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10-15   807

<통인동窓> 상법 개정안 유감

2년 이상 끌어 온 상법개정안이 최근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오랜만에 접하는 본격적인 상법 개정이라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특히 ‘점잖은’ 원로들이 상법 개정을 논의해왔던 과거에 비해 ‘짱짱한’ 중견 학자와 법조인들이 상법 개정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높기도 했다.

편법으로 원칙이 훼손된 ‘누더기’

그러나 이번에 국회에 회부된 상법개정안은 일부 새로운 원칙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원칙이 편법에 의해 무참하게 훼손되면서 당초의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일각의 문제의식과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겠다는 또 다른 집단의 욕구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법 개정을 선진적인 회사 구조의 정착이라는 시각에서 보지 않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착을 위한 규제완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일부 정신 없는 관료들의 장단이 가세하면서, 용을 그리려고 호기롭게 출범한 상법 개정 작업은 미꾸라지는커녕 지렁이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 형국이 되었다.

상법 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은 내로라 하는 학자와 법조인들로 상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단군 이래 최초의 본격적인 상법 개정에 착수했다.

상법 개정의 논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1소위가 담당했던 이사의 책임강화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자본편을 다룬 2소위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포이즌 필(독소조항)의 도입 여부였다.

1소위에서는 이사 충실 의무의 3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의 자기거래 규제, 경업 금지,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 등을 법조문화 하는 문제와 이중대표소송의 도입 등을 논의했다.

2소위에서는 포이즌 필 도입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회의 배당 결정권, 현물배당 허용 등과 함께 각종 종류 주식의 도입을 논의했다.

상법 개정위원회의 회의 진행이 언제나 공정했거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합의에 도달한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1소위는 이중대표소송의 도입을 일찌감치 큰 이견 없이 결정했으며, 그 외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하고 관련자의 범위를 현실화하는 등 몇 가지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했다.

2소위에서는 당초 경영권 방어장치를 대폭 도입하려다 재경부의 반대로 이런 시도가 벽에 부딪치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들은 도입하되 이를 경영권 방어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웃지 못 할 결론을 도출했다. 법무부는 이런 결론을 조문화 하여 2006년 10월 4일에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상법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경영권 방어 장치는 하나도 못 건지고, 애꿎게 이사의 의무와 통제 장치만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항의가 완강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장관이 바뀌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법무부는 상법쟁점사항조정위원회라는 옥상옥을 설치하여 핵심 조항을 전면 재심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과연 이들이 1년 전에 구성된 상법개정위원회의 화려한 멤버들의 의견을 조정할 정도의 법률 지식과 경륜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압력은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항을 삭제하는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중대표소송은 그대로 살아 남았다.

‘재계가 떼쓰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결국 마지막 우여곡절은 공무원들이 장식했다.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은 상법쟁점사항조정위원회도 삭제하지 못한 이중대표소송 제도를 개정안에서 제외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 국회 법사위에 제출된 상법 개정안은 이런 씁쓸한 우여곡절의 산물이다. 재계가 떼를 쓰기만 하면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점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과연 국회마저 그런 전통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인가.

<이 글은 한국일보 10월1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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