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8월 2010-08-01   1239

최성각의 독서잡설-망가진 국토보다 더 심각한 것은 황량해진 사람의 마음이더라


망가진 국토보다 더 심각한 것은
황량해진 사람의 마음이더라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생명에세이/김성동/풀빛/1992년

 

 

‘죄 썩었다’라는 탄식으로 책머리를 시작하고 있는 이 책은 1992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은 ‘『만다라』의 김성동’이 생명의 관점으로 그가 말하듯 ‘남녘 땅’ 골골샅샅을 온몸으로 자근자근 밟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책이다. 주 1회씩 한국일보에 연재된 ‘金聖東의 生命紀行’은 1991년 1월 4일부터 12월 28일까지 옹근 한 해를 꽉 차게 진행되었다.

  생각해보자. 1991년이면 지금부터 몇 해 전인가를.

  19년 전이다. 19년 전이라면, 그가 보고 느낀 산하의 풍경을 얼추 20년 전의 모습이라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20년 전이라면 우주의 운행으로 볼 때에는 ‘시간이 흘렀다’고 말할 건더기도 없는 기간이겠지만, 우리 사회처럼 세태의 경천동지할 급변에 비추어 볼 때 사실 얼마나 오래 전의 일인가?

  글쟁이기 전에는 승적과 관계없던 ‘자생적 승려’였던 김성동은 이 땅의 처절하고 철저하게 곪아터지고 썩은 현장을 보고 넋을 잃을 만큼 절망했다. 그의 전공이 애당초 생명의 일이긴 했다. ‘생명의 사람’이 보고 싶어 하던 땅의 현장은 사람과 자연이 분리되어 철저하게 유린당한 비생명의 모습이 아니었다. 생명의 사람이 보고 싶었던 것은 서로 죽이고 죽임으로써만 생존이 영위된다고 믿는 곯아 터진 탁악시대의 시궁창이 아니라 공생과 공존이 기본으로 깔린 따뜻한 살림의 현장이었다. 생명을 찾아 떠난 그는 생명을 보지 못했고, 희망을 찾아 떠난 그는 살림의 기운은커녕 불길한 미래와 “시간이 많이 없다”는 절망만 만났다.

  진작부터 평균적인 상식과 본래적인 감수성을 지닌 이들에게는 조금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지만, 우리 산하의 파괴는 하루 이틀 상간에 시작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의 관점이 정직한 만큼 어둡고 비극적인 기행문이다. 20년 여 지난 지금은 아무도 이 작은 책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책보다 더 통렬하고 슬픈 생명기행은 따로 없을 것이다. 70년대에 박태순의 『국토기행』(한길사)이 있었지만, 그 책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붕괴되어가는 세태와 국토의 변화를 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 역시 오염을 다뤘지만, 김성동의 그것처럼 한 가지 관점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작가가 길을 나선 90년대 초반부터 거슬러 올라가 계산해보면 대망의 조국 근대화가 시작된 때를 5·16 군사정변 이후로 잡을 수 있으니만치, 얼추 30년 전이다. 불과 30년 만에 이 땅의 산하는 철저하게 썩기 시작했고, 먹는 물, 입에 넣는 양식은 이미 사람이 먹고 마실 것으로는 마땅치 않은 것들이었다. 자연과 사람이 본시 한 뿌리이건만 자연을 오로지 더 악착같이 수탈해 이익을 산출한 근거로만 취급해왔으니, 30년이라면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기에 족한 기간이기도 했다.

  이 가슴 아프도록 슬픈 기행문이 발간된 이후 다시 20년 여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더 풍요로워졌는가?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우리가 과연 더 행복해졌는가? 풍요는 어디에 소용되는 가치인가? 풍요는 단지 풍요를 위한 것인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 풍요가 만약 인간의 복된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조국근대화가 얼추 완수된 이 시점이라면 풍요로 인해 우리는 바랄 데 없이 행복해져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우리는 오늘 행복한가?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니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그런데도 더 풍요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세력들)이 있다면, 그 세력들이 말하는 풍요가 매우 ‘수상한 풍요’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단언컨대, 인간 삶의 기본조건인 자연을 철저하게 수탈하면서 얻어낼 풍요는 풍요가 아니다. 그런 게 풍요라면 그 풍요는 협잡이거나 사기이거나 미신이다. 진짜 풍요는 자연을 적대시하는 데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토대를 깔아뭉개면서 얻어낸 풍요가 어떻게 풍요일까? 자연의 일부일 뿐인 우리가 어떻게 자연과 척을 지면서 풍요로울 수 있을까? 왜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고 인정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까?

