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평화정책 2006-11-20   1368

북핵문제와 평화국가 만들기 (이경주, 문학동네 2006년 겨울호)

1. 북한의 핵실험

지난 2006년 10월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오전 11시 45분 ‘핵실험 성공’을 세계로 타전하였다. 이어 다음날 서방의 모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10월 10일은 알고 보니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립 6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당 창건 60주년 행사가 어떤 분위기에서 치러졌을 것인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북한의 열띤 분위기와는 달리 남한의 평화운동 진영은 그야말로 할말을 잃은 분위기이다. 대결과 안보의 척박한 땅에 뿌려진 평화의 싹이 이제 겨우 돋아나려는 순간 핵실험 폭풍이 몰아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난국이다. 정치권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지 뾰족한 대답이 없지만, 평화운동 진영도 이렇다 할 답이 없어 보인다. 간간이 일부에서는 ‘북한 핵실험은 예견된 것이었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민족공조만이 살길이다’는 말이 들려온다. 또 한편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비핵화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동북아시아에 핵확산 도미노 현상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들려온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밀담을 통하여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합의하였지만, 앞길이 불투명한 것은 여전하다. 북핵문제가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간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대화 재개와 중단이 반복될 것이라는 예감뿐이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 수준도 바닥에 이른 느낌이다.

생각건대, 남과 북은 그간 핵문제에 관하여 많은 것을 합의하여왔다. 1992년 2월 19일에 발효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는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1994년에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9월 23일부터 10월 21일까지 ‘제네바 협상’을 하였다. 북한 외교부의 강석주와 미국의 본부대사 로버트 갈루치가 대표로 나선 이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를 경수로 원자로로 대체하고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2003년까지 총발전용량 약 2000MW의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키로 하였다.

그 동안 경수로 사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노력도 지극정성이었다. 경비의 70퍼센트를 부담하고 시공을 한국전력공사가 맡는 등 남측이 사실상의 공급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수로 공사 자체를 남북한 평화 정착의 지렛대로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원자력 시장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면도 있었다. 그래서 정부로서는 경수로 건설 중단을 수용하기 힘들었고, 지금까지 미국 강경파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6자회담 결과를 보고 중단 여부를 결정하자는 데까지 끌고 왔었다.

그러나 중수로가 아닌 경수로로도 플루토늄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의 압력에 밀려 결국 2005년 6월 1일 KEDO가 대북 경수로 사업의 완전 중단과 청산을 결정했다. 남은 것은 북한 신포에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와 450억원어치의 장비, 열심히 만들었던 원자로 부품 기자재, 그리고 남북협력기금 경수로 계정의 부채 11억 3700만 달러 등이다. 그리고 결국 2006년 1월 8일 모든 요원들이 철수하였다. ‘잃어버린 십일 년 세월’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십일 년이 핵실험이 되어 모두의 말문을 닫아버린 것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가 핵무기로 인한 모진 시련의 끝자락에 서게 된 셈이다.

사실 그간 남북한은 평화문제에 관한 한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었다. 북한은 계속해서 민족공조와 민족자결을 주장해왔는데, 이를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쟁의 정당화 논거로 자주 언급하는 클라우제비츠 식의 ‘정의의 전쟁론’에 기초하고 있다 할 것이다. 반면 남한의 경우 스펙트럼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특히 평화운동 진영은 평화적 생존권을 주장하면서 민족공조는 할 수 있지만 전쟁은 사양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평화적 프로세스가 진행중이던 그간에는 민족자결권과 평화적 생존권의 공통성과 상호소통성이 강조되었으나, 기로에 선 지금은 그 둘의 차별성이 눈에 띄고 있는 실정이다. 답이 없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 민족자결권과 평화적 생존권의 기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의미하는 민족자결권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보편화된 원칙이다.

그런데 사회주의권에서 사용하는 민족자결권이라는 용어는 베트남 민족해방

투쟁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다. 호찌민은 1919년 베르사유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베트남인의 자결권’ 등 베트남 해방의 8개 강령을 제출하였다. 이 회의에서 마침 민족자결권을 제창한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이 낭독되었고, 비록 프랑스 정부로부터 이렇다 할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소식은 베트남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민족자결권이 전투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은 1945년 7월에 열린 포츠담 선언 이후이다. 포츠담 선언에 따르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북베트남은 중국이 점령하고 남베트남은 영국이 점령하되, 무장해제 후에는 베트남을 베트남인이 아닌 프랑스인에게 다시 되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윌슨류의 민족자결주의가 휴짓조각에 불과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 직면하여 베트남 식 민족자결권의 주창자 호찌민은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스런 투쟁을 전개하여야만 하였다.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프랑스와 협상을 하여야 하였고, 중국에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중국과 협상을 하여야 하였으며, 1946년 12월 이후에는 프랑스와 대결하여야 하였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화국이 프랑스에 대승을 거두었으나 이번에는 미국이 프랑스를 지원하여 베트남 내정에 개입하였으므로 미국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 호찌민의 민족자결권을 기치로 내건 베트콩과 베트남군은 공조하여 통일을 위한 치열한 무장투쟁을 벌였고, 오랜 전쟁 끝에 마침내 1968년 베트남평화회담을 이끌어냄으로써 베트남인의 민족자결권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전쟁에 의해 쟁취된 민족자결권은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하였다. 구정 대공세 때만 하여도 3만 4천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십여 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는,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군사망자 약 110만(북베트남 90여만, 남베트남 20여만), 군부상자 약 200만(북베트남 150여만, 남베트남 50여만), 민간인 사망자 남북베트남 합하여 약 150여만, 민간인 부상자 남북베트남 합하여 약 300여만 명에 이른다. 특히 민간인의 피해가 막심하여 전쟁에 의해 민족해방은 달성되었을지 몰라도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의 상흔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재래식 무기에 의한 전쟁만 민중의 피해가 심각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 시대의 전쟁은 민중의 평화적 생존뿐만 아니라 민족 그 자체의 생존까지도 위협한다. 원자폭탄 제조기술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였던 약 육십 년 전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발생한 사망자 수가 히로시마에서 14만 명, 나가사키에서 7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원자폭탄의 피해는 그것이 전술 핵무기로 인한 것이든 전략 핵무기로 인한 것이든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전후방 없는 공군력 위주의 총체전 상황하에서 민족은 전란의 수렁에 빠져 절멸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은 민족의 자결과 공조에 공감하되 전쟁에는 반대하는 인권이다. 나아가 평화적 생존권은 침략전쟁은 물론이고 이른바 정의의 전쟁을 포함한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반대하는 권리이다.

