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8-02-05   1949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9] 대통령은 월급쟁이 사장이 아닙니다.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시리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기조 및 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MB에게 보내는 편지’ 제하의 공개편지를 통해 새 정부가 각 분야에서 역점을 둬야할 중점 사항 등을 정리해 10여차례에 걸쳐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그 아홉 번째 글은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가 썼습니다.

대통령은 월급쟁이 사장이 아닙니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대선이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국정을 파악하고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어느 정부나 그렇듯 취임 직전의 시기는 의욕과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정책 경험은 없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나타나기 쉽습니다. 국민들도 이런 사정을 잘 아는지라 웬만한 시행착오 정도는 넓은 아량으로 덮어 주는 것이 관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권 인수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논란은 단순히 선의에 근거한 시행착오라기보다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외람되게 한 말씀 드립니다.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국가는 기업과 다르고, 대통령은 월급쟁이 사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대표적인 기업 형태인 주식회사는 이윤극대화라는 단일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주주들이 만든 조직입니다. 물론 주주들이 회사를 직접 경영하기 어려우므로 사장을 고용해서 이 사람에게 월급을 주는 대신 이윤극대화 목표를 부여합니다.



그냥 월급만 지급하면 사장이 의무를 게을리 할 수도 있으므로 때로는 스톡 옵션과 같은 매력을 추가하기도 하지요. 이에 따라 사장은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청탁(淸濁)도 구분하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걷는 곡예도 서슴지 않습니다. 오직 성과만이 유일하게 의미있는 가치가 되겠지요.



예전에 굴지의 기업의 사장을 역임하신 적이 있는 당선자께 백면서생인 제가 사장의 논리를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주제넘은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일국의 대통령직을 맡으실 당선자께서 혹시라도 아직까지 사장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하는 노파심에서입니다.



불행히도 이런 제 노파심을 촉발하는 편린들은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국가경영의 거의 모든 목표를 경제성장률의 극대화에 두시는 것 같은 언행이 그것이고, 절차와 과정보다는 양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모습이 그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가 희생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그것입니다.



물론 당선자께서는 후보 시절에 임기 중 평균 경제성장률을 7%로 끌어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거셨고, 국민들도 이 공약을 가장 인상 깊게 평가했기 때문에 여기에 정책의 강조점을 두시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임기 중 평균 경제성장률을 7%로 유지하겠다는 공약은 현실이 되기보다는 허구가 될 가능성이 크고, 설사 실현된다고 해도 그 공적을 가리고도 남을 부작용이 발생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선자께서 마치 이윤 극대화를 위해 모든 가치를 희생하는 회사 사장처럼 경제성장률 수치끌어 올리는 데에만 몰두하실 경우 국가경영은 자칫 파국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국가는 효율성이라는 가치 이외에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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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입니다.



허울 좋은 명분보다 실질을 숭상하는 것은 옳은 태도입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여러 중요한 다른 가치를 저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질을 숭상하는 것과 혼동해서도 아니 됩니다.



이윤극대화라는 단일한 목표만을 지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기업경영에서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 경영에서 어떤 특정한 가치의 중요성은 ‘그것이 돈이 되는가’ 혹은 ‘그것이 경제성장률 제고에 도움이 되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개별 구성원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또는 ‘그것이 사회의 전체적인 동질성 유지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경제성장률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나라에서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생활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가 많이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있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당선자께서 가끔씩 언급하시는 법치주의 역시 중요한 도구적 가치라고 하겠습니다. 그 외에 희생과 봉사, 헌신, 정직과 같은 윤리적 가치도 한 국가가 건강한 국가가 되는가, 아니면 병든 국가가 되는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가치를 잘 살피고 그것이 신장되도록 하여 국민 개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지는 데 있습니다. 세속적인 눈으로만 보면 이런 가치들 중에는 ‘돈이 되지 않는 가치’가 많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치를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직무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이윤 극대화 이외의 모든 가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돌리는 회사의 사장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집니다.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그것 자체가 국가 경영의 기본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가 몇 배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리고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는 경제적 풍요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가치가 서로의 영역을 차지하며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 대통령의 현명한 지도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남북전쟁 직후 미국이 극도로 분열된 상황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이 전원 일치 판결을 통해 미국 사회에 보냈던 통합의 메시지를 인용합니다.



“미국 연방헌법은 통치자와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으로 전시거나 평화시거나 동일하게, 언제나,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나, 모든 계층의 국민들에게 보호의 방패를 제공한다.”



아무쪼록 당선자께서도 모든 계층의 국민들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셔서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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