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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이야기    종로구 통인동 희망1번지

  • 칼럼/기고
  • 2009.11.10
  • 1736
  • 첨부 1

반대 아니면 방관이 진보의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칼럼] 외고폐지, 진보진영의 대응 적절했나?



박원석(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얼마 전까지 치열하던 외고폐지 논쟁이 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일보>가 외고 살리기에 팔 걷고 나서 연일 ‘외고폐지 불가’를 외치고 있고, 한나라당 내부도 단일한 입장이 없다. 교육과학부는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이지만, 내심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보니 판은 크게 흔들었지만, 지속적인 추진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두언 의원이나 한나라당 내의 동조자들 행보도 지지부진하다.

정두언 외고폐지론의 진정성

무엇보다 전략이 없다. 기존 당론과 배치되고, 이해관계도 첨예한 의제를 들고 나오면서 최소한 당내 여론 분포나 주무부처의 입장변화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타진 없이, 다소 무모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두언 의원의 초중등 교육법 개정안은 발의 당일 날 이미 한차례 수정되었으며, 그 후로도 다양한 이견들에 부딪혀 이런저런 수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보니 ▲외고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하고 ▲학생 모집 단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며 ▲학생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선발한다는 법안 골자가 과연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각에서는 변죽만 요란하게 울릴 뿐, 준비 정도가 턱없이 부족하고, 실현가능성도 없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더 나아가 야당의 의제를 선점하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애쓰는 모양새를 내 이른바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그림자만 드리우겠다는 정략의 산물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제기된다.

지난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한나라당 내부가 별다른 이견 없이 강한 특목고 활성화 정책의 입장을 유지해 왔고, 대선에서도 짭짤한 득표요인이 됐던 정책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이름값 하는 정권의 실세가 갑작스레 뒤집고 나오니, 그 배경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특목고 수요계층과 사교육 시장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과감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정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만은 없으며, 사교육비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한 나름의 진정성 있는 대응으로 보인다.

외고폐지론 이대로 사장시킬 건가?

한국은행이 해마다 내고 있는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사교육비는 18조 723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조 3295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당 평균 사교육비는 112만 2000원을 넘어선다.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한밤중까지 입시전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실태를 감안하면 외고가 대한민국 교육의 ‘만악의 근원’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사교육비 증가를 가져오는 ‘악의 축’쯤 되는 것은 분명하다. 첩첩히 쌓인 교육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측면에서 정두언의 외고폐지 제안은 귀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불분명한 점도 부족한 점도 있다. 대안으로 제시한 특성화고는 현 초중등 교육법에 근거를 둔 특정분야 인재 및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해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들이다. 정두언의 제안은 외고를 ‘외국어 전문인재’를 양성하는 특성화 고등학교로 만들고 이 같은 설립목적에 어긋나게 운영할 시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반 고등학교, 특목고, 특성화고 가릴 것 없이 온통 대학입시에 매달려 있는 현실에서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한다고 해서 입시에 몰두하는 운영방식이 개선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아예 입시교육을 못하게 할 것이 아닌 바에야 교과과정이나 그 운영방식을 일일이 규제하고 감독할 기준도 마땅한 방법도 없다. 그렇게 보면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는 것은 ‘외고’라는 명칭의 상징적 효과를 폐지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서 외고폐지와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정두언의 외고폐지론에서 아예 빠져 있는 내용도 있다. 비싼 학비의 문제다. 경우에 따라서는 1년에 1천만 원이 넘는 비싼 학비가 계층 간의 교육기회의 차등이 발생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두언의 제안 내용 중 핵심은 선발제도다. 성적중심이 아닌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추첨하는 방식으로 선발제도를 바꾼다면 외고입시 경쟁에 과열된 사교육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점은 대다수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바다.

정두언의 외고폐지론은 분명 불완전한 제안이다. 그러나 외고입시로 과열된 사교육 문제를 진정시키고, 사교육비 경감을 가져오는데 어느 정도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 또한 산적한 교육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왕도가 없다고 봤을 때, 의미 있는 일보진전으로 볼 수 있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제안이 사장되거나 좌초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 아니면 방관 진보의 전략 되선 안 돼

외고폐지 문제가 쟁점화 된 이후 그동안 특목고 폐지를 주장해왔던 야당이나, 교육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진보언론들도 이 쟁점에 뛰어들기보다는 지켜보는 추세다. 비슷한 시기 고교별 수능성적 공개에 대해서는 학교 서열화 문제를 강력히 비판하고 대응했지만, 외고 문제가 쟁점화 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주춤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예측하지 못했던 선공에 다소 넋이 빠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매특허 의제를 뺏기고 주변화 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이러다가 자칫 ‘외고논의’가 진보진영의 손을 떠나 전개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비록 조중동 보수언론이나, 한나라당 내부가 외고 문제에 대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학교의 다양화와 수월성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에 비춰본다면, 진보진영의 대응은 너무 느슨하다.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한다고 해서 사교육 문제나, 학교교육의 현실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여당 내에서 그것도 핵심부에서 외고폐지론을 들고 나온 것은 그 내부의 체질과 정서, 이해관계를 감안한다면 결코 작지 않은 변화이며 현재의 쟁점화 수준은 여권 내부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치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외고를 폐지한다면 ‘일반고’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원칙론에 입각한 대응은 안이하고 또한 무기력하다. 외고문제가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닌, 첨예한 이해관계의 가운데 있는 정치의 문제라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관망은 더 문제가 있다.

다소 실기한 면이 있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정두언의 제안이 갖고 있는 진정성이나 긍정성에 야당과 교육? 시민단체가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외고폐지론이 힘을 잃고 사장되는 것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근본적인 대안을 이끌어내는 일보전진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 아니면, 방관 혹은 냉소로 대응하는 것이 진보의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는 외고 논란에서 보이듯 의제를 선점당하고 주변화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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