생각건대, 베트남 전쟁과 달리 지금의 국제정세는 우리 민족이 사고무친의 지경에 처한 것도 아니고, 강대국의 일방적 담합에 의해 민족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유엔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나 동북아의 정치 지형과 국제사회의 움직임, 특히 평화운동과 평화담론의 성장과 확산이 미국의 일방통행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음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평화적 생존권은 국가에 의한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는 것도 거부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모두 집단적 자위라는 명분의 군사동맹에 의한 무력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주변에는 아직도 동맹 구축을 위한 전쟁훈련이 계속중이다.

더구나 최근 미국은 일본까지 끌어들여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동맹을 도모하고 있다.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6년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한미일 연합전시증원(RSOI) 및 독수리훈련(FE)’이라 불리는 대규모 전쟁연습훈련이 있었다. 특히 올해는 세계 최대 규모에 이를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규모가 방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라함 핵추진 항공모함과 스트라이커 부대를 비롯하여 각종 핵무기와 관련된 군사장비로 무장한 병력이 참가해 한국, 일본 그리고 괌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하였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태평양 서부의 괌 인근에서 실시한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 2006’ 기동훈련도 지난 6월 닷새간의 작전을 모두 마치고 막을 내렸다.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는 미국의 환태평양 군사훈련, 이른바 림팩(RIMPAC) 훈련이 태평양에서 진행된 바 있다. 림팩 훈련은 미국 태평양사령부의 지휘하에 격년제로 열리는 해상 종합기동연습으로서 ‘2006 림팩’에는 우리 해군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칠레 페루 일본 등 8개국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일련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미국과 일본의 군사 경제적 대북 압박 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 평화 유지가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미 항공모함의 입항은 그 자체만으로 침묵의 무력시위나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것들도 북한 핵실험 못지않게 한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평화적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3. 군확에 기초한 생존과 군축에 기초한 생존

평화적 생존권은 민족의 자결에 공감하면서도 군확이 아닌 군축을 지향한다. 군축의 출발점은 비핵화이다. 평화적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무기의 배제가 우선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비핵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물론 현재의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는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체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강대국의 핵 보유는 용인하면서도 약소국의 핵 보유만을 규제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핵 독과점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특히 지난 2005년 5월 뉴욕에서 열렸던 제7차 NPT 평가회의에서 보여주었던 미국의 태도는 그러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여곡절 끝에 채택된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획기적인 약속임에 틀림없다. 전쟁과 대결의 불씨가 남아 있는 한반도야말로 핵으로부터의 평화적 생존이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선언은 평화적 생존의 햇볕이 찾아드는 이정표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하여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이제 한낱 겉치레 종이쪽지에 불과하게 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비핵화선언이 나오더라도 이제 공신력이 얼마나 생길지 참으로 암울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적 생존권은 핵우산이나 확장억제정책도 거부하는 권리이다. 지난 2006년 10월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이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제의 지속’을 약속한 바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어 당사자 중 한 사람이었던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0월 30일 기자회견에서 핵우산정책에는 변함이 없으며 확장억제정책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일종의 외교적 립서비스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확장억제의 개념은 과거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할 경우 소련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확장억제가 아니라 전쟁 유발의 개념이 될 수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국민의 대표라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이 핵우산정책이든 확장억제정책이든 민족의 생존을 절멸에 빠뜨릴 수 있는 핵무기정책을 정부에 촉구하였다는 것은 북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비핵화의 협상력과 발언권을 스스로 저하하는 우행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적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래식 무기 및 핵 이외의 대량살상무기의 축소도 필요하다. 80년대 말부터 남한의 재래식 전쟁수행능력 증강 대 북한의 대량살상에 기반을 둔 억지능력 증강이라는 비대칭적 군비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경우, 잘 알려져 있듯이 1998년 8월 22일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정론을 통해 처음 ‘강성대국’이란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고 “사상의 강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튼튼히 세우고 그 위력으로 경제건설의 눈부신 비약을 일으키는 것이 주체적인 강성대국 건설방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강성대국’을 신년사 등에서 전격적으로 내세우며 ‘정치·사상의 강국’ ‘군사의 강국’ ‘경제의 강국’으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 ‘국방개혁