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2-02-17   2710

[9기 인턴후기] ‘군고구마 콘서트’의 뒷이야기

12월 27일부터 2월 9일까지 20명의 20대들이 참여연대에서 “행동하니까 청춘이다”라는 이름으로 9번째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시민사회에 대한 교육 및 체험을 통해 느낀 소감을 여러차례에 걸쳐 후기를 올립니다.

 

‘꽃보다 남자’의 ‘군고구마콘서트’
34일간의 이야기들

9기 인턴 민경
 
 
군고구마 콘서트
군고구마를 먹으며
고민을 나누어 봐요.
구체적인 당신의
마음의 소리를.

 
2012년 1월 4일 수요일
참여연대 9기 인턴 in 우이동 MT촌.

막연함의 시작.
 
복지라는 주제로 직접행동을 준비하기 위해 결성된 그룹, ‘꽃보다 남자’.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기본생각아래,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그래서 사회적 기업에 주목해야한다는 의견. 그러나 제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도산의 위협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기업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부의 지원제도 개선을 위해, 그리고 법안 개정을 위한 10만 명의 청원서명을 받겠다는 굉장히 크고 막연한 기획들.
막연했던 기획만큼 준비과정 자체도 막연 그 자체였던 시간.
 
 
2012년 1월 17일
막연함이 술에 취한 꽃보다 남자를 만났을 때.
 
막연함도 막연함 나름의 의미는 지니고 있었다. 자유로운 사고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프레임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기에.
대책 없이 무작정 시작한 노미까이 회의에서 인생을 뒤흔드는 큰 깨달음을 얻기까지.
편안한 마음과 낯선 곳에서 알콜과 함께라면 창의력이 생긴다는 것을.
 
“자, 지금 이 순간부터 회의 시작하자. 시~작!” 라고 회의를 시작하면 이어지는 것은 무거운 침묵뿐. 점점 무거워져만 가는 머리. 우리들의 노미까이(술자리) 회의는 시종 즐겁고 유쾌하며 웃음이 넘쳐나는 흥겨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했다. 그 결과 탄생한 군고구마콘서트. 그 언젠가 참여연대 홍보동영상에서 보았던 민생탐방 프로젝트 민심택시, 올 겨울에는 군고구마장사를 해보고 싶었다는 나의 자잘한 겨울방학 계획,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행사가 있는 2012년의 의미와 마침 지금이 2012년의 시작이라는 시의적절함. 그러면서 잃지 않고 유지하려던 대학생다운 유쾌함, 재기발랄함이 빚어내는 콘서트분위기.

유쾌한 분위기에서 모든 계획이 시작되었고 살이 덧붙여져 구체적인 사항이 추가되었으며 방향성, 즉 전략이 수립되었다. 사후 계획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날의 회의는 직접행동의 모든 것을 결정했고 마침표까지 찍었다. 그리고 “놀면 창의력이 생긴다!”는 정태인 선생님의 강연 내용 중의 한 문장이 인생의 교훈으로 머릿속에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속전속결, 그리고 순탄함
 
큰 틀이 잡히자 구체적 계획과 예산안 편성과정은 매우 순탄하게 흘러갔다. 고구마의 시세, 고구마를 담아줄 봉투, 피켓과 홍보문구제작까지. 가장 중요한 군고구마 굽개(?)는 환경운동연합의 협조 덕분에 무상으로 대여할 수 있었고, 덤으로 장작까지 얻을 수 있었기에 초기예산안과 비교해 확연히 적은 예산이 소요되었다.
  
2012년 2월 2일 목요일
최고의 리허설.
 
직접행동이 있을 2월 6일 월요일을 4일 앞둔 2월 2일 목요일. 유난히 흐리고 춥던 그 날. 피켓제작과 동시에 군고구마 굽기 시연과정을 가질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지를 오리고 접고 그려 넣기를 했던 기억이 언제였던지,,,
 참여연대 지하 1층 세미나실과 그 바로 밖에 있는 개방된 좁은 통로에서 군고구마 굽개 안의 장작이 타면서 내는 시골의 향기. 매캐한 냄새와 추위에 떨던 남루한 행색.
모든 것이 정겹고 즐거웠고 애틋했던 시간. 그리고 이제는 몸서리치게 그리워진 그 시간.
 
