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12-20   1140

<통인동窓> 태안앞바다 기름유출사고의 ‘완전한 보상’ 국가·언론·법조의 역할

태안해상국립공원 전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태안군 앞바다 기름유출사고는 해상국립공원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해상국립공원 내의 수만 명의 주민들이 생계를 의지해왔던 어업과 관광업(요식업, 숙박업)을 초토화시켰다. 한국농업의 수익구조의 붕괴로 그나마 있던 농지에도 민박이나 펜션을 지어숙박업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이번 사고는 기름이나 타르덩어리가 실제로 덮친 지역 외에도 바다를 찾던 외지인들의 마음마저 ‘오염’시키며 지역 전체의 관광업까지 종식시켰다. 뿐만 아니라 수산물시장에서도 실제 오염상황에 관계없이 태안지역 해산물이 퇴출당하면서 지역 전체의 어업도 종식시켰다.

언론은 어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을 통해 지표면과 수표면에서 기름찌꺼기가 수거된 점을 높이 치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름은 갯벌, 모래, 수면 밑으로 내려가 오랫동안 치유할 수 없는 피해를 지속시킬 것이다.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기름이 수거된 후의 지면을 조금만 파내려가도 시커먼 기름이 스며 나오고 있다고 한다.

유조선에서 유출된 대량의 기름이 어업과 관광업 등의 생태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국립공원’ 급의 해안가를 덮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이다. 이런 세계적 재앙에 대해서는 어떻게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알래스카와 태안 앞바다의 차이

1989년 알래스카 기름유출사고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외진 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때 3만톤 정도가 유출되었으며 이에 대해 가해자인 엑슨 정유사는 1조원 정도를 방제비용 및 환경오염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정부 측에 지급하였고 장래 새로이 환경피해가 발견될 경우 추가 손해배상을 하기로까지 합의하였다. 또, 주민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에 대해서도 매우 먼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포함하여 3만 여명에게 실제 손해배상 2500억원, 징벌적 손해배상 2조5천억원이 책정되었다. 원래 징벌손해배상 판결액은 엑슨 정유사의 1년 이익이었던 5조원이었으나 수차례 항소를 통해 삭감되었고 현재 연방대법원에 항소 계류 중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엑슨 정유사는 정부 및 법원의 명령에 따라 2조원 가량의 비용을 들여 지난 10여년간 정화작업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고는 어떻게 피해보상이 이루어질까? 여수에서 발생하였던 1995년 시프린스 기름유출사고에서는 5천톤 정도가 유출되었고 500억원 정도가 어업권 피해보상과 방제비용으로 지급되었으며 이는 알래스카 사고의 총 보상 및 복원비용 액수의 1% 정도였다. 여수피해자들이 그렇게 쉽사리 보험사와 (국제유류보상기금)IOPC의 회유에 승복한 것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민사피해보상제도과 여기에 길들여진 피해자들의 낮은 기대 때문이었다.

“사망시 5천만원”부터 시작하는 비상식적으로 낮은 위자료, 다수의 피해자들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집단소송제도의 부재, 알면서도 사고를 방치하는 행위를 징벌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부재, 소가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부담스러운 인지대, 억울한 일을 당한 후 소송하여 이겨도 돌려받지 못하는 변호사 비용, 간접손해 및 특별손해의 인정에 있어서의 인색함 등은 모두 여수 피해자들이 ‘완전한 보상’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태안 앞바다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기존의 취약한 민사보상관행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는 재난이 있으면 불행을 애도하고 성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지만 가해자가 피해를 완전하게 보상하고 복구하는 전통은 없었다고 본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해결법

이번 태안 사건과 같이 국립공원 전체가 피폐화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주민 전체가 피해자임은 물론 국가 전체가 피해자임을 알아 첫째, 완전한 보상, 둘째, 완전한 정화, 셋째, 가해자의 책임부담의 원칙이 관철되는 선례를 세워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민사보상법제를 바꾸자는 뜻이 아니다. 또는 보상원칙을 혁신적으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재 주어진 민사보상법제 내에서 상식에 맞는 보상과 복구의무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주의점들이 이미 보이기 시작하여 밝히고자 한다.

첫째, 언론은 세금계산서 등의 서면기록을 중심으로 한 보험사나 기금의 입증기준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나 국제유류보상기금의 입증기준은 보험사 및 기금의 내규 내지는 고객 및 회원사와의 계약에 의해 세워진 것일 뿐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소송에서는 통계를 바탕으로 한 감정 등을 통해 폭넓게 피해를 입증할 수 있다.

둘째, 언론에서는 보험사와 기금의 배상한도를 합하여 “3천억”이 한계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유류오염피해보상에 관한 2개의 국제협약을 법제화한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 하에서, 이번 사고와 같이 선박들의 과실이 명백한 사안에서는 기금 및 보험사의 배상한도를 초과하여 가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3천억을 넘어서는 피해에 대해서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언론의 언급도 근거가 없음은 물론 국가배상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셋째, 소송이 이루어진다면 관광자원의 훼손에 의해 영업상의 피해를 입게 된 숙박업과 요식업에 대해서도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해양오염에 대한 손해배상은 거의 전부 어업권에 관한 것이었고 숙박업 요식업 피해 등에 대해서는 ‘간접손해’라 하여 배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1989년 알라스카 사건에서는 심지어는 투어가이드 및 여행사들도 피해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넷째, 경영자가 아니라 직원으로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피해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법적인 피해보상에서 뿐만 아니라 행정적 피해보상에서도 항상 간과되는 부분인데 주의가 요구된다. 모든 피해보상절차에서 직원들도 직접적인 피해당사자 또는 소송원고로서 대우받아야 할 것이다. 역시 알라스카 사건에서도 계속고용의 합리적인 기대가 가능하였던 직원들은 모두 피해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섯째, 지금까지의 어업권소송에서 비관행어업(패류채취 등) 종사자들은 항상 피해보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관공서에 등록되지 않은 어업이라고 하여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이 패류채취를 통해 연명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알래스카 사건에서는 심지어 낚시꾼들도 모두 피해자에 포함돼 있었다.

여섯째, 국가가 투입한 방제비용은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며, 국가의 방제비용은 모두 가해자로부터 구상받아야 한다. 알래스카 사건에서도 2조원에 해당하는 정화활동을 수행하였지만 별도로 국가에게 방제비용과 환경오염에 대한 대가로 1조원을 지불하였다.

일곱째, 우리나라 유일의 해상국립공원을 잃고 싶지 않다면 국가는 일정기간 동안 생계형 현금지원을 해야 한다. 국가가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보상과 복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피해자들이 버틸 수 있도록 생계에 필요한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분배액수도 피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비례해야 할 것이다.

내고향도 안면도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어업권에 대한 보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보상이 늦어지면서 생계를 잇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할 동향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들을 떠나보내야 할 고향, 태안해상국립공원 그 자체이다. 셰익스피어와도 바꿀 수 없는 태안해상국립공원의 존립을 위협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완전한 보상, 완전한 정화에 대한 가해자의 책임이 완수될 때까지만 주민들이 남아있을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달라는 것이다.

※ 이 글은 12월 20일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박경신(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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