 부자로서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아름다우려고 노력하는 부자들은 언제쯤이나 등장할까? 살아남으려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미국을 보면 처음부터 착한부자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부자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은 공짜 점심은 없듯이, 공짜 기부는 없으며, 저절로 흥하는 나라는 없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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