완벽한 준비와 리허설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고 묘한 흥분감은 달콤한 어지러움을 호소케 했다. 그리고 추위에 대비해 기능성 옷을 사러가는 지혜와 용호의 뒷모습에선 여유로움의 극치를 맛볼 수 있었다.

 

군고구마_2.jpg

 
2월 6일 월요일
결전의 날.
새옹지마 (塞翁之馬)
매우 순탄했던 우리의 계획은 결전의 날. 예상 밖 변수들이 장애물로 변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간밤의 매서운 추위 앞에 우리의 운송수단, 스타렉스의 배터리는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버렸던 것. 그리고 한 가지 간과했던 계획. 어디에서 진행할 것인가를 두고 당일까지 회의는 계속되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어야 할 것.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 할 것.
하지만 ‘공권력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곳’일 것.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한 인사동길 입구.
사실은 그 무엇보다 가까운 곳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결과.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해버린 우리.
그리고 든 생각. “어쩐지 너무 순탄하더라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를 만끽하기엔 상황이 급박했다.
거기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격언에 ‘좋아요’를 누를 여유는 사치에 불과했다.
 
꼼짝없이 발이 묶여버린 우리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것은 예상 밖으로 포근했던 날씨.
다행히도 예상보다 빨리 잠에서 깨어난 배터리는 힘찬 기지개와 함께 시동을 걸어주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참 뒤쳐져 시간이 없다는 조급함과, 그래도 시작은 했다는 안도감, 막상 시작을 앞두고 밀려오는 묘한 긴장감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인사동으로 향했다.
 
기이한 청년들
 
고구마 굽기 담당 동찬과 용호, 사진 및 동영상 촬영과 전체적인 조율에 병일. 홍보와 진행에 지혜와 민경. 누구하나 빠짐없이 각자 자연스럽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해냈던 우리들. 유니폼 대용으로 맞춰 입은 국군 예비역의 상징, 황색깔깔이(방한상의)가 이 날 만큼은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났고, 지혜의 두 볼에 붙인 빨간 종이 연지는 그녀의 환한 미소를 더욱 환하게 북돋았으며, 사진기를 든 병일의 모습은 어느 유명 사진작가의 그것, 아니, 잔뼈 굵은 노련한 방송국 프로듀서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시커먼 연기만 무섭게 내뿜던 군고구마 굽개가 제 역할을 하며 본격적인 군고구가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공짜라는, 약간은 교활해 보이는 유인책을 들고 ‘내가 만약 2012년 대통령이라면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는 것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했다.
처음으로 관심을 보여주던 분들이 붙여준 포스트잇에는 역시 물가안정, 반값대학등록금 이야기. 인사돌길 정문에 자리를 잡고 황금색 깔깔이를 입은 채 피켓을 내걸고, 서툰 동작으로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군고구마를 굽고 있는 이 기이한 광경. 따로 소리 높여 홍보를 필요치 않는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매캐한 연기에 항의 차 방문하셨다가 우리의 취지를 알아보시고는 포스트잇 서너 장을 요구하시며 주위 사람들한테도 적어달래서 갖고 오겠노라 약속하셨던 인근 상점 아주머니, 우리가 자리를 잡고 설치를 할 때부터 떠나지 않고 계시며 “곧 단속반이 온다”며 은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느 할아버지, 대학 합격이 소망이라며 배시시 웃던 재수생 딸과 그녀의 부모님, 응원과 게릴라 플래시몹을 위해 달려온 신민아조의 율동을 같이 따라하던 여중생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어린 소신을 밝혀준 여고생.
그리고 한국인 친구와 함께 관심을 보였던 어느 흑인여성이 직접 포스트잇에 적어준 문구. Protect korea’s history and custom.
  
