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9-04-29   623

[제29호 개혁정론] 그들만의 구조조정?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과 이에 대한 금감원의 축소제재의 문제점

최근에 터진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은 재벌구조조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를 확인한 사건입니다. 경쟁력 없는 부실 계열사를 퇴출시키고 비핵심 계열사의 매각 또는 외자유치를 통해 재벌 자체를 슬림화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재벌의 체질을 바꾸어 건강하게 하자는 것이지 재무상 태가 취약한 재벌의 재무상황을 개선하여 큰 덩치를 유지하거나 덩치를 더욱 키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유지배구조의 개선'보다는 '재무구조의 개선'이 강조되기 시작했고 계열사매각보다는 유상증자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지치기 작업, 잡초제거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료와 양분만 서둘러 공급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5대재벌의 개혁을 목청껏 부르짖는 와중에서도 5대재벌의 계열사 수는 더욱 늘어나고 시중자금의 독식현상이 심화되는 한편 공기업민영화 참여 등을 통해 사업다각화 경 향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현대전자의 주가조작은 정부의 구조조정압박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여 오너 가족들이 사리를 챙기고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선 단식 경영방식을 오히려 강화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합니다. 현대중공업 및 현대상선이 지난해에 22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여 현대전자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였습니다. 현대증권은 이러한 시세조종 의 창구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상이 금감원이 밝힌 현대전자주가조작사 건의 개요입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드러난 전모의 극히 일부에 해당합니다. 우선 현대중 공업 및 현대상선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등 다른 여러 계열 사들도 현대전자의 주가조작에 관여하였다는 증거가 나타났으나 이 점에 대하여는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주영명예회장을 비롯한 정 씨일가가 지난해와 금년에 걸쳐 막대한 수량의 현대전자 주식을 팔아치 워 시세차익을 챙긴부분은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현대계열사들이 금년초에 수천억원어치의 현대전자 주식을 매각하는 와중에서 현대투신 을 비롯한 투신업계가 이를 대량 매수하여 릴레이형식으로 주가를 떠받 친 점에 대하여도 아무런 조사나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증 권이 단순한 창구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전말을 주도한 점도 축 소되었습니다.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바이코리 아르네상스펀드가 왜 현대전자의 주식을 그토록 많이 (총 주식투자분의 5.2%) 가지고 있는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전자이외에도 자본잠식상태에 있는 부실현대계열사들의 주가가 전반적으로 떠받쳐졌다 는 근거 있는 소문에 대하여도 아무런 추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 다.

현대그룹은 왜 현대전자를 비롯한 현대계열사들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 였을까요? 대략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씨일가 및 계열사 들이 전반적인 주가 떠 받치기를 통해 상당한 자금을 조성한 후 이를 통 해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려 한 것입니다.

엄청난 규 모의 그룹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정씨일가나 계열사들에게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자금조달수단으로 시세조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둘째로 유상증자를 통해 시중의 자금을 더욱 많이 끌어들이 기 위해 시세조종이 이루어졌습니다. 주가가 높아질수록 유상증자가 쉬 우며 발행가를 높여 더욱 많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현대그룹 은 올해에만 12조원이 넘는 유상증자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 다. 기업체 매각이나 외자유치가 부진하여 부채비율 200%를 맞출 수 없 게 되자 유상증자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의 의미가 퇴 색되어 가는 것입니다. 총수지배구조나 선단식 경영형태가 청산되지 않 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유상증자는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밑빠진 독에 쏟아붓는 것에 해당합니다.

유상증자는 부채비율은 낮출 수 있으나 기업의 손익구조가 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상증자는 자본 이익율의 저하를 가져올 뿐입니다. 재벌기업의 체질이 변화되지 않는 한 제2의 한보 제2의 기아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지금의 유상증자 러시는 곧 더 많은 국민피해를 의미 할 뿐입니다.

지금 재계에서는 현대와 같이 과감한 전력을 구사하지 못한 LG가 웃음거 리가 되고 있으며 현대증권의 이익치회장과 같이 비이성적일 정도로 공 격적 경영을 하지 않는 타 증권사의 경영인들이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시세조종을 주도한 현대증권에 대하여 담당 말단 직원들에 대 한 감봉조치만 요구하고 임원에 대한 제재나 영업정지 등 행정제재를 취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웃기는 조치입니다.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증권회 사가 시세조종이나 내부자거래에 관여하면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고 영 업을 정지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규모시세조종에 대하여 아무 런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전형적인 직무유기입니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가 증권가에 미치는 파장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제 어느 증권 사도 시세조종이나 내부자거래의 유혹을 뿌리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타 재벌사들도 주가관리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시세조종을 고려하려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증권시장의 건전성규제 에 큰 구멍이 뚫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5대재벌의 총수들이 제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구조조정노력을 자발적으로 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려낸 것은 근로자들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구조조종압박을 역으로 이용하여 사리를 챙기고 기존의 소유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구조조정 채찍을 방어하기 위해서 껴입은 갑옷으로 말미암아 이제 정부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고질라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정부의 재벌구조 조정의 핵심역할을 하는 공정위와 금감원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는 시끌벅적하게 부당내부거래조사를 하였고 과징금을 물렸으나 재벌의 내부거래관행은 조금도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공정위도 이미 행해진 내 부거래에 대하여 원상복구명령을 안 내렸고 재벌들도 과징금에 대하여 일체히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끝까지 싸울 채비를 갖추었기 때문입니 다. 상호지보해소를 강력히 추진하는 듯하나 실제로 법규상 예외인정되 는 상호지보를 통해 편법보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출자총액제한철폐를 이용하여 상호출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최근의 지주회사허용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입니다. 금감원도 이번 현대주가조작에 대한 축소조사 를 통해 법의 엄정한 집행을 통한 구조조정을 포기하였습니다.

재벌의 구조조정은 금융기관, 주주들의 합법적인 권리행사를 보장하고, 감독기관들이 공정거래법이나 증권거래법을 엄정히 집행하는데서 출발하 여야 합니다. 빅딜과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급급하여 법의 집행을 유예해 주는 것은 오히려 구조조정을 역으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대하여 금감원은 전면 재조사에 들어가야 합니 다. 정씨일가 및 다른 계열사의 가담부분에 대항 조사와 제재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현대증권에 대하여 영업정지등 강력한 조치가 취해져야 합 니다.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와 현대투신의 다른 주식형펀드에 대한 전 면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른 현대계열사의 주가조작의혹에 대하 여도 철저히 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정부가 외치는 구조조정, 재벌개혁의 구호는 시늉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며 재벌구조의 진정 한 피해자인 국민들 배제한 채 정부와 재계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그들만 의 구조조정에 머물 것입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