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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제대로 아시나요-독후감

자유게시판
작성자
덕진
작성일
2021-02-05 20:48
조회
285

독 후 감 - 북한을 제대로 아시나요?


 


북한’(부제; 전체주의 국가의 내부 관점, 475. 2020.09.28. 초판발행)을 읽었다.


지은이 뤼디거 프랑크는 현재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동아시아 경제와 사회교수로 일하며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경제학 박사인데, 한국학과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도 갖고 있다. 동독 출신으로 동독 붕괴 이전 소련에서 4년 간 거주했고, 1991년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했다. 이후 30년간 매해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을 탐구하며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남한에서도 대학교 강단에 선 일이 있다.


이 책은 원래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위해 씌여진 것이다. 그간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책들이 북한에 대한 비평이나, 특정 부문에 대한 단편적 소개에 그치는 데 비해 이 책은 총체적인 소개라 북한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책에 주요 구절마다 밑줄을 쳐가며 두 번을 읽었다. 책의 차례에 따라 중요한 서술을 간단히 소개한다.


 


. 한국의 역사와 전통


1. 남북한은 5,000년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공통점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남북이 달리 해석하는 부분은 항일운동과 한국전쟁이다.


2. 한국인의 뿌리는 단군이다. 시조의 유골이 평양 근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통일한국의 중심지는 평양이 되어야 한다는 북한 지도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리라.


3. 조선왕조 시대 성리학 중심의 문화는 전통으로 전해져, 북한 주민에게 충·효를 바탕으로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성립과 유지에 활용되고 있다.


4. 2차세계대전 이후 조선의 전후처리에서 남아시아에서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이 한국의 신탁통치를 관철시켰다.


 


. 이념과 지도자


1. 서양사회에서 각 개인은 올바르게 행동하기위해 매뉴얼이나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로 자유로운 경제 질서라는 매우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에 반해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전혀 다른 논리가 타당해진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생각은 비난을 받고 개인의 이기심은 유죄선고를 받는다. 자유주의자라면 아마도, 인간을 항구적으로 천성과 반대로 행동하게 하려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인권 침해는 거의 피연적인 일이다.


 


2. 주체사상은 1960년대에 등장했는데, 4개의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사상적으로는 주체’, 정치적으로는 자주’, 경제적으로는 자립’, 군사적으로는 자위등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것의 주인이므로 인간이 사회의 법칙성에 종속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거부된다.


또한 주체사상은 민족주의로 분류되는데, 이는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여 연합하라!”는 공산당선언의 마르크스의 계급사상과도 모순된다.


 


3. 선군사상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1995~1997년의 기아사태 시기에 등장한다. 선군사상 도입으로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김정일은 선군사상으로 대단한 성공작을 낸 탁월한 이론가로 찬양된다.(110)


 


4. 김일성-김정일주의


20165, 7차 노동당전당대회에서 김정은의 연설을 인용하면,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상과 의도대로 혁명과 건설을 밀고 나가며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조국과 혁명, 시대와 역사 앞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빛내어 나가는 성스러운 투쟁이다.”


 


김일성은 1912415일에 태어났는데, ‘태양절인 이날은 이 나라의 가정 큰 명절이다. 2012년부터 김정일의 생일은 광명성절이라 불린다.


2012년 이후로 태양궁전에 작고한 두 지도자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보존한다.


 


학교성적표의 맨 위에 나오는 5 과목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의 혁명적 활동’,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사’, ‘항일의 여성 영웅 김정숙 어머니의 혁명사


 


5. 북한 사람들과의 수많은 대화에 근거해서 나는 북한에서 이념은 여전히 대다수 주민에게 내면화되어 있고, 그들이 이념을 함께 떠받치고 있다고 주장하겠다. 이는 이념과 밀접하게 결합된 민족주의, 국가가 열렬히 유지하는바 전쟁 상황과 포위상황이 지속된다는 마음가짐, 거의 깨뜨릴 수 없는 국가의 정보독점 등에서 비롯된다.(69)


 


. 정치와 외교


1. 헌법을 토대로 정치체제를 떠받치는 권력의 세 기둥인 당, 행정부와 의회, 군에 대해 관찰한다.