  그는 무릇 모든 생명이 내쉬고 들이마시는 호흡 간間에 있다는 불가佛家의 비유를 들면서 먼저 숨쉬기조차 힘들어진 공기의 오염을 느꼈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잠시도 살 수 없는 생명의 조건인 땅과 그 땅이 품고 있는 물의 오염을 그는 보았다. 그는 놀람과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그를 가장 슬프게 한 것은 ‘공업화 30년 동안 전 국토가 썩어버린 것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썩고 병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작가 김성동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많은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찌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더욱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데 무슨 까닭인지 사람들의 낯빛은 어둡고 찌푸려져 있었으며, 그리고 날카로운 적의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이었다.”(257-258쪽).

  그 적의는 이 책 발간 이후 20년이 흐른 뒤, 어떻게 변했을까? 적의의 일상화? 그런 말도 가능할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 같은 것이 적의가 가는 어두운 행로를 요약해 웅변하고 있다.

지율스님이 구담습지의 4대강 공사 전후 모습을 담았다.

  ‘기행을 마치며’라는 글을 통해 그는 한 토막의 외신을 전하고 있다.

  1990년 5월, 중국 신강新彊 지방 타클라마칸 사막 깊숙한 곳에서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살고 있는 2백여 명의 종족이 발견되었다는 해외토픽이었다. 중국통신사CNS는 그들이 넓이 100평방킬로미터의 오아시스에 유토피아를 이루고, 350년 전에 이곳에 정착한 뒤 외부와는 일체 단절한 채 원시적인 방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중국 최후의 왕조였던 청 왕조나 현대의 사정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작가는 그들이 명 왕조나 청 왕조의 존재도 모르고 공산혁명 이후의 중국에 대해서도 모른다면, “통신수단이니 뭐니 하는 이른바 문명이 없었다고 봐야겠다.”고 한 뒤, 어쩌면 그들에게는 문자조차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 가정 아래에서 그는 그 특유의 ‘반反문자론’을 피력한다. “문자가 없으므로 책이 없을 것이고, 책이 없으므로 온갖 부질없는 알음알이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을 것이며, 학교가 없으므로 이른바 지식인이 없을 것이다. 지식인이 없어 ‘국가’라는 이름의 최고 권력기관이 없을 것이므로 공업우선의 개발독재가 없어 조상 전래의 토지로부터 내몰리는 농민이 없을 것이고, 농촌이 해체되지 않았으므로 달동네로 기어들어 미친 듯이 올라가는 전세 값 사글세 값을 못 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시빈민이 없을 것이며, 부자들의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 대량생산이 없을 것이므로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 신음하는 노동자가 없을 것이다.”는.

  과학은 호모 사피엔스가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에 멸종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말은 곧장 언어로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문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문학이 없다면 인류는 훨씬 더 보잘것없었을 것”(「호기심과 탐구」, 찰스 파스테르나크,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말글빛냄, 2008년, 253쪽.)이라고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한다.

  과학이 말하고 있는 내용과 관계없이 작가 김성동은 90년대 초 이 국토를 샅샅이 돌아다닌 뒤, 자연이 겪고 있는 유린과 사람들 살림살이의 참상의 원인을 문자, 특히 문자를 지배도구로 삼고 진행된 현대문명에 돌린다. 그가 인간 삶을 고귀한 방향으로 끌어올리기도 한 문자의 순기능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제가 안 되는 인간의 욕망을 문자로부터 시작한 문명과 결부시키면서 인간 삶의 행복(풍요)이 결코 문명의 발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풍요롭게 살던 한 종족의 일화를 일부러 봉대棒大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글을 접고 ‘침쟁이 농부’가 된 시인 신동문辛東門의 이야기와 무문관舞問關 면벽 6년 수행 이후 교통수단을 비롯한 일체의 물질문명을 단호히 거부하고 한 극단의 실천을 보여주기 시작한 수행자 원공圓空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이야 적잖은 이들에게 알려진 일화이지만, 시기로 볼 때 김성동에 의해서 비로소 처음 세상에 소상하게 알려진 귀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시 나부랭이보다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내 힘으로 땀 흘려 농사짓고 사는 게 더 사람다운 일이다.”는 신념으로 시를 접고 포도농사를 지으며 독학으로 침술을 배워 아픈 사람들과 같이 뒹굴었던 신동문 시인을 작가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명칭 한다. ‘생명기행’이 보고 싶고 만나려고 했던 것도 결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신동문 시인이나 원공 스님도 한 표상이지만, 막막한 절망감 속에서 그는 반딧불이 같은 희망을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서 찾고 있다. 비누를 손수 만들고, 치약과 화장품, 샴푸를 사절하고, 입던 옷을 고쳐 입고, 음식물쓰레기를 재활용하며, 땅과 농촌을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90년대 초반이면 시민운동이 막 시작될 즈음과 비슷한 시기이다.

