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후기] 고장난 나라의 감시자, 참여연대를 말한다

고장 난 나라의 감시자, 참여연대를 말한다

<참여연대 20년, 도전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 

 

김태일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2014년 9월 1일 열린 참여연대 2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참여연대 20년, 도전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 행사 전경.

참여연대는 1994년 창립 이래 줄곧 한국의 사회적 갈등과 모순의 현장에 있었고, 치열한 논쟁과 활동으로 시민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보호하고자 노력해왔다. 참여연대는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변형 권력감시 운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입법운동과 민형사소송 등 사법적 수단을 활용하는 당시로는 새로운 방식과 합법적 방법으로 사회의 변혁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이전의 민주화운동이나 사회운동과 차별화된다고 평해져 왔다.

 

그런 참여연대가 2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활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20년의 활동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2014년 9월 1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참여연대 20년, 도전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이 그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참여연대가 성찰과 새로운 모색을 담아 9월 5일 출간한 단행본 《감시자를 감시한다》(이매진 2014)의 필자들을 발제자로 초청하여 진행되었다.

 

군사정권의 퇴진과 정치적 보수화… 모순 속에서 태동하다

 

참여연대의 창립과 활동은 1994년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정권의 퇴진과 민주화를 쟁취하였고, 시민사회를 활성화시켜 절차적 민주주의를 공고화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유사군사정권인 노태우 정권과 뒤이은 김영삼 보수정권의 집권으로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보수화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듯 절차적 민주화와 동시에 정치적 보수화라는 모순적 상황에서 기존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시민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것이 참여연대의 창립 배경이 되었다. 즉, 참여연대는 시대에 발맞추어 보다 합법적인 방식으로 진보적 사회개혁을 추구하려는 고민의 산물이었다. 

 

이렇게 태동한 참여연대는 다양한 사회의제에 대응하여 활동해왔으며, 특히 정치참여 분야에서 주목받았다고 첫 발제자로 나선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분석했다. 

 

정상호 교수는 참여연대의 활동에 대한 유형별 분석을 시도했다. 정당과 국회를 대상으로 일상적 감시와 비판을 실행하는 의정감시활동, 정치 관련 분야에서 입법 청원을 통한 제도개혁운동, 낙천·낙선운동으로 대표되는 선거 시기의 감시 및 비판 활동 등이 그것이다. 또한 조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실행된 것은 아니지만 참여연대 내부의 일부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시민정치운동 또한 그 한 유형이라고 주장했다. 

의정감시활동이나 제도개혁운동, 낙천·낙선운동은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으면서 한국 정치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내었고, 참여연대가 한국사회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발돋움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더 투쟁적으로, 더 참여적으로 

 

20년이라는 시간은 보통 1945년 해방 이후로 국한되는 한국 현대사의 영역에서 비추어 보면 거의 1/3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다. 그러한 긴 시간동안 참여연대의 운동방식도 자연히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해왔다. 

참여연대 활동방식 비중 분석. 참여연대의 활동방식은 사회적 발언과 공론화가 각각 44%와 34%로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 ⓒ 조철민(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

조철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참여연대의 지배적인 운동방식은 대변형 운동단체라는 표현에 걸맞게 ‘사회적 발언’과 ‘공론화’ 방식이 가장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시대별 추이를 분석해보면 ‘직접 행동’ 방식이나 ‘입법절차 활용’ 방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특히 2008년을 기점으로 보다 ‘투쟁적’이고 ‘참여적’으로 변했다고 정상호 교수는 분석한다. 이는 이명박 보수정권의 등장이나 보수단체들의 활성화, 진보진영의 분화 등으로 인해 기존 활동방식의 집중력과 영향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참여연대의 “주장이나 제안이 정치권 혹은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를 압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집회 조직이나 1인 시위, 행정절차 활용 등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참여연대의 운동은 보다 현장적 · 투쟁적으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참여연대 활동방식의 변화 추이. 점차 현장 중심으로 변화해갔으며, 특히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08년을 기점으로 행정절차 활용, 직접행동, 소송 등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있다. ⓒ 조철민(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

또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비판을 수용하여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는 방향, 즉 보다 ‘참여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도 나타났다. 2007년 참여연대 사옥이 신축되면서 ‘카페통인’ 등 시민과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되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설립되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문화·교양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20년 활동의 명암

 

이렇듯 참여연대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또한 여러 성과를 거두어왔으나,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대안적인 정치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세력화 요구 속에서 제기되었던 ‘시민정치’ 실험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시민정치’의 이론적 정의는 합의되지 못했고, 실천적 차원에서도 그 원리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채 현 정당질서에 편입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정상호 교수는 결국 시민정치운동이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의 정치권 진출로 귀결되었지만, 이들 역시 기존의 의회정치나 정당정치를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서 ‘시민정치’ 운동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로 절하되었다고 혹평했다. 

