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9월 2010-09-01   1689

아주 특별한 만남-정광교 회원

위로와 사랑과 희망의 길 음악,
시민운동과 만나다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강은 가르지 않는다/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강은 막지 않는다/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강은 뿌리치지 않는다(…)// 강은 열어준다, 대륙으로/세계로 가는 길을(…)//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신 경림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중에서)

더위가 물러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말복末伏, 처서處暑도 지났지만 연일 예고하는 폭염 경보는 사람들을 더욱 지치게 하고, 전력 소비량도 날마다 기록을 갱신한다. 국지성 호우의 위력 또한 대단했다. 같은 서울인데도 북한산 밑자락의 동네 사람은 비에 휩쓸러 가버렸는데 다른 곳은 말짱하게 맑은 하늘이다.

  기상청은 날마다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덕분에 기상 용어들이 귀에 제법 익숙하다. 절대습도, 제트기류 블로킹, 이안류…. 여름이 더운 건 당연하다고 하지만 올해는 유난하다. 그래도 참을 만하다. 여름의 끝물에 가을이 따라오기에 마련이니까.

  그보다는 온갖 보도 매체가 쏟아내는 뉴스거리가 숨을 턱턱 멎게 한다. 무늬만 친서민이요 오감五感 중 시각만 자극하는 정책에다, 소신공양도, 이 땡볕에 망루에 오른 환경운동가도 모르쇠로 밀고 나가는 4대강 사업. 이 와중에 단행된 8·8개각은 또 어떠한가. 위장전입·투기· 병역기피는 공직자의 기본 덕목이고 이젠 ‘신상’이 추가됐다. 쪽방촌 투기에 공무원 가사도우미까지. 탐욕의 정부이다.

  전력 소비를 더욱 부채질하는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국민들의 알권리 운운하지만 그것보다 탐욕 박람회이다. 탐욕이란 인간의 본능이자 문명의 근원이다. 기회가 없으면 욕심도 없으니 탐욕은 열린사회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 기회라는 게 금金과 권權의 야합과 세습으로 날이 갈수록 창대해지니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으랴.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이 발목지뢰가 된 세상에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로만 유효할 뿐인가.

  하지만 희망을 삶의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다. 음악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받고, 서로 사랑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문화운동가. 정광교(44세) 회원이다. 기타 디자인부터 기타, 오카리나, 우쿨렐레, 팬플룻 연주와 강의, 음악 잡지 및 공연기획 등 그가 하는 일은 다음 장을 넘기기도 벅차다. 두루뭉술하게 문화운동가로 칭하지만 이보다 더 적확한 명칭이 없는 성 싶다.


 “후원의 밤 ‘패누카’ 연주 기대하시라”

8월 23일 퇴근 무렵, 선량하게 보이는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손에 든 악보를 보고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단정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줄무늬 흰색 셔츠가 선생님 같은 인상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미술대학 출신에다 음악을 업으로 삼은 지 18년이 된다고 하지만 예술가로서 튀는 차림이 전혀 아니라 의외였다. 반면 몸에 밴 섬세하고 부드러움에서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간편한 저녁으로 준비한 김밥과 간식거리를 펼치는 손끝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비닐봉지에 담겨온 양념장을 종이컵에 옮기는데, 종이컵이 순간 꽃송이가 되어버렸다. 컵 가장자리를 가위로 알맞게 잘라서 찍어먹기도 좋게 하고, 눈도 즐겁게 하고. 모두가 짧은 환성으로 꽃송이에 나무젓가락이 날아다녔다.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것 하나에도 애정을 불어넣는 게 남다르니 지금의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게 아닐까.

  후원의 밤(9월 7일 화요일) 행사 준비에 누구보다도 마음이 급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가느냐고 여쭸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듯하다가 한마디 슬쩍 흘렸다.