븍한은 외교적으로 형님국가가 따로 없다. 오늘날 이따금 중국에 그런 역할을 할당하기는 해도 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거나 베이징에 압력을 행사할 명분으로 그러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북한은 경제적·정치적·군사적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다. 때문에 이 나라는 외부의 영향에 덜 민감하고, 통일의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다.(355)


201658, 7차 로동당전당대회에서 김정은이 핵심연설을 하는데, 맨 처음 과거를 분석하는 부분에서 직접적인 표현으로 중국을 비판한다.(391~2)


 


2. 19606차당대회에서 3,220명의 대표자가 약300만 명의 당원을 대표했는데, 이는 전체 주민의 12.2%에 해당한다.


 


3. 북한은 주민 수 대비 과도한 규모의 군대를 가진데다가 정규 군대와 준군사적 군대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연간 국가 예산의 약16%가 군대를 위해 지출된다. 중국에서는 군부가 생산시설의 소유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북한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관찰된다.


 


. 경제-연마하지 않은 금강석


1. 경제가 어려운 것은 세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국가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라는 체제에 내재한 비효율성이고, 둘째는 에너지 특히 전력부족, 셋째는 국제 경제제재다. UN경제제재 중 2/3를 미국이 추진했다.


 


2. 201312월에 SRE미네랄스사는 조선천연자원무역회사와 평양북부 대략 2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청주지역 희토류에 대한 대규모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경희토류와 중희토류 매장량 추정치는 대략 21,600만 톤에 이르는데, 지금까지 전 세계에 알려진 총 희토류 규모 16,000만 톤을 뛰어넘는다. 1997년에서 20108월 사이에 광산지역의 41%138개 중국-북한 합작회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남한에서는 중국의 이런 활동에 대한 반응이 별로 없다.(166) 북한에는 우라늄 매장지가 있다.


 


; 201097, 센카쿠열도 인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의 충돌로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중국은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희토류 카드를 꺼내든다. 이에 일본은 체포했던 중국 선장을 곧장 석방했다. 국내 유일의 희토류 연구자 김동환 박사의 저서 <희토류 자원 전쟁>의 부제는 희토류 없이는 애플 아이폰도, 토요타 전기차도, 미국 전투기도 없다이다.


 


3. 2000년 이후로 가공업의 몫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25%에서 36%로 올라섰다.


남한의 한국은행이 내놓은 북한 경제성장율 수치는 2017년에 -3.5%, 2018년에 -4.1% 등 극적으로 감소했다고 본다. 반면에, 2018년 가을에 발표된 북한의 수치들은 20173.7% 경제성장을 했다고 알려준다. 이것은 연간 예산 자료에 근거한 나의 계산에 상당히 근접한 수치이다. 토착경제의 성장은 북한의 지속적인 해외 무역적자를 메우는 재정 원인이 될 수도 있다.(423~425)


 


4.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2012년 총액의 88% 이상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다.


20144, 러시아 의회는 수십 년 전부터 남아 있던 북한 국가 채무의 약 90%, 미화로 약 100억 달러를 탕감하기로 의결했다.(185)


 


. 개혁-한걸음 전진, 두 걸음 후퇴


1. 중국의 변화에 반응하여, 1984년 북한 최초의 합작경영법이 나타났다. 또한 기업체 관리자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주는 새로운 장부체계도 도입됐다.


 


2. 2002‘7·1경제관리개선조치로 여러 변화가 동시에 이뤄졌다. 핵심 요소는 가장 중요한 물품과 서비스의 가격조정이었다; 쌀값은 550인자가 오른 반면 옥수수는 50인자만 올랐다. 임금상승은 18인자와 54인자 사이다. 또한 보조금 철폐도 있었다.


주목할 만한 조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북한 원화의 가치가 68인자 곧 6,800%나 떨어진 것이다.


 


3. 위의 7·1개선조치는 너무 빨리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 이유로는 대외적으로 미국이 북한의 개혁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으나, 어쨌든 워싱턴은 단호히 도와주지 않았다. 2003년 초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평양의 지도부는 개혁에 대한 각오가 줄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일본에서 수십억 달러의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도 큰 타격이었다.