이와 함께 단골로 지적되는 또 다른 논란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었다. 참여연대는 초기부터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정관과 내규 등을 통해 명시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상호 교수는 시민단체로서 참여연대의 “정치적 중립성”은 지속적인 안팎의 도전에 직면하였고, 참여연대 스스로도 많은 혼란을 느껴왔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정책적 유연성과 정치적 비당파성 고수 사이에서의 고민을 차병직 변호사가 ‘기우뚱한 균형’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 정당정치의 답보성과 촛불시민들의 요구, 그러나 그에 거리를 두는 참여연대의 확고한(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시민단체로서 권력에 대한 감시활동은 유효하며 참여연대는 그 길을 걸을 것이라는) 믿음을 볼 때, 이러한 ‘기우뚱한 균형’은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20년을 향하여

 

정태석 교수는 참여연대가 창립 당시에는 김영삼 보수정권의 비민주적, 비합리적 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자’이자 ‘비판적 대항자’로써 활동하였지만, 이후 김대중·노무현 중도개혁정권에서는 ‘비판적 협력자’로서의 태도를 취했다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다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참여연대에게는 정치권력 감시와 재벌 등 시장권력 감시를 수행하는 ‘합리적 비판자’이자 ‘비판적 대항자’로서의 역할이 또 한번 요구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창립 초기부터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해 ‘권력감시운동’으로 대표되는 활동을 해왔고, 이러한 활동은 ‘참여민주주의’라는 지향점을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조대엽 교수는 참여민주주의가 중앙집권적 ‘국가주의’라는 한국 정치의 두꺼운 벽 안에서 실현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러한 면에서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으로 ‘생활민주주의’를 제안하였다. 국가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민의 실질적 생활의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정치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보수는 ‘국가주의 보수’였고, 진보 또한 ‘국가주의 진보’였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시민의 삶속에 내재화, 즉 직접적으로 결합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는 기존 참여민주주의의 이론적 미성숙과 권위주의적 정치관행 안에서의 한계를 넘어, 시민의 생활을 모든 정치 질서의 중심에 두고 민주주의의 원리를 그 삶 속에 내재시키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참여연대의 대표적 운동방식인 대변형(advocacy) 운동에 대해서도 다시금 성찰과 재도약이 필요하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승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참여연대의 진정한 위기는 시민직접행동의 활성화나 영향력의 축소가 아니라, 대변형 운동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참여연대가 스스로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왜곡하거나, 효과적으로 대변 및 관철하지 못하거나, 특정 집단에게 편향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시점에서 참여연대는 더 이상 시민들의 지지와 존재의의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에서 ‘연대’로

 

플로어와 종합토론에서도 참여연대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업무량은 늘어나는 가운데에 각각의 활동의 효율성은 도리어 저하되는 문제점이었다. 보수정권의 집권이 이어지고 신자유주의적 사회변화가 가속화되어 가는 가운데, 대응해야할 의제는 점점 많아지는 반면 운동방식은 십 년째 별 진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여기에 정권과 보수언론의 공격 및 왜곡은 참여연대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 한 참가자의 발언은 많은 토론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었다. 지난 20년간 참여연대가 사회 각종 현안에 대응하고 개입하면서 ‘참여’의 지평을 열었다면, 앞으로의 20년간은 보다 많은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공유하는 ‘연대’의 지평을 열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것은 곧 20년간 숨 돌릴 새도 없이 달려온 참여연대가 그 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새로운 지평을 모색한다는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대치 상황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참사 이후 140여일 간의 시간은 참여연대 20년의 시간과 활동을 압축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 사회의 모순이 노출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였으며, 문제를 공론화하고, 입법청원을 하고, 그 관철을 위해 다양한 직접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이제껏 활용해온 대부분의 활동방식을 엿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세월호 참사 대응활동도 정권의 무책임한 외면, 여당과 야당의 무능, 보수언론의 왜곡, 그리고 대책회의의 능력의 한계로 답보상태에 놓여있다. 새롭고 참신한, 그러면서 효율적인 돌파구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주축으로서 참가하고 있는 참여연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세월호가, 참여연대의 회원들이, 그리고 2014년의 대한민국이 20살 청년 참여연대에게 묻고 있다. 다음 20년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그 해답은 오직 끊임없는 논쟁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만 도출될 수 있다. 이번 심포지엄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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