  “의욕과 욕심만 앞서니… 예술은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모두들 시간에 쫓기니 연습량도 부족하고, 노래도 연주 못지않게 어렵죠. 그래도 앙코르 곡까지 준비하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회원모임의 음악연주이니 즐겁게 보시면 됩니다.”

  회원모임이었던 음악연주모임(준)의 회장이다. 이번에 명칭을 ‘패누카’로 변명하고 ‘준’ 모임이라는 딱지도 뗐다. ‘패누카’는 팬플룻·우쿨렐레·오카리나의 첫머리 글자로 조합된 명칭으로, ‘참좋다’와 더불어 참여연대 내 음악모임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후원의 밤 공연을 준비하는 패누카 회원 모두의 열정과 ‘사부’인 그의 지도가 그날 밤을 분명 황홀하게 하지 싶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이 창대하듯이. 부연하여 악기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했다.

  팬플룻은 대나무로 된 여러 개의 관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악기로 우리나라의 생황이라는 악기와 유사하다. 우쿨렐레는 하와이 전통악기로 4개의 현으로 구성된 작은 기타로 훌라춤을 추면서 연주하는 악기이고, 오카리나는 진흙으로 빚은 작은 거위 모양의 이탈리아 전통악기이다. 리코더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대중적인 인기가 폭발적이다. 이 악기 모두가 소박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홀로, 혹은 여럿이 함께 내는 화음은 천상의 소리라 한다. 그 소리를 향한 그의 목소리 또한 지상의 아름다운 소리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카데미 가을 학기 (10월 5일∼10월 26일 저녁 7시~9시 30분) 한 강좌를 맡은 강사님이다. 매주 화요일 오후. ‘쉽게 즐기는 작은 기타 우쿨렐레 교실’로 참여연대와 함께 가고 있다. 총 4강좌로 악기알기-리듬악기-코드악기-노래하기로 팍팍한 세상사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전하는 ‘음악전도사’로 맹활약 중이다.

  회원 가입 동기부터 궁금했다. 음악과 시민운동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싶어 내심 고심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음악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앞서 잠시 얘기했듯이, 음악은 위로요 사랑이요 희망이라 했듯이 시민운동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해요.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은 둘  다 같지 않습니까?”

  만법萬法은 하나로 통한다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 하나가 가는 곳을 모색하고 탐색하는 게 각자 삶의 화두가 아닐까. 그는 음악을 통해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고, 때문에 그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십자가 진 단체 같아… 조급하게 생각 말았으면”

“회원 가입도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죠. 시민참여팀의 정형기 간사가 자원활동가였을 때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어 여기저기 사이트를 뒤지다 저와 연락이 닿은 거죠. 정 간사가 메일로 열심히 참여연대를 소개하고 홍보하더군요. 제가 85학번이니 치열했던 그 시절을 모를 리 있나요. 이미 참여연대는 접수되어 있었는데…. 2007년 9월에 아마 회원 가입한 걸로 기억해요.”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정겨웠다. 자신은 새내기라고 쑥스러워 하지만 강성 이미지의 참여연대에 부드러운 속살 같은 존재이다.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열혈자원활동가’에서 시민참여팀의 시민 대표 멘토인 정 간사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럼 ‘바라보던’ 참여연대에서 ‘함께 하는’ 참여연대’와의 차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막상 발을 들어놓고 보니 십자가를 지고 가는 단체 같아요. 이 정부 들어서 더 힘든 상황이고,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역량만큼만 했으면 합니다. 밖에서 보는 강성이미지라는 게 부드럽게 해도 안 되니까 강하게 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만나보니 간사들은 다 부드러운 사람들이더군요.”

  부드러운 어투 속에 힘이 엿보였다. 잠시 침묵하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기타를 통해 내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느꼈죠. 그 때문인지 연주뿐만 아니라 나를 변하게 한 기타를 제작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미술대학을 나와 기타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으로 학사편입까지 하면서 기타에 매료됐죠. 그 결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주변에서는 행복한 사람이라 부러워하죠. 저 역시 만족하는 삶입니다. 만일 내가 조급증을 내고 훌륭한 연주가가 되려고 욕심을 부렸더라면 이런 평화는 누릴 수가 없겠죠.”