대내적으로 처음 2년 동안 북한의 인플레율이 연간 200%에 달했다. 집단주의가 희생되면서 개인주의가 더 많이 뻗어나가니, 재산범죄가 늘어나고, 공공질서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200911월에 지도부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은 채 기존화폐를 1001 비율의 새로운 화폐로 바꾸는 일을 단행했다. 1인당 일정금액만 교환이 되었다. 이는 7·1조치 이후 몇 해 동안 현금 또는 은행권의 형태로 누적된 재산의 상당부분을 없애려는 의도였다.


 


. 경제특구-수입 창출원이자 위험 요인


사회주의 체제에서 경제특구는 새로운 이념과 계획을 전국에 적용하기 전에 한번 실험해보는 고립된 실험실이다.


 


1. 라선


1993131,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담당 위원회의 결정 제28호로 라진선봉 경제무역지대법이 가결되었다.


2007년에 외국배들에게 라선항구가 열렸다. 201210월에 라진-원정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중국 및 러시아와의 도로가 연결되었다.


 


2008년에 러시아가 라선 항구로 통하는 철도를 현대화할 수 있도록 52Km 거리의 북한 영토가 49년 간 러시아에 조차되었다.


세 개의 부두 중 50년 동안 하나는 중국에, 다른 하나는 러시아에 임차되었다.


 


2. 금강산


1998~2008년 총 193만 명이 금강산을 방문했는데, 그 중에서 외국인은 13,000 명에 지나지 않았다.


 


10년 햇볕정책의 성과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늘날 거의 누구도 20027월 북한의 개혁을 관광사업, 정상회담, 그 외 다른 형태의 남북협력 등과 연결시켜서 바라보지 않는데, 이는 부당한 일이다.


 


2008년 초에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비핵개방3000’을 내걸고, 지난 시절 만들어진 사업들을 하나둘 되돌리고, 실천 계획도 멈추었다. 20087월에 일어난 박왕자씨 사건도 이런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남한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을 중단시켰다.


 


3. 개성


20006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8월에 현대와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사이에 서명이 이루어졌다.


남한은 여기에 미화 8억 달러를 투자했고, 2015년에 총 123개 업체가 가동 중이었다. 2015년 생산량은 미화 5억 달러에 달했다.


 


개성공단에는 53,000여 명의 북한 여성과 900 명가량의 남한 남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 임금은 월 미화 144달러로 연간 미화 12천만 달러였다.


2016210일 박근혜 정부는 공단가동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 조치에 대한 동기는 매우 의문스럽다.


 


연간 1억 달러 정도 북한의 수입으로 인해, 평양이 감당하는 정치적 이념적 위험은 큰데 반해, 남한은 베일에 가려진 북한에 대해 엄청난 정보(지식)를 얻는 다는 이점을 감안해야 했다. 전략적 관점에서 남한은 손실이 크다. 국가안보 핵심문제에서 미국과 중국 등 다른 나라들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에.


 


개성공단 폐쇄로 남한은 북한에게 새로운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베이징은 언제나 개성공단을 한반도의 안정화 요소로 보았으니, 장차 갈등이 나타날 경우 남한에 더 큰 책임을 떠넘길 수가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평양의 지도부는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공단의 존속에 강한 관심을 가졌었다. 이것은 응원할 가치가 있는 실용주의의 표시다. 누구도 경제제재나 협력거부로 이 지역의 확충과 발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 김정은 치하의 북한


1. 오늘날 북한의 겉모습은 열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91년의 모습과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할 만큼 거리가 있다; 자동차, 현금카드, 광고, 식당과 상점 등장 등


북한은 의심의 여지없이 건축 붐을 겪고 있다. 나라를 여행해 보면 거의 어디서나 집중적인 건축사업을 볼 수 있다.


