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10-17   1023

[제5호 쓴소리] 감독관 늘린다고 실업대책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대통령께서는 12일 국무회의에서 '되는 게 없는' 실정을 두고 내각을 심각하게 질책했습니다. 특히 실업대책에 대해 "10조원의 엄청난 돈을 쓰고 있으나 효과가 작아 실업대책이 겉돌고 돈만 낭비하는 게 아니냐"며 "실업문제는 정권 명운과도 관계된 일이므로 노동부와 보건복지부는 철저히 실천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협력을 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무원들은 각 시·도별로 1천3백20명의 공공근로 감독요원을 선발, 사후감독을 철저히 하기 로 했다고 합니다. 또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실업대책담당 부처에서 감독인원을 보강하고 전국 공공근로사업의 타당 성을 평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중단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감독관이 내려와본들 —

이같은 공무원들의 재빠른 적응력에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철저히 감독하는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직자들은 "공공근로 현장에서 동사무소 공무원 등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 모욕감을 느꼈다" 라고 호소하고, 구 청·동사무소 공무원들은 "실업대책 업무까지 떠안아 야근을 하는 등 골치" 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답니다. 이런 상황에서 풀뽑기, 휴지줍기 말고 정말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익적 사업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라고 강요해봐야 될 일이 아닙니다. 공공근로 사업아이템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선공무원들이 이런 태도를 버리지 않는 이상 아무리 많은 감독관을 내보낸다고 해서 공공근로의 실효성을 높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이 자기 업무를 볼 수 없다니 —

공공근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보호대상자 등 취약계층을 꼼꼼히 살펴서 필요한 지원대책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실제로 도와주어야 할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이 각종 행정잡무에 시달려 본연의 임무는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국민회의 유선호, 김병태의원실에서 전국 시도 및 읍면동에 배치된 사회복지전문요원 2천9백여명 가 운데 4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중 65%에 달하는 요원들이 하루에 반나절 이상을 사무처리 등 서류 작업에 시달리고 정작 취약계층 가정방문 등 현장복지활동이나 상담에 하루 3시간 이상 쓰는 요원은 8.5%에 불과하 다고 합니다. 대다수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이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3개월에 한번도 방문하지 못한다고 하니 정말 어 느 집에서 굶고 있는지, 부모가 집을 나가 아이 혼자 버려져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라를 경악케했던 마산의 강정우어린이사건 역시, 그 아버지가 폐결핵 등 장기질환에 시달려온 거택보호대상자로서 만약 일선 사회복지전문요 원이 제대로 상담만 했다면 하다못해 학교에 내는 급식비라도 면제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아이는 허기를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직을 당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국민들이 정부의 실업대책을 피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실업대책을 수십가지 나열해놓는다고 해봐야 실직당한 사람에게는 별 쓸모가 없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직을 당한 사람이 과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곰곰히 따져보면 답은 금방 나올 것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편리하게 가까운 곳에서 구직정보를 얻을 수 있고, 직업훈련이나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는 원스톱창구입니다. 동사무소나 구청같은 곳에서 구직등록만 하면 마땅한 직업소개를 해주고, 당장 일자리가 없으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실용성있는 직업훈련을 안내해주고,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생계지원방안을 차근히 설명해주는 그런 편리하고 종합적 인 실직자지원창구가 시급합니다. 그런 창구에는 실직자의 처지에서 친절하게 상담해주는 전문요원들이 충분히 배치 되어 이런 기본적인 요구외에도 실직자의 고립감이나 소외감을 덜어줄 수 있는 각종프로그램을 안내해주고 실직자 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지원책도 소상히 설명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실직자,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충분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선기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부, 복지부, 행자부, 자치단체가 중구난방의 실업대책을 추진해가면서 서로 협조도 안되고 한 창구에서 하는 기능을 다 른 창구에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직자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지치고 실제로 도움되는 지원은 찾기 힘드니 결국 정부를 욕하고 불신하는 것 아 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읍면동사무소의 주민복지센터로의 기능전환은 어떻게 되가고 있는 건가요? 보도에 따르면 행자부 주도로 읍면동사무소를 '복지센터'가 아닌 '자치센터'로 개편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복지'라는 이름을 '자치'라는 이름으로 달리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것이 주민들 특히 실직자나 저소득층에게 복지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가 아닌 그냥 동회관같은 것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는 식으로 바꾼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동부는 또 노동부 독자적으로 고용안정센터를 전국에 162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각 구 청들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구직상담창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래서는 정말 실직자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안될 것 같습니다.

노동부가 하고 있는 고용보험업무, 고용안정지원, 고용정보제공, 그리고 복지부가 하고 있는 생활보호사업, 실직노숙 자지원, 행자부가 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 등을 하나로 묶어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노동부와 복지부를 통합하고 통합된 부서가 일선 주민복지센터를 창구로 하여 철저히 대민서비스를 전담하 도록 하는 겁니다. 여기에 민간이 하고 있는 상담, 실직자재활프로그램, 의료지원, 직업알선 등 다양한 지원사업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동사무소에 한번만 찾아가면 종합적 안내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통령님, 이제라도 수요자를 위주로 하는 실업대책으로 큰 줄기를 바꿔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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