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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09월
  • 2010.09.01
  • 853

파라다이스 프로젝트


 

주진우 『참여사회』 편집위원, 평화박물관 사무처장

 

낙원구 행복동.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릴 때마다 난 이 말이 맨 먼저 떠오른다. 누나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그 책을 중학생 땐가 우연히 읽고 난 뒤, 난 그곳이 서울의 낙원상가 어디쯤일 거라고 제멋대로 생각했었다. 그만큼 그 책은 내게 ‘낙원’의 이미지로 남았다. 난장이 가족들이 처한 현실을 낙원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장 굴뚝 위에서 떨어져 죽은 난장이가 가게 된 달나라를 낙원이라 부르려니 슬프다. 그 이미지는, 스스로를 배반한 언어(“낙원”)가 흉한 미소를 짓고 있던 현실을 환기시킨다. 주로 술집 이름들이었지만 유난히 파라다이스란 말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진짜 낙원도 있었다. 20대 초반 나와 친구들은 신촌일대를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가끔 연세대학교 정문 옆에 있던 키 작은 풀밭을 찾곤 했다. 키 크고 잎 넓은 나무들이 드리워준 그늘 밑에 누워 우리는 느리게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도 느리게 흘렀다. 대학교 교문들과 거리에서는 돌과 최루탄이 끊임없이 날아다녔다. 억지로 눈물 나게 하는 최루가스를 마시면 시대가, 아니 자신이 안쓰러워 진짜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은 진짜 파라다이스였다. 손바닥만한 그곳에서 우린 잠시 편안했다. 모든 이들에게 파라다이스가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낙원섬에서 생긴 일』, 일단 궁금해진다. 여긴 또 어떤 약속과 배반의 사연이 있는 것일까. 도시를 흐르는 강의 샛강 가운데 작은 섬이 있다. 육지를 연결하는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점방거리’라는 작은 찻길이 있다. 이 찻길을 중심으로 오래된 가게와 창고들이 늘어서 있다. 서점, 채소 가게, 정육점, 생선 가게, 빵집들. 그곳을 오가는 섬사람들과 애덤.

  하지만 시 당국에서 보기에 이 섬은 제멋대로인 난장판 지역이다. 어느 날 시의회는 이 섬을 가로질러 샛강 양쪽을 연결하는 유료 고속도로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거리의 가게와 창고는 사들여져 철거되고, 가게 주인들은 육지에 새집을 보장받는다.

  섬을 파괴하는 일에 속이 상해 있던 애덤은 섬의 버려진 습지에 사는 노인들을 만나 멋진 생각을 듣는다. 애덤이 데리고 온 아이들과 노인들은 철거지에 버려진 목재와 벽돌을 모아 놀이터를 짓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 때, 놀이터의 지킴이가 된 노인들은 “소시지와 감자를 불에 구우며 행복해”한다.

  이 결과를 놓고 작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 하나씩은 얻은 셈”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얻은 것일까. 시당국과 시의원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도로 개통식에서 사회를 본 연예인에 쏠린 것에는 실망했지만, 어쨌든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얻는다. 자신의 옛 가게에서 희미하게나마 웃고 있던 가게 주인들은 - 찰스 키핑의 그림책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 육지 공동주택의 새집들과 새로 만들어진 대형 수퍼의 판매 코너 하나씩, 그리고 대형 수퍼 모자 아래의 무표정을 얻었다. 운전자들은 ‘속도’를, 어느 누군가는 돈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맘껏 놀 수 있는 자신의 놀이터를, 노인들은 “나이에 걸맞은 일을 할 기회”를 얻었다.

  무언가를 얻지 못한 사람도 있다. 섬의 유료도로 건설안에 기권하고 도로개통식에도, 놀이터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지 않은 시의원들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된 것일까? 작가는 이른바 윈-윈 게임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의 우울하고 냉소적인 그림체와 문체로 봐서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책으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허영으로 가득찬 자부심, 새 집과 새 매장 속 무표정, 속도와 돈이다. 사실 현실의 낙원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실 진정한 행복과도 무관한 요소들이다. 아니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일에 대해 ‘난 반댈세’란 입장을 가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한 일을 반대하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니다. 행복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입장을 세우는 것을 넘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바로 진정한 행복을 위해 행위하는 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낙원섬의 아이들이 노인들과 함께 지은 버려진 습지 위의 놀이터는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이 만든 것은 집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가게도 아니고, 더군다나 고속도로도 아니다. 그것은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보다 직접적인 행복이 어디 있을까. 놀이터에 비한다면 새 집과 새 매장과 새 유니폼, 그리고 뻥 뚫린 고속도로는 모두 껍데기로 보인다. 놀이터가 상징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낙원 프로젝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온갖 개발 사업들 말이다. 화려한 약속과 약삭빠른 장삿속으로 누구에게는 돈을, 누구에게는 편리함을, 누구에게는 자부심을 가져다주겠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삶의 밑동을 파괴해서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쉬운 진리를 왜 모른 체 하는 것일까.

  그런데 아마도 문제는, 개발로 얻는 것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4대강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걸 밀어붙이는 쪽에서는 4대강 사업을 하면 여러 득이 있다고 홍보한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얻게 되는 것이 과연 우리 삶에 무엇인가 묻는 일이다. 형편과 환경이 깨끗해지고 편리해진다는 것, 나아가 성장은 우리 삶에 무엇인가 묻는 일이다.

  미래에 올 것, 혹은 약속으로서의 낙원은 없다. 낙원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놀이터에 즐겁게 놀거나 그것을 지켜주는 것, 돈이나 속도에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행복이 절실하다. 난장이들을 능멸하던 낙원구 행복동의 만들어진 환상을 걷어치우고, 작은 나무그늘 아래 파라다이스나 습지의 놀이터처럼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할 낙원을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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