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11-21   992

<통인동窓> 이건희 회장님께

이제는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아마도 연일 계속되는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때문에 심려가 크시리라고 생각됩니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마저 쌀쌀해져서 스산하고 을씨년스런 마음이 더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며칠 전에 있었던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20주년 추모행사가 매우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는 말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삼성 비자금 의혹 문제를 제대로 푸는 것이 회장님과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삼성 그룹과 우리 사회를 위해서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외람되게도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회장님, 저는 이번 의혹의 본질을 ‘위법한 방법을 동원한 부의 승계’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으로부터 아드님께로 61억원 정도의 증여가 있었던 1995년은 승계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재산은 그 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12년이 지난 오늘 아드님이 삼성 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증여가 현재의 재산으로 증식되는 과정은 ‘위법한 것’이었다는 의혹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불거졌고 최근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둘 나타나고 있는 비자금 문제는 아마도 이런 위법 행위를 가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회장님이 경영하시는 삼성은 여러 차례의 법률적 위험을 경험했지만 모두 빠져 나왔습니다. 재산 증식 과정의 핵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사건을 필두로 아드님의 e삼성 경영실패로 인한 손실을 계열사가 부담한 사건, 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사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 사건, 그리고 얼마 전의 엑스파일 사건까지 하나같이 그룹의 존망이 걸린 사건들이었지만 모두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어쩌면 회장님이나 그 주위의 보좌진들은 이번 문제도 결국 그런 식으로 처리될 것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의 상식으로는 이번 사건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제시된 증거와 증언이 너무나 명백한 결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일부 언론의 칼끝은 회장님이나 가족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인심이란 참으로 쌀쌀맞은 것이어서 잠깐 사이에 온화한 봄날이 험한 폭풍우로 돌변하기 십상입니다.

회장님,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분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오직 회장님뿐입니다. 물론 국가 권력이 차가운 논리로 이 문제를 푸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애써 쌓아올린 기업의 존망도 위태롭게 하는 하책 중의 하책입니다. 회장님께서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그에 따라 처리하실 것은 처리하고 책임지실 부분이 있다면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만이 회장님과 가족, 그리고 삼성 그룹의 수많은 임직원들을 구하는 길입니다.

회장님, 그동안 삼성 그룹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자 부채였습니다. 내로라하는 외국 기업도 하지 못하는 빛나는 연구 성과를 발표할 때마다 삼성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온갖 국법 질서를 훼손하고 이를 불법적인 로비로 땜질한 흔적이 나올 때마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수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수치스런 기억의 상당 부분은 오늘 이 문제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삼성이 우리 사회의 부채인 진정한 이유는 바로 회장님의 문제가 삼성의 부채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채를 삼성의 어깨에서 벗겨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회장님뿐입니다.

회장님, 본의 아니게 매운 말씀만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기묘한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는 신부님들을 조금이라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는 점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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