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9-20   1484

<통인동窓> 혈세탕진형 공무국외여행 놀이

이제 비가 그치려나? 6월부터 8월까지 ‘우기’가 계속되더니 9월에는 태풍이 계속 몰려오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커다란 수재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수재의 상당 부분은 ‘우기’나 태풍이 아니라 ‘난개발’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더 많은 개발이익을 노린 무차별적 난개발 때문에 수재의 피해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그러니 단순한 수재대책으로는 수재를 막기는커녕 줄일 수도 없다. 먼저 난개발대책이 강력히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홍수위험지도, 홍수흔적지도, 홍수대피지도 등의 ‘홍수지도’, ‘사태지도’를 정밀히 작성해서 공표하는 것으로 난개발과 수재를 크게 줄일 수 있지만, 난개발 세력에 의해 이런 ‘재난지도’의 작성과 공표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은 대단히 많다. 그런데 공무원은 사실 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의 공무원은 부패와 무능을 넘어 난개발 세력의 한 축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개발정보를 비롯한 각종 행정정보를 빼돌리거나 악용해서 치부하는 범죄자 공무원의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2007년 2월 행정자치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공무원은 933,663명이다. OECD 기준으로 한국의 공무원 수가 여전히 크게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48,499명이라는 많은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무원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공무원이 이 사회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개혁되었다는 징후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른바 ‘공무국외여행’의 문제이다. 매년 수많은 공무원들이 엄청난 혈세를 탕진하며 ‘공무국외여행’을 즐기고 있다.

지난 4월에 공공기관 감사들이 공무를 내세우고 머나먼 남미의 이과수폭포 등지로 관광을 갔던 것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빚었다. 이에 따라 감사원에서는 공무원의 ‘공무국외여행’에 관한 감사를 벌었다. 그리고 2007년 9월 18일에 그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자못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에만 112,000명이 4,427억원을 써서 공무국외여행을 다녀왔다.

– ’06년도 국외여비 3억 원 이상 총 204개 기관의 실태 서면분석

– 그중 예산규모 상위 30개기관(중앙관서 6, 자치단체 8, 공공기관 16)을 대상으로 ‘07.6.25.?7.24.까지 실지감사* 실시

* 장ㆍ단기 교육훈련외교ㆍ군사ㆍ정보활동 목적은 제외

’06년 총 603개 기관(중앙관서 59, 자치단체 246, 공공기관 298)에서 4,427억 원을 들여 112천 명이 공무국외여행(’05년 3,905억원/103천 명)

예산처 등 30개 기관은 ’06년에 501억 원을 들여 18,795명이 공무국외여행

출장 유형별(목적)로 보면, 아래 표와 같이 시찰ㆍ연수ㆍ자료수집 등 견문확대 차원의 인원 비중이 51%(18,795명 중 9,648명)

 시찰연수자료수집국제교류특정업무
인원(명)5,660

(29%)

1,442

(8%)

2,546

(14%)

4,418

(24%)

4,729

(25%)

18,795

우선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국외여비 3억원 이상’을 사용한 기관만 감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중에서 상위 30개 기관만 실지감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에 감사원은 시찰ㆍ연수ㆍ자료수집의 문제를 특히 강조했지만, 국제교류를 내건 국외공무여행도 그에 못지 않게 큰 문제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요컨대 공무국외여행의 적게는 1/2, 많게는 3/4이 엉터리일 것이다. 그 내용은 더욱 황당하다.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거나, 골프를 치거나, 심지어 술집에서 흥청망청하는 것이다. 이번에 빠진 ‘장ㆍ단기 교육훈련 및 외교ㆍ군사ㆍ정보활동 목적’이라고 과연 온전할까 하는 의심도 든다. 특히 ‘장ㆍ단기 교육훈련’의 문제적 실태는 지난 봄에 KBS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엉터리 공무국외여행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막대한 혈세를 탕진한다. 엉터리 공무국외여행은 공무원이 혈세를 착복하고 횡령하는 한 방법이다. 엉터리 야근수당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업무의 공백을 가져와서 시민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끼친다. 혈세를 착복해서 해외여행을 즐기기 위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황당한 사태가 빚어지는 것이다. 셋째, 동료 공무원들에게 똑같은 착복과 여행의 심리를 퍼트려서 결국 공직사회 전체의 도덕적 해이가 이루어지게 된다. 한국의 공직사회는 이미 심각한 도덕적 해이 상태에 있다. 넷째, 공무원에 대한 시민의 불신이 커지는 동시에 시민들 사이에서도 도덕적 해이가 퍼져나간다. 법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마치 ‘지혜’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2003년 가을에 독일의 에버트재단의 도움을 받아서 독일의 개인정보보호제도에 대해 독일의 여러 기관과 업체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에버트재단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에버트재단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내게 개인정보보호제도 때문에 찾아온 사람은 처음 만난다며,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일 통일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공무원들인데, 더욱 기이한 것은 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라며, 한국의 공무원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몹시 부끄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공무원들의 공무국외여행의 문제를 외국의 전문가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노동조합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현재 세 개의 공무원노조가 존재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이 그것이다. 세 조직은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공무원 비리와 부패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세 노조의 홈페이지에서 공무국외여행의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정말 세 노조가 공무원 비리와 부패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공무원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 정부재정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기획예산처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기획예산처의 예산낭비신고센터 페이지의 보도자료는 2007년 2월 7일에 멈춰 있다. 혹시 공무국외여행으로 바빠서인가?

감사원은 ‘행정질서 문란행위’에 대해서는 문책과 경비회수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미 끝난 토론회에 참여하겠다며 배짱좋게 혈세를 써서 해외여행을 떠난 한전 직원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관행적 수준’은 문책하지 않겠다는 감사원의 조치 자체가 문제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잘못된 조치일 것이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접근이 절실하다.

공무국외여행은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즐겨야 하는 혈세탕진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업무이다. 그만큼 준비와 진행과 정리에 많은 노력과 부담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무국외여행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유럽을 다녀오고 있어도 유럽과 한국의 공간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는 전봇대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지방의회 의원과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국무위원들도 사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에서는 의원과 단체장을 상대로 소환운동조차 벌어질 태세이다. 공무원과 정치인이 이렇듯 ‘혈세탕진형 공무국외여행 놀이’에 환장한 나라가 또 있을까?

공무원은 가장 공공성이 큰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부패하고 무능하면 공공성이 지켜질 수 없다. 공무원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비판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디 공무원이 불구적 정보공개법을 최대한 악용해가며 난개발의 조장과 기생, 엉터리 공무국외여행 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정부를 멋지게 개혁할 수 있기를.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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