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7-08월 2021-06-30   1605

[특집] 공존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2. 반달곰 × 동물원 수의사

공존을 위한 동물원

 

글.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코끼리 없는 동물원』 저자

 

 

시골집의 오래된 앨범에는 동물원에서 찍은 내 어린 시절 사진이 있다. 혀를 길게 물고 어슬렁거리는 낙타 앞에서 내 표정은 다소 긴장되어 있다. 서울에 놀러온 조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고모는 동물원을 선택했다. 고모는 사진기 앞에 선 조카에게 연신 김치나 치즈를 해보라고 어르고 달랬지만 생기 없는 동물들이 내뿜는 알 수 없는 낮선 공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억 속 동물원은 능동 어린이대공원으로 알고 있었다. 입사 후 다른 동물원 수의사들과 이야기하다 당시 어린이대공원에는 낙타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은 지금의 창덕궁, 그 시절 동물원이었던 창경원이었다. 일제가 속마음과 다르게 고종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동물원이었고 나는 창경원이 생긴 지 100년 가까이 지난 후에 동물원에 입사하였다. 그러나 국내 동물원, 특히 지역의 작은 동물원의 시간은 창경원에서 멈춰져 있었다.

 

겨울을 못 견딘 따오기, 날지 못하는 혹고니

 

입사 후 동물원은 조류 관람시설을 확장했고 전시할 새들을 해외에서 들여오기 시작했다. 동물원에 도착한 동물 운송 상자에는 따오기, 저어새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따오기와 저어새들은 그해 한국의 겨울을 나지 못했다. 수입 서류를 뒤적여 보니 새들의 영문 이름 앞에는 모두 아프리카가 붙어있었다. 해외 사육시설에서 들여온 혹고니는 아무리 놀라도 날지 않았다. 우연히 펼친 날개 한쪽은 뼈가 잘려 짧아져 있었다. 영구히 날지 못하도록 절단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봄, 땅을 걷던 혹고니들 중 암수 한 쌍이 눈이 맞아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암수는 곧 마른풀과 나뭇가지로 둥지를 지었고 알을 낳았다. 다른 새들이 둥지 근처로 오려고 하면 쉭쉭- 소리를 내며 얼씬도 못하게 했고 짓궂은 꼬마들이 던지는 돌멩이도 견뎌야 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알을 지켰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의 모습은 어미와는 다르게 볼품이 없었다. 마치 동화 속 미운오리새끼 같았던 혹고니 새끼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어미를 닮은 우아한 자태로 물위를 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관람객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랐는지 어른이 된 혹고니 새끼가 큰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새장을 날아올랐다. 날 수 있는 새들이었다. 잠시 동안의 비행이었지만 어미가 날 수 없었던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끼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초 환경운동연합 회원모임 ‘하호’가 펴낸 보고서 『슬픈 동물원』과 황윤 감독의 동물원 새끼호랑이를 다룬 영화 〈작별〉(2001)을 보았다. 국내 동물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수도권 소재 동물원들이 변화를 맞았다. 그러나 지역의 작은 동물원에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동물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악한 시설에서 부상당하고 병에 걸린 동물을 치료하는 것뿐이었고 정작 그 원인이 되는 환경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동물원이 없어지면 동물원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2016년, 동물원 일을 작게나마 결정할 수 있는 동물관리팀장이 되었고 2017년, 시설의 열악함을 아는 분들의 도움으로 1억 원이 조금 넘는 청주시 예산을 받았다. 입사 후 가장 큰 예산이었다. 이 돈으로 두 개의 작은 동물사를 연결해서 정형행동

이 심했던 표범 ‘직지’의 집을 개선하였다. 이 무렵 우연히 찾아온 다큐멘터리 감독은 동물원에서 4년 동안 영화를 촬영했고 그렇게 영화 〈동물,원〉으로 전국개봉을 했다. 환경부와 청주시장 등 정책관리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동물원의 현실을 이해한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2018~2019년 환경부, 녹색연합과 웅담채취용 농장 곰을 세 마리 구조하면서 처음 국비가 들어왔다. 2020년 호랑이, 산양, 여우의 집을 개선해서 호랑이와 산양은 이전보다 넓어진 공간에서 살게 됐고, 실내에만 있던 여우는 본능대로 땅을 파고 내리는 비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욕탕 같았던 수달의 집을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토종동물의 방사를 위한 훈련장 공사가 계획되어 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청주동물원에 사는 표범 ‘직지’. 표범사 개선 후 직지의 정형행동이 사라졌다 ⓒ청주동물원