열기가 한껏 달아오른 군고구마 굽개처럼 피켓 앞에서 저마다 포스트잇에 바라는 것을 적는 사람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그 분들이 적어준 소망들이 행여 짓궂은 바람에 날아가지나 않을까 일일이 테이프로 덧붙여 고정을 시키고, 펜과 종이를 나누어주던 분주했던 손. 얼굴엔 미소가, 가슴엔 따끈따끈한 난로가, 머릿속엔 짠한 마음과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군고구마_3.jpg

 
단속반 아저씨들의 등장
우르르 뒤에서 몰려오는 검은 점퍼의 아저씨들. 그냥 지나가는 시민들이겠거니 생각했었지만.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종로구청 마크가 선명한 검은 점퍼의 여덟 명 정도의 아저씨들이 어느 샌가 우리 앞에서 철거를 요구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열기. 일순 감도는 긴장감. 공포로 다가오던 순간의 정적.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건만 실제 마주한 공권력의 힘은 무섭고 강하며 차갑고 냉정했다. 판매의 목적이 아님을, 단순 앙케이트 조사임을, 그리고 앙케이트 참여자에게 무료로 군고구마를 나누어주고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했지만 거대한 얼음으로 만든 문으로 걸어 잠근 아저씨들의 마음을 열기에는 우리의 열기가 부족했다. 그들은 철거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뒤를 돌아보니 대기 중인 1톤 트럭.
 
지난여름, 노점상인 단속 현장의 적나라한 폭력성을 실제로 목격했던 만큼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한 짜증이 밀려왔다.
 
간사님께 긴급호출.
간사님과 연락이 닿은 휴대폰을 아저씨께 건넸다.
무슨 영문인지 다소 너그러워진 말투로 아저씨들은 우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 ‘타이르기’ 시작했다.
“이런 것은 미리 신고를 하면 되는데 왜 안했느냐”, “왜 미리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여기는 안 된다”, “사람이 많이 다니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실제 민원이 들어왔냐?”는 질문에 ‘예약된 항의전화’가 마치 ‘정교하게 짜인 극본’처럼 ‘극적인 순간에 있을 예정‘인지 “곧 들어올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기해야만 한다. 굴복하고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들의 직접행동은 여기까지다.
 
가슴 속에 스멀스멀 밀려오는 체념은, 반 박스도 채 남지 않은 구워질 고구마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장작더미들과, 이 혼란 속에서도 약속된 군고구마를 받기위해 줄을 서고 있는 시민들과, 이 상황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다른 시민들과, 그리고 피켓 앞에서 무엇인가를 적고,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을 보자 오기로 바뀌었다.
 
화가 났지만 참았고 웃었다. 조급했지만 여유로움을 애써 끄집어내보였다. 우린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성내면 지는 거라는 마음에.
시민들이 불편해한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모두가 즐기는, 즐길 수 있는, 즐기고 있었던 이 군고구마 콘서트에 불편한 상황을 만든 유일하게 불편한 사람들은 바로 이 아저씨들이건만, 이 아저씨들만 그것을 모르는 불편한 진실을.
가만 보고 있자니 아저씨들도 마음 한편이 먹먹하긴 했나보다. 아니면 우리들의 차림새 하며 사정하며 딱하기도 했었을 테다.

“여기 말고 저~쪽으로 가봐.” 라며 이 곳 인사동 말고 다른 곳을 ‘추천’해주셨다. 우리는 수긍하고 대신 줄 서있는 시민들에게 약속한 고구마만큼은 굽게 해달라고 ‘협상’을 했다.
대기 중이던 트럭은 어디론가 떠났고, 곧 멋쩍은 평화가 찾아왔다. 공무수행중이고 처음 본 기이한 대학생들을 무작정 믿을 순 없기에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아저씨들. 그에 맞서 아랑곳 않고 군고구마를 구우며 앙케이트를 계속 진행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대는 대학생들. 이들이 함께 펼치는 어색 야릇한 광경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사이 계속해서 군고구마는 구워져 시민들 손으로 넘어갔고 빨간 하트 속 포스트잇은 규모와 입체감을 더해갔다.
  
유쾌, 발랄, 상큼.
갑자기 노미까이 때의 교훈이 떠올랐고, 얼굴을 붉힐 뻔 했던 아저씨들의 공무수행 뒤편에 감춰진, 그들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동찬이가 드시라고 내민 군고구마는 극구 사양하시면서 아주 잠깐 드러난 한 아저씨의 미소를 보았다.
 
‘우린 이분들과 싸울 것이 아니다’
또 다시 나를 둘러싼 프레임의 존재를 뒤늦게 확인했다.
국가와 개인 간의 갈등을 개인과 개인의 갈등으로 몰아붙이는 사회, 시스템.
이것을 가능케 하는 장난질, 프레임조작.
 