  아, 부럽다. 조급증 없이 이 대한민국을 살아온 저력이.

음악도 시민운동도 끈기가 중요해

음악과 시민운동이 함께 가기 위해선 어떤 공통분모가 필요할까, 준비된 답변인 듯 차분히 말했다.

  “한마디로 끈기입니다. 음악이든 시민운동이든 빠르게 결과물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시민운동이 음악보다 더 많은 끈기를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시대 상황이라는 게 때마다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만일 우리가 다 못 하면 우리 후배에게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여유를 음악을 통해 배우고 또 위로 받는다면 나 같은 사람에겐 시민운동이 주는 최고의 행복이죠.”

  그를 지탱하는 열쇳말은 끈기이다. ‘빨리빨리’가 기도문이 된 세상에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으니, 아! 또 부럽다.

  분위기를 파악한 듯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다시 열었다.

  “저는 사람을 만날 때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만납니다. 설령 껄끄러웠던 사람이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미래를 보고 그 사람을 대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과거의 허물도 변한다는 생각을 하고 미래만 보려고 애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 마음이 열리게 되죠. 그 과정까지 가기가 어렵지만 이 또한 끈기를 갖고 있으면 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제일 대하기 힘드냐고 짓궂게 여쭸다.

  “대결 구조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죠.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해 얼마나 힘이 듭니까. 4대강 사업을 놓고 찬·반으로 나눠져서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밀어붙이니 답답합니다.  찬·반 사항 모두 중요하죠. 그런데 양쪽 모두가 충분히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상식성에서 좋은 자료를 내놓고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PD수첩을 방영 한다, 못 한다 실랑이를 벌이고, 이 더위에 환경운동가들이 그 꼭대기에 올라간 지 한 달이 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타협할 기미를 안 주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참, 대하기 힘든 사람들이죠.”

  ‘뒷다마’ 수준의 유쾌한 답변을 예상했는데 결국 오늘의 문제로 돌아왔다.

  대운하에서 4대강으로 강은 이 정권의 판도라 상자이다. 강은 전시행정과 정쟁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생결단이다. 우여곡절 끝에 PD수첩이 방송되었지만 ‘수심 6m의 비밀’은 또 무엇인고? 국민들은 지치고 짜증나고 냉소적이다.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고, 뿌리치지 않고, 세상을 열어준다는데. 4대강이-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종당에는 한반도 대운하의 물꼬가 되는가.


“회원중심 지역순회연주는 어떨까요?”

시간을 가늠하며 참여연대에 대한 자유발언을 부탁했다. 그런데 도리어 그가 되물었다. “능력 있는 회원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는지?” 어찌 고민을 안 하랴, 참여연대 최대의 관건인 것을. 그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글쎄요….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장을 펼쳐주는 것 밖에. 그런데 그 일을 또 간사들에게 떠맡길 수는 없죠. 저도 계속 고민해 봐야겠네요.”

  한 숨을 고르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음악은 공산품과 같습니다. 항상 우리 가까이 있는 거죠. 노래 한 곡으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새롭게 살아봐야겠다는 각오도 하는 게 음악입니다. 참여연대의 활동이 서울 중심이다 보니 지역 회원들과 소통할 기회가 적지 않습니까. 문화 활동도 지역 편중이 심하고 하니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순회연주 같은 것을 하면 어떨까요? 물론 뜻을 같이 하는 전문 연주자들도 참석하고. 그 섭외는 제가 할 수 있죠. 누차 말하지만 음악과 시민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한 세상입니다. 위로 받고 사랑하고,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시원한 바람 한 줌이 그에게서 불어왔다. 분명 바람을 일으킬 사람이다. 위로와 사랑과 희망과 치유의 바람을 한꺼번에 몰고 올 사람이다. 세상의 더위가 한풀 꺾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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