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8월 2010-08-01   1101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장수마을에서 희망을 쏘다

장수마을에서 희망을 쏘다

 

최인숙 『참여사회』 팀장

 

8월 말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최저생계비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는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희망UP캠페인’을 진행했다. ‘희망UP캠페인’은 단순 체험이 아니라, 최저생활수준을 일반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여 한국사회의 빈곤현실을 직접 확인하고 최저생계비 실제 계측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1인 가구(50만 4,344원) 2팀, 2인 가구(85만 747원), 3인 가구(111만 919원), 4인 가구(1,36만 3,091원) 각 한 팀씩으로 구성된 체험단에겐 생활수칙이 있었다. 지급받은 2010년 최저생계비에서 집세, 공과금 등 모든 생활비를 해결해야 한다. 밥은 세 끼 챙겨 먹어야 하고, 음식은 대접 받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책정된 최저생계비만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명심할 것은 한 달 체험이 극기 훈련이 아닌 만큼 평소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체험을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나자 4인가구(장수마을 주민 할머니, 29세 직장인 진희 씨, 25세 대학생 만철 씨, 23세 대학생 은지 씨)가 먼저 파산을 선언했다. 월말에 공과금, 통신비 등을 정산할 돈은 생각도 못했다. 그로부터 2-3일 후 남은 4가구 모두 적자로 들어섰다.

  4인가구는 한 달 최저생계비 136만 3,090원으로 시작했다. 방값 30만 원을 내고 생활필수품을 사고 나니 보름 지나 37만 5,900원이 남았다. 만철 씨는 점점 줄어드는 생활비로 남은 기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신경 쓰다가 살이 5kg 빠졌다. “4인가구 최저생계비 비목별 비용에 맞춰 예산을 짰지만 실제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같이 사시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영양주사를 맞았는데, 정해진 의료비용을 초과했다. 앞으로도 생활 속 변수들이 안 생길 리도 없고……”

  3인가구 소연 씨(35세, 직장인)는 아버지 생일 축하 자리와 친구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최소한의 격식을 차릴 정도의 경조사비가 아이 학원비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1인가구 성호 씨(28세, 대학원생)는 실제로 1인가구 최저생계비 비목별 비용에 맞추는 시도를 했다. 식료품 18만 9,518원, 주거비 8만 6,982원, 교육비 2만 2,629원, 교양, 오락 9,846원… ‘정해진 비목에 맞는 삶의 수준’을 알고 싶었다. 한 끼 식사가 2,100원으로 외식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1만 원 하는 책 한 권 값으로도 부족하다. 10일 지나니 결론이 나왔다. “살 수 없다!”

  이렇게 높은 지출을 보인 이유는 방세 등 초기 주거마련 및 가구집기 마련에 비용이 많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정한 가구별 최저생계비 비목별 기준의 비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저생계비는 한국사회의 빈곤선이자 복지정책의 기준선이다. 때문에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최저생계비 계측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는 소비자물가상승률과 비교해서 상대적 수준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2010년은 제도 도입 이래 최저치인 2.75% 인상하는 데 그쳤다.

  최저생계비 계측을 담당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위원장 : 보건복지부장관) 민간위원의 객관성과 전문성 여부도 큰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과정부터 현재까지 주도적인 활동을 한 참여연대 소속 전문가 민간위원들을 보수성향 소속 전문가들로 교체했다. 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뀐 전문가들은 사회 빈곤 문제에 대해 전문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최저생계비는 정부의 일방적인 근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현실적 삶’이 토대가 돼야 한다.

  체험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체험단은 뛰어난 생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물을 퍼서 내려 보내야 하는 화장실을 쓰는 것도, 부엌과 욕실을 겸한 보일러실에서 온갖 벌레들과 함께 씻는 것도, 방안에 핀 곰팡이도 예술작품이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도 생겼다.

  경제적 어려움과 생활환경적 불편함은 익숙해진 반면, ‘가상과 현실’ 차이의 체감도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2인가구 일호 씨(27세, 직장인)는 “체험이 결국 ‘나는 그 사람들이 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 같다. 마치 이벤트처럼 잠시 왔다 가는 건 이 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난 한 달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분들은 다른 삶과 다른 희망에 대한 기대나 약속이 없다.”고 말했다.

  이 체험의 한계인 동시에 주어지는 역할이고 느껴야 하는 책임감으로 보낸 한 달이 체험단에게는 버거웠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캠페인 덕분에 사람들이 전과 다르게 최저생계비가 얼마인지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보지 않겠냐”는 은지 씨 말처럼 그 시기를 담보할 수 없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는 현실을 사는 것이 힘들겠지만, 세상은 변한다. 한 여름의 꿈만으로 기억되진 않는다.

 

 

“체험이 끝나기까지 35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러나 35시간이 지난 후에도 가난한 이들의 삶은 우리와 무관하게 계속된다.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마음에 복잡하게 얽혀 돌아서는 사람의 발걸음을 더디게 붙잡는다. 들어올 때는 간소했던 짐이, 돌아가는 짐을 꾸리는 데 뭐가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 이 좁고 습한 방에서 부대끼며 우리가 한 달간 꿨던 꿈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일호 씨의 28일차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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