“아저씨, 아저씨도 바라는 것 적어주세요.”
능청스레 내가 내민 종이와 펜.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는 아저씨들. 하지만 이 아저씨, 저 아저씨 옮겨 매달리며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나.
“에이, 그거 하나 써줘. 뭐가 힘들다고…….”
어느 한 아저씨의 말. 왠지 높은 직책일 것 같은 아저씨. ‘자기한테는 해달란 말 안하겠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 아저씨.
 
아, 이 아저씨 역시 어느 집의 가장으로, 자식 키우는 평범한 아버지로, 답답한 현실의 초라한 자신을 한잔 술로 달래는 일반 시민으로의 아저씨.
더 능청스럽게 종이와 펜을 그 아저씨께 내밀었다.
당황하는 눈치.
“뭐 적어주지 뭐 흠흠.” 헛기침을 참 헛헛하게 하시던 아저씨. 잠깐 생각하는지 머뭇거리다가 이내 멋진 글씨체로 두 가지나 적어주신다. 물가안정, 반값등록금.
웃음이 났다, 즐겁고 행복한 웃음이. 마음이 아려오는 웃음이.
 
“우린 서로 싸울 사람들이 아닌데……. 그렇죠? 아저씨?”
  
인간미 넘치는 단속반 아저씨들
 
불붙은 장작이 가득한 군고구마 굽개의 불을 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아저씨들과의 어색한 대치도 어느덧 익숙해져갔다. 추천해주신 장소로 이동을 결정하고 피켓을 걷고 이젤을 접고 짐을 정리했다. 아쉬운 마음이 장작 속 불씨들처럼 쉽게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부리나케 눈을 퍼붓고 해서 큰 불은 어느 정도 잡은 상황. ‘짐을 어떻게 실어야 할까?’ 멍해져있는 우리들 사이에 어머나. 이 아저씨들이 나서주신다.
 
“이건 이렇게 싣고 저건 저렇게 싣고…….”
“에이, 아니야 이건 저렇게 저건 이렇게…”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제일인 마냥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 아저씨들을 보고 있자니 막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눈시울도 따뜻해졌다. 그리고 슬펐다. 너무도 의외로 따뜻해서, 그래서 슬펐다.
 
빌어먹을 세상. 그래도 이 세상은 아직 여전히 살만하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군고구마 굽개는 인사동길 정문에서 운현궁 맞은편 서울노인복지센터까지 덜거덕덜거덕 요란하게 굴러갔다. 이동 중의 흔들림이 불쏘시개역할을 의도치 않게 제멋대로 톡톡히 해냈나보다. 불씨가 되살아나 불이 붙었다. 뜨겁게 다시 달궈지는 통을 앞에서 끌던 내 장갑이 익어갔다. 마치 증기관열차처럼 연기를 내며 인도 위를 달리는. 아니, 굴러가는 군고구마 굽개.
노인복지센터 앞에서 다시 자리를 잡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종료를 알리는 호출이 왔고 군고구마 굽개를 위해 태어난 차, 스타렉스가 아쉬움 가득한 군고구마 콘서트의 끝을 알리며 다가왔다.
  

군고구마_1.jpg

 
자, 이제는 통인(通人)의 세계로.
지난 4년간 ‘소통’을 ‘강조만’ 하던 정부가 얼마나 ‘원통’했었는지 “군고구마가 미처 다 익지 않아서 이따가 다시 오시라”며 돌려보냈던 시민들, 개의치 않고 저마다의 소망을 적어준 그들. 그들이 자꾸만 떠올라 ‘애통’했던 시간, 군고구마 콘서트.
사람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실천하는 것이 결코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매운 연기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직접행동을 통해 경험한 소중한 교훈이기 때문에.
 
저마다의 고민들, 생각하는 것, 바라는 것들은 각양각색일 게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바라는 세상, 바람직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누구를 대표로 선출하는 것이지, 아니, 누구를 자기 대신 자신의 입장을 대변케 할 것인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지난 4년간의 체험을 통해 느껴왔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게다.
 
통인(通人)의 세계를 꿈꿔보자. 그리고 함께 만들어보자. 어렵지 않다.
마음을 열고, 두 귀를 열고, 두 팔을 벌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둘 따뜻한 가슴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우리 “통(通)하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