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3월 2021-03-01   466

[여는글] 우리가 오를 봉우리

여는글 – 27차 정기총회에 부쳐

우리가 오를 봉우리

글.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힘든 것도 참으며 무작정 오르다, 그 봉우리는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이어지더라’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김민기 선생의 노래 〈봉우리〉입니다. 얼마 전 이 오래된 노래를 우연히 듣다가 완전히 꽂혀 버렸습니다. 예전에 들었을 때는 음유하는 듯한 저 깊고 낮은 음색이 좋았었는데, 지금은 노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스며들어 박힌 듯합니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일지도 모른다는 가사는 지금이 우리에게 절실한 시기이기 때문일까요.

 

2020년,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염병 사태에 때로 허둥대고 때로 무기력하게 한 해를 보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사라졌고, 많은 이들의 삶의 기반은 흔들렸습니다. 감염 확산세의 부침이 계속되면서 안타까운 사정들도 늘어만 갑니다. 삶의 어려움은 가혹하기만 한데, 이를 외면하는 정치사회적 갈등은 진영에 갇혀 자기들만의 공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는 미래 사회의 낌새가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들은 저마다 높고 뾰족한 봉우리들을 가리키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단히 ‘바로 지금 여기’에 눈을 돌리려 합니다. 우리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삶의 어려움을 대비하고 구제하는 방식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감염의 위험도, 위험에 따른 고통도 취약한 이들에게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누군가의 일방적인 고통과 희생으로 버텨온 방역도, 같은 방식을 유지하기엔 나날이 위태롭게 보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부나 정치권의 선의가 아닙니다. 각자도생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가의 분명한 공적 책임입니다. 감염 예방을 위한 방역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이 흔들리지 않게 사회안전망이라는 방역도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2021년 참여연대 활동에는 이전에 비해 일부 변화가 있습니다.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취약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주목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분명히 하는 정책 제안과 법제도 개선 활동에 보다 힘을 쏟으려 합니다. 전국민고용보험 등 소득보장 방안이나,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주거 문제도 포함합니다. 이토록 깊어진 불평등과 넓어진 격차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높은 사회적 비용이라는 부메랑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동안 참여연대가 지속해 온 검찰, 공수처, 경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는 물론 법원개혁을 촉구하는 활동도 당연히 계속될 것입니다. 주요 사건들의 수사 관계자들을 기록하고 알리는 활동 기획도 강화할 것입니다.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과 차별과 혐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연대에도 힘을 보태려 합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상업적 활용도 일상화되고 있어, 이에 경종을 울리는 활동도 확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변화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단시간 내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꾸려는, 행동하는 시민의 힘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집요한 감시자이며, 때로는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바로 여기에서 종종 만나 뵙겠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봉우리를 오르겠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2021년은 냉소와 좌절보다 희망과 낙관에 가까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 김민기 〈봉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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