  그가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시민사회는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본시 반권력인 시민운동을 무슨 새로운 형태의 권력으로 알고 설치던 1세대 시민운동가들이 그 추한 정체를 드러내면서 몰락한 뒤, “범죄의 징후가 짙은 질 고약한 지도자라도 좋다, 우리를 부자만 만들어다오”라는 자기파괴적인 선택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 지도자들은 산천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에서 밤낮없이 우리 산하를 시방 망가뜨리고 있다.

  이 책 발간으로부터 20년이 다시 흘렀는데, 우리는 언제쯤 생명의 기운이 철철 넘치는 ‘생명기행’을 한권쯤 가질 수 있을까.

지난 2년 여 기간 동안 귀한 지면을 통해 『참여사회』 독자들을 만난 일을 저는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귀중한 논리를 개발해 내는 학자도 아니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해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 내는 연구자도 아닌, 그저 한 글쟁이일 뿐인지라 제가 그동안 다룬 책들은 중구난방의 잡서들이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난독亂讀과 잡독雜讀이 변함없는 제 오래된 독서방법이었고, 책을 통해 세계를 읽는 관점 역시 정밀한 원칙에 바탕하고 있다기보다 직관이나 편견에 의존하고 있는 자유분방한 글쟁이가 고른 책들이었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다 나이 들면서 제가 쏟은 가장 큰 관심이 아무래도 생명의 문제, 혹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이 신비로운 생태계의 한 일원일 뿐이라는 겸손을 회복하는 일이었기에 어떤 책을 다루든 생태계 위기와 관련된 쪽으로 주제를 몰고 갔던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독자들이 식상해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만, 제 정체성이 미학에 몰두하는 예술지상주의자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생태 쪽의 현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글쟁이였기에 어쩔 재간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잡설을 연재하던 지난 2년 여 기간이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권의 막무가내식 국토파괴’가 멈춰질 기색을 안 보이고 있던(는) 때인지라 잡설에서 무슨 책을 다루든, “4대강 중지하면 좋겠다.”는 소망을 빠뜨리지 않고 넣었던 것만 같습니다. 그것이 제겐 바로 지금 우리 시대의 매우 중요한 일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또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책방에서 책을 팔아 이문을 내기 위해 내건 표어이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책들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사람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긴장시키는 벼락같은 정신이 담긴 책이 너무나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저를 세차게 움직였고 뒤흔들었던 책들을 다시 펼쳐 이야기 나누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어떤 독자는 “이 잡설은 희귀본 안내소다.”라고 말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잡설이 다룬 책이 새 책방에 없어 헌책방을 뒤지는 즐거움도 있었다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런 따뜻한 반응을 접했을 때, 연재를 하는 사람으로서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잘못된 기억에 의존해 실수를 한 것을 메일을 통해 고쳐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지난 호에 다루었던 『폭력에 대항하는 양심』의 저자인 스테판 츠바이크가 브라질에서 아내랑 권총자살을 했다고 제가 썼는데, 권총자살이 아니라 그 부부가 약물로 죽었다는 지적 같은 게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책을 만드는 것이 직업인 편집자들로부터도 과분한 반응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귀한 지면을 어지럽히며 하나마나한 책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내놓고 보니 2년이나 되는 긴 기간이었는데, 우리 현실과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중요한 책, 진실로 위대한 책들을 어떤 나름의 체계 속에서 다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도 있습니다. 넉넉한 지면을 믿고 맡겨주신 『참여사회』 편집팀 분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재에 관심을 표해주신 독자들께 다시금 “고마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드립니다.

2008년 8월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필요한 ‘쉼’을 주제로 서평 연재를 시작한
‘최성각의 독서잡설’이 201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년동안 귀한 책 이야기와 작가 최성각 님의 값진 삶의 경험을 들려주신
최성각 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참여사회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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