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9월 2010-09-01   1500

경제, 알면 보인다-신용등급 관리의 허와 실

신용등급 관리의 허와 실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가끔씩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현기증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그 현기증은 금융관련 정보를 접하거나 그 정보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의 순진성을 보았을 때 자주 일어난다. ‘신용등급을 잘 관리해야 대출을 받을 때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재테크가 유행하면서 우리에게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이야기다.

 

  많은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대출을 일으킬 때 등급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이자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한다. 관리 지침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내용은 “연체하지 마라, 현금서비스 받지 마라.” 등과 같이 다소 뻔한 내용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은근슬쩍 피해가는 어리둥절한 내용이 있다.

  바로 신용카드를 쓰라는 내용이다. 한국 신용정보 자료에 따르면 최우수 등급자는 은행권의 주거래 고객이면서 다양하고 우량한 신용거래 ‘실적’을 보유했다고 설명한다. 카드 또한 여러 장을 소유했다. 상식적으로 빚도 없고,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이 재무적으로 건강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신용을 가져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 않은가? 또한 소비를 통제할 줄 알고 빚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현금 혹은 직불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신용등급 우수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정상이다.

  하지만 현행 신용평가 시스템에서는 현금이나 체크카드 사용자들보다 신용카드 사용자들의 신용점수가 더 높다. 현금 사용자는 경제활동 이력과 패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남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큰 빚을 져야만 좋은 신용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변덕까지 심하다”

 

 

어리둥절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신용등급 체계의 이중성에 황당해질 차례이다. 오랫동안 신용거래 실적을 충실히 쌓아가면서 높은 신용등급이 매겨진 사람이라도 단기 소액 연체 몇 번만으로도 순식간에 4등급까지 떨어진다. 해외 출장 중이어서 결제를 미처 못했거나 어떤 중요한 일에 몰입하느라 카드 결제 일을 챙기지 못한 경우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결국 현재의 신용관리 제도 하에서 우량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많은 빚을 쓰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제금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신용등급을 매기는 심판관들이 당신의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문도 모르고 우량등급이라는 자부심이 크게 훼손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심리적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용등급에 따른 금리 적용과 허용한도까지 달라진다. 만기 이후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가 축소되거나 가산 금리가 높게 매겨지는 불운을 맞을 수 있다. 편리한 금융 생활이란 알고 보면 두 얼굴을 가졌다. 사용의 편리함 이면에 치밀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바로 지독한 소외를 당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자체 전산망을 갖추고 거래고객들에게 대한 신용평가를 독립적으로 실시한다. 은행이 보유한 정보 중에는 신용평점에 (+)가 되는 ‘좋은’ 정보도 있고, (-)가 되는 ‘나쁜’ 정보도 있다. 그런데 은행이 신용정보회사에 제공하는 정보는 대부분 나쁜 정보들뿐이다. 그 결과, 신용정보회사는 부정적인 정보만을 취합할 수밖에 없다. 좋은 정보는 사라지고, 나쁜 정보만 남게 됨으로 인해 신용 점수가 왜곡되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신용등급이 좋더라도 직업에 따라 대출을 일으킬 때 결과가 달라진다. 신용등급이 우량등급이라 하더라도 직업이 은행이 선호하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전문직과 같은 소득이 높으면서 안정적인 사람이 아닌 자영업자 혹은 소기업 종사자인 경우라면 대출한도가 적어지고 우대금리 혜택에서도 그리 재미를 못 본다.

  결과적으로 은행에서 사용하는 신용등급은 우량 등급을 살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나쁜 정보만을 주로 취급하면서 고객에게 패널티를 주는 도구일 뿐이다.

“무엇을 평가 받는지도 모르고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신용등급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우선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는 회사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는 기관을 CBCredit Bureau(신용조회업 인가 회사)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CB가 말 그대로 민간 기업이다. 민간 CB는 개인의 신용정보를 자율적 협약에 의해 수집하는데 모든 은행으로부터 예·적금 및 신용카드 사용 실적 정보 더 나아가 통신회사,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하는 정보의 종류도 우량정보, 공공기록 정보, 신용정보 등으로 다양하다.

  istockphoto_13023189-ecstatic-young-woman-with-two-gift-cards…CB는 개인의 신용거래 내역 및 관련 정보를 수집·축적한 후 가공한 신용정보를 신용공여기관(금융기관) 또는 개인에게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직접 신용등급 정보를 접하거나(연간 1회 무료, 그 이상은 유료) 아니면 금융회사에서 대출신청을 할 때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신용정보를 자주 조회하게 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소비자가 직접 조회하는 경우가 아니라 은행이나 캐피털 등을 통해 간접적인 조회가 빈번해 질 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소비자가 사실상 등급제도에 대해 화를 내야 하는 대목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이 복잡하고, 신용정보를 다루는 회사들마다 다루는 항목이나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심지어 신용정보를 평가하는 회사들 대부분이 평가기준을 오픈하지 않고 비밀에 부친다. 결국 평가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평가받는지 모르는 채 평가를 받는다. 이 말은 평가를 위한 기본적인 정보 표준standard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보의 신뢰성credibility도 문제다. 신용정보 시장이 소수의 회사에 의해 독과점 상태monopoly market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정보시장은 한국신용정보NICE, 한국신용평가KIS 등 25개 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나이스 그룹NICE Group과 시중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의 공동 출자 형식으로 만들어진 코리아크래딧뷰로KCB가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NICE그룹의 시장지배력은 비교기업이 없을 만큼 막강하다. 한편 KCB는 시중은행들이 실질적인 주인인 만큼, 우량정보들을 독점하고 있다. 전자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면, 후자는 부가가치 높은 고객정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우리나라 개인신용정보 시장은 소수의 독과점업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정보를 ‘요리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녔다. 이들 기관들은 금융소비자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정보를 팔고 돈을 버는 상인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신용정보시장은 지독한 정보 불균형 속에서 실질적 정보주체인 소비자들의 참여기회는 없다. 한마디로 소비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등급을 부여 받는 상황에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등급을 관리하기 위해 치밀해져야 한다. 자신을 누군가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실시간 평가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이 불쾌하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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