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5월 2019-05-01   1200

[여성] 낙태죄가 있었다고? 고려장을 할 거라고?

낙태죄가 있었다고?
고려장을 할 거라고?

 

66년 만에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가 사라진다. ‘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로 선고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낙태충’이 여성을 향한 가장 흔한 혐오발화였다. 그리고 그 뒷배는 바로 여성의 성을 재생산 장치로 간주하고, 그를 위반하는 여성을 징벌로 통치하려는 국가였다. 이제 4.11 역시 여성들에게 4.19와 5.18, 그리고 6.10과 마찬가지로 ‘지금-여기’의 민주주의를 창출해낸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5월호 (통권 265호)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SBS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문의 의아했던 ‘소수의견’

역사적인 그날 오후 2시, 어떤 친구들은 개인 일정을 뒤로하고 헌법재판소 앞으로 향했다. 많은 지인들이 각자의 생업과 일상 속에서 위헌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마침내 재판관 4명의 헌법불합치, 3명의 단순위헌, 2명의 합헌의 의견이 발표됐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찬반으로 보면 총 7:2로 압도적 판결이었다. 남성 1(혹은 3)과 여성 2(혹은 4)로 성별화된 삶과 죽음에서 한 발짝 떨어지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가짜 대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여성도 생명이다. ‘모체(母體)’일뿐 아니라 인간이다. 이제 앞으로 단순하고 당연한 이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러나 이 감격은 곧 휘발되고, 기억은 흐릿해지리라.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세대는 “낙태죄가 있었다고?” 되물을 것이다. 나는 그 의아한 얼굴마저 떠올릴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들만이 전한다고 할 때, 이날 선고문을 둘러싸고 온라인이 떠들썩했던 이유를 짧게라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재판관 2인의 합헌의견으로 전해진 다음 구절 때문이었다.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 이 앞 문장은 “지금 우리가 자기 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였다. 그러나 따옴표로 강조된, 기울임체로 처리된 이 도입 문장은 많은 이들의 패러디를 자아냈다. “우리는 모두 정자였다, 아니 난자였다”, 여기에 아예 “흙이었다” 등 과거형의 즉흥 발언이 순식간에 SNS 타임라인을 장악했다.

 

이 시심(詩心) 가득한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본인들 외에는 알지 못할 것이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한 구절인 “아비는 종이었다”에서 온 것인지, 수지를 국민 여동생으로 만들었던 영화 <건축학 개론>의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홍보문구에서 따온 것인지. 그러나 둘 다 돌아오지 않는 아비를 기다리는, 혹은 짝사랑한 여성을 다른 이에게 뺏긴 남성의 입장을 드러낸다는 데에서는 같다. 그렇기에 ‘소수의견’으로 고심에 고심을 더했을 이 감성적인 ‘합헌의견’이 유독 여성들에게는 가닿지 못했던 것이다.

 

출산과 양육, 양로는 ‘여성’이 아니라 ‘모두’의 일 

왜냐하면 이들은 남아선호에 따라 여아살해가 높았던 시대의 생존자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20~30대 구간의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이 바로 그 결과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날 수 있었던 ‘지금 우리’는 단지 남성을 지칭한다고 간파한다. 그리고 어떤 사회적, 성적 소수자들은 우생학적, 공리주의적 발상 등에서 아예 이 재생산의 권리에서 배제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여성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계급, 인종, 장애, 섹슈얼리티 등 각 범주들이 얽히면서 작동하는 차별적 현실에서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결정권이 스스로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이 선고문에서 더불어 회자된 “훗날 우리조차 다음 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될 수도 있다”는 문장도 의미심장했다. 여기에는 낙태가 비범죄화되면 자신들의 죽음이 걱정된다는 비약이 담겨있다. 이는 초저출산, 초고령화를 시대적 과제라고 말하면서도 이를 오직 여성의 문제로 지시하고, 그 해결을 여성에게만 맡기려는 입장과 상통한다. 물론 “보도기사 작성용 초고”에 담겨있던 이 문장들은 이후 배포된 보도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이 소극(笑劇)도 곧 잊힐 것이다.

 

2020년, 우리는 낙태죄 없는 세상을 살게 된다. “호주제도 폐지되면 국민 모두 짐승된다”는 구호가 그랬듯, 훗날 어쩌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고려장을 할 거라고?”라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게 임신중단과 무슨 상관이냐며 어이없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출산뿐 아니라 양육과 양로까지 공동체의 일을 그저 ‘여성인 죄’로 담당하게 했던 과거가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위해 전면에서 애써온 여성들, 그들과 함께 환호했던 순간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낙태

Ⓒ모두들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글. 류진희 성균관대 강사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소녀들』,『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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