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09-17   1047

[제1호 쓴소리] 김대중대통령 친전 쓴소리하나

대통령님, 홍업씨의 강남 '쉼터'가 마음에 걸립니다.

대통령님, 지난 7월인가 8월인가 <뉴스 플러스>라는 주간지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 다. 바로 대통령님의 차남 홍업씨가 강남에 50평짜리 사무실을 하나 차리고 있는 것을 확인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당장 '밀실 정치'라고 몰아붙였고, 본인은 '쉼터' 일 뿐이라고 해명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그까짓 사무실 하나 가지고 뭘 그래, 해 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 아시지 않습니까? 몇해 전 <한겨레21>의 기사가 기억납니다. 거 기에 김현철씨가 대학원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도 청와대와 지척인 광화문에 사무실 하나 를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고 그 뒤부터 한겨레신문과 김현철씨 사이에 건곤일척의 싸 움이 벌어졌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결국 한겨레신문이 제기한 여러 의혹들이 풀리기 시작하 면서 그 어린 김현철씨가 대통령 아버지를 등에 업고 천금같은 국정을 우롱하고 수없이 이 권에 개입해 뇌물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홍업씨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진정코 생각지 않습니다. 김현철씨가 감옥 신세를 지다 가 보석으로 풀려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홍업씨가 그런 어리석은 전철을 밟겠습니까. 김현 철씨가 아직 철모르는 아이라면 홍업씨는 앞뒤를 여러번 재고도 남을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어 압니다. 야당은 '밀실 정치'의 비밀 아지트라고 정치적 과장법을 쓰고 있으나 대 통령님이 그런 "비트"를 허용하실 턱이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걱 정이 앞섭니다. 워낙 나라가 뒤틀려 있고 윤리가 걸레가 된 세상에서 살다 보니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아태재단> 부이사장 자리를 맡고 있어서 거기에도 방이 있으나 사람들이 하도 몰려들어 조용히 지낼 곳이 필요했다고 홍업씨가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강남 사무실이 50 평이나 된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그곳을 그냥 쉬고 지낼 곳이라고 보겠습니까. 김현 철씨는 언젠가 그런 비밀 사무실을 공부방이라 하지 않았던가요. <아태재단> 부이사장실은 사무실이어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강남의 그 넓은 방은 '쉼터'여서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기도 썩고 남도 썩이는 데 귀재인 사람들이 대통 령의 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겠습니까. 짐작컨대, 소재가 확인되면 돈다발을 싸들고 지옥이 라도 쫓아갈 사람들이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그 극성과 등쌀을 견뎌낼 만한 줏대는 홍업씨 아니라 누구라 할지라도 기대하기 어려울 터입니다.

대통령님, 제가 망령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래도 저는 걱정을 떨칠 수 없 습니다. 행여라도 "친구니까", "동창이니까", "성의니까" 받아두라며 억지로라도 봉투를 안기 고 가는 날이면 정말 어쩌나 싶습니다. 김현철씨라고 처음부터 이권에 개입하겠다, 돈을 먹 겠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교언영색에 미혹되어 그 자들의 돈을 받 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해관련 공직자에게 말 한마디 거들고, 공직자들은 대통령 아들의 말 을 거스르지 못해 마침내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습니까?

대통령의 아들에게도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향유할 자유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헤아릴 때에, 적어도 오늘의 현실에서는 대통령의 아들은 어 쩔 수 없이 그런 자유를 스스로 제어하는 현명함이 절실하다는 것에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들은, 좀 심하게 말하면 아버지의 임기 중에는 쥐 죽은 듯이 살 수밖에 없는 천형같은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김대통령께서 기나긴 세월 동안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화 운동가로서 고생할 때 아드님들도 함께 고통 당한 것을 누구인들 모르 겠습니까.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나라의 대통령은 어떤 의미에서 황제의 옥좌에 앉은 형국이지만, 한편으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형극의 길을 걷는 존재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홍업씨의 강남 사무실 문제에 엄격히 대처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쉼터건, 사무실이건, 있다면 패쇄해야 마땅합니다. 은밀한 공간에서 우연히라도 부적절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아니 마주치는 일마저도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립니다만, 아태재단 부이사장 자리도 홍업씨에게는 적절치 않습니 다. 그분에게 그 자리에 걸맞는 능력이 없다거나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통령님이 당초 세운 아태재단, 그리고 퇴임 후 여전히 활동 공간으로 유지되어야 할 아태재단이 지나 치게 정치화하거나 친족의 관여가 눈에 띄는 단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씀입니다. 친인 척이 이권에 개입할 만한 여지를 바늘 구멍만큼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칫 방 심하여 만약 1, 2년 뒤 에 친인척이 사소하게나마 이권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거나 더러운 돈을 받은 일이 밝혀진다고 생각하면 대통령께서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으십니까? 저 또한 상상만으로도 크게 실망되어 마음이 한없이 침울해집니다.

대통령님, 공인이라고 하여 핏줄 사랑이 남보다 덜할 터가 없겠건만, 이토록 가혹하단 말 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국정을 책임진 분의 분별없는 핏줄 사랑 의 후유증을 뼈아프게 겪은 지 불과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런 국민이 오늘도 대통령 가족들 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음을 다시 유념하셔야 할 때인 듯합니다.

껄끄러운 사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연대"맑은사회만들기본부"에서 자원봉사하는

김보영 올림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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