 

예산을 받을 수 있는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더 작은 기초단체나 민간 동물원들은 대부분 열악한 상황이다. 약자인 동물들의 운명을 운에 기댈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6년 「동물원수족관법」을 신설했지만 동물원 동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업계 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동물복지를 위한 구체적인 조항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2018년 대전동물원의 퓨마가 탈출해 끝내 사살되면서 동물원 존폐 여부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크고 작은 동물원 사건 발생과 그에 따른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현재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들이 발의 중이고 환경부도 ‘동물원허가제’ 등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매일 동물원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찾아보는 편인데 기사 댓글도 읽게 된다. 최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댓글들은 대부분 동물원에 대해 부정적이다. 많은 글에서 야생동물을 좁은 곳에 가두지 말고 자연에 풀어주라는 요구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야생동물들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최근 좁은 호랑이사를 넓혀주었다. 자신이 살던 곳인데도 변화가 생기자 반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적응하는 중이다. 게다가 국내 동물원에 사는 외국 야생동물을 원서식지로 돌려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동물원 동물 대부분은 태어나서부터 동물원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야생을 경험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 사는 일부 토종야생동물은 자연방사가 가능하지만 세심한 계획을 가지고 방사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굶어 죽거나 로드킬 당할 가능성이 높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웅담채취용 농장에서 구조된 반달곰을 살피고 있는 김정호 수의사 ⓒ녹색연합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나무와 해먹이 설치된 새 집에서 살게 된 반달곰 ‘반이’와 ‘달이’  ⓒ청주동물원

 

 

동물원 운영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4R

 

동물원의 운영 주체를 보면 동물원이 추구하는 목적을 대략 알 수 있다. 운영주체는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는데, 공립은 지자체나 공사·공단이고 사립은 기업이나 개인이다.

 

청주동물원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으로서, 공익에 목적을 두고 있다. 위락시설로서 시민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과거와 달리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고 지자체로서 이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몇 년 전부터 청주동물원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희귀하고 많은 동물들을 보여주는 것이 동물원의 과제였다면, 지금은 보호해야 하는 동물종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겨울이 되면 더 비좁은 내실에 갇혀야 되는 열대에 서식하는 동물은 자연 감소시키고, 보호받아야 할 토종야생동물을 데려오고 있다.

 

동물원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 ‘4R’을 정해 보았다. Rescue구조, Responsibility책임, Release방사, Reduction감소다. 

 

‘Rescue-구조’는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된 동물 중 자연에 나가 되려 고통 받을 수 있는 장해 동물은 인도적 안락사를 행하는데 이런 동물들을 동물원에 데려와 교육동물로서 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장해 동물은 삶을 이어갈 수 있고 구조 과정에서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 주변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Responsibility-책임’은 데리고 있는 동안의 책임을 뜻하는데, 동물이 지루하지 않게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야생동물의학 발전에 공헌한다. 이렇게 서식지 외에서 모아진 의학 데이터는 실제 서식지의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Release-방사’는 구조된 삵, 담비 등 토종 멸종위기야생동물이 새끼를 낳으면 방사 훈련을 통해 어미가 갈 수 없었던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방사 후 모니터링을 통해 서식지에 대한 연구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다.

 

‘Reduction-감소’는 동절기에 난방이 필요한 열대지역 동물들을 자연감소 시키고 구조된 토종동물을 보호하면서 동물원에서 사용했던 에너지를 저감하는 것이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다는 동물원의 온실가스 생산과 자원낭비는 모순이다. 

 

과거 동물원들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야생동물을 잡아와서 볼거리로 만들었던 공간이었다. 한마디로 자연을 ‘소비’해왔다. 동물원이 당장 자연을 위해 생산성을 갖추기에는 부족하지만, 최소한 자연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실행과제로 우리 주변의 토종 멸종위기 야생을 보호하며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코로나 시대를 경험한 우리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➊ 하호는 ‘하늘다람쥐에서 호랑이까지’라는 뜻으로, 2002년과 2004년 두 번에 걸쳐 서울대공원 동물원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했다

➋ 틀에 박힌 것 같이 가소성 없이 종종 반복되는 행동. 격리 사육하는 동물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특집종을 넘어서는 연대 

1. 채식하다가 양돈업자가 된 어느 부부 이야기 김성만·송유하

2. 공존을 위한 동물원 김정호

3. 그만 죽여라 v.2021  박현선

4. 장애인-동물 동맹은 우생학-자본 동맹을 넘을 수 있을까? 정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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