20165, 전당대회를 앞두고, 저자는 북한 지역들을 여행했는데, 전력공급, 수돗물 공급이 안정적이었고, 들판에는 트랙터가 도로에는 화물자동차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2016년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변화가 이루지고 있다; 여성들의 짧은 머리, 염색 머리, 온갖 형태와 색깔의 의상들, 애완동물, 휴대전화, 태블릿PC


주민들의 여가활동도 다양해졌다; 식당들의 경쟁으로 인한 다양한 요리 등장, 인라인 스케이트, 백색가전 판매, 수입 바나나 등장, 헬스장 등장, 모란봉악단 창설, 김정은의 전례 없는 영부인 동반 등


 


3. 아주 분명하게 새로운 중산층이 이미 형성되었고, 특히 수도에는 그 수가 아주 많다. 그들은 상류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전반적으로 부가 느리긴 해도 꾸준히 아래쪽으로 흘러서 도군 인민위원회 소재지까지는 이미 도달했고, 아마도 언젠가는 전국에 도달하리라는 인상을 받는다.(299)


나는 2014년 중반에 이 중산층을 200~25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는 전체 인구 약 2500만 명의 10%에 해당하니 상당한 숫자다.


젊은 지도자의 개혁 가능성을 두고 어느 정도 낙관론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 핵무기, 미사일 전략들


1. 북한은 그 주적들 사이에 있는 전통적 전력의 비대칭성이 중요했는데, 북한은 핵위협을 통해 그 비대칭성을 해소하려 한다.(409)


 


2.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의 과정을 되돌아보자.


1994년 북·미간 제네바합의가 있다. 북한은 핵연료재처리가 가능한 흑연감속로의 운영을 중단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경수로 원전 건설과 에너지 부족을 대체하기 위해 중유 공급에 합의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경수로 건설을 위한 자금의 70%를 충당했는데, 미국의 새 대통령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제네바합의는 파기됐다.


 


2005‘9.19, 6자회담 공동성명발표가 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 제조과정을 중단하고,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에너지기구에 복귀한다는 합의였다. 이를 위해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며, 남한에서 매년 200KW의 전력을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합의도 마카오의 BDA은행에 예치되어있던 북한 자금이 불법세탁자금이라는 미국 재무부의 의혹 제기와 동결 그리고 20065월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으로 파기되고, 그해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한다.


 


3. 2018612, 세계는 긴장해서 싱가포르를 바라보았다. 이어 20192월 세계는 다시 하노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대륙을 종단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후문에 따르면, 실무진 합의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대가로 미국은 제재조치 중 5개를 제외하기로 했다는데, 강경파 대통령안보보좌관 죤 볼턴이 파기시켰다고 한다.


 


. 통일-미래 전망


독일의 분단과 한국의 분단은 의미 있는 비교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서로 다르다.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통일 논의에서 양측 모두 인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서독이 통일을 통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입었다는 얘기는 잘못된 정보로, 그 반대가 맞는다. 이용할 수 있는 숫자만 보아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서독에서 동독으로, 계산에 따라 3500~5000억 마르크가 송금되었다. 같은 기간에 동독의 주들은 서독에서 9300억 마르크 상당의 물자와 서비스를 수입하고, 겨우 2210억 마르크 상당의 상품과 서비스를 서쪽으로 내보냈다. 7180억 마르크라는 차액은 송금 받은 금액을 훨씬 능가한다. 동독 사람들은 그 차액을 자신들의 저금과 서독 제품 구입으로 충당했던 것이고, 그로써 서독에 막대한 경제적 호황이 나타났다.


 


미국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물러날 것이다. 통일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고분고분하게 중국과 동맹을 맺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베이징이 이 시점이 다가왔다고 여기면 중국은 성급하게 통일을 추진할 것이다.


 


중국 및 미국과 등거리 관계를 추구하는 아세안의 예를 좇아 남북이 일종의 동아시아연합을 결성하면 어떤가 하는 제안을 한다. 통일을 이룬다 해도 어차피 통일된 한국은 팽팽히 대립하는 미·중 사이에서 절묘한 중간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니까 통일에 앞서 남북이 동맹관계를 만들어낸다면, 강력한 외세에 맞서 서로를 보호하면서 통일을 이룰 때까지 시간도 벌 수 있다.


 


남한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대담하게 정치적·경제적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괴테의 말을 거칠게 인용해서 망치가 되어야지 모루가 되지 않으려면


2021. 02.05, 맹 행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