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10-11   1472

<통인동窓> 학벌사회의 완성을 향한 무서운 약속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10월 9일 교육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5대 프로젝트’라며 이 공약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그야말로 ‘경부운하’ 공약 못지 않게 위험하다. ‘경부운하’ 공약이 단군 이래 최악의 토건국가 공약이라면, ‘교육 5대 프로젝트’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학벌사회 공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명박 후보의 ‘교육 5대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교다양화’와 ‘대입자율화’이다. 다른 세 공약은 이 두 공약을 위한 ‘들러리’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두 공약은 그 동안 특권층과 부유층이 끊임없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이기도 하다. 과연 두 공약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먼저 ‘고교다양화’의 핵심은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를 육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말이 좋아 ‘다양화’지 ‘자율형 사립고’는 이미 부자들을 위한 ‘부자형 사립고’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6개의 ‘자사고’가 운영되고 있는데, 모두 연 1000만원 정도의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내야 한다. 󰡔2006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05년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25만 1000원, 2005년 근로자의 월급은 평균 233만 3000원이었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각각 약 3900만원과 2800만원이 된다. 한 명의 자녀가 ‘자사고’에 다닌다면, 각각 연봉의 약 26%와 36%를 수업료와 기숙사비로 내야 한다.

그런데 자녀를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은 당연히 수업료와 기숙사비로 끝나지 않는다. 옷값, 책값, 교통비, 용돈 등을 포함하면, 이 비중은 30%와 40%를 훌쩍 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더 큰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다. 바로 공포의 사교육비이다. 이것을 포함하면, 앞의 비중은 40%와 50%를 훨씬 넘어서게 된다. 사실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이 바로 사교육비이다. 학벌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학벌사회에서 부모들은 자녀가 더 좋은 학벌에 속하도록 하기 위해 그야말로 전쟁을 치른다. ‘자사고’는 이미 이러한 사교육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자율형 사립고’ 확대정책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참으로 반교육적 방식으로 확인되었지만, 부자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한 동네에서 함께 살려고 하지 않으며, 자기 아이들이 가난한 집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이 때문에 부자들은 자기들만의 동네, 자기들만의 학교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부자들만의 학교는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다. 그것은 부자들이 최상층 학벌을 더욱 강력히 독점하도록 할 것이며, 이에 따라 학벌사회를 매개로 빈부격차가 아예 신분제적으로 고착될 것이다. ‘학벌사회 한국’은 이미 이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입자율화’는 ‘자율형 사립고’ 확대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우선 둘 다 ‘자율’을 내걸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자율은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것인가? ‘학벌사회 한국’에서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는 부자들이다. 부자들은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서 학벌의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다. ‘학벌사회 한국’에서 학벌의 최상층을 차지한다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보장받는 것과 비슷하다. 부자의 자녀들은 부를 물려받을 뿐만 아니라 학벌의 최상층을 차지해서 행복한 인생을 보장받기 쉽다. ‘대입자율화’는 학벌의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는 일부 대학들이 부자의 자녀들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명분에 가깝다.

‘대입자율화’가 실시되면, 학벌사회의 문제는 극단화될 수밖에 없다. 학벌사회의 현실에서 최고의 학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극단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학벌경쟁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처참한 현실이다. ‘대입자율화’는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부활로 이어져서 이미 극단적 상태에 있는 학벌경쟁을 더욱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불과 10년 정도만 지나면, 놀이방-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부자들의 경로가 확립될 것이다. 그 결과 학벌사회는 소수의 부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유유히 부와 권력을 누리는 ‘금권-학벌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사회적 현안은 사회양극화와 생태위기이다. 세계 130위의 환경지수가 잘 보여주듯이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선진국이자 세계적인 환경후진국이다. 한국의 발전은 무조건적 경제성장이 아니라 무조건적 환경개선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은 너무나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그의 ‘교육 5대 프로젝트’는 사회양극화와 관련해서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양극화는 학벌을 매개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 5대 프로젝트’는 사회양극화를 신분제적으로 고착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존 롤스가 「 정의론 」에서 갈파했듯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원리이다. 극소수 특권층이나 소수 부유층이 아니라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 서민층, 빈곤층을 위한 정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정책의 핵심은 이 사회를 아예 ‘이중사회’로 만들고 있는 학벌의 해체가 되어야 한다. 학벌사회의 문제는 참담한 ‘한국병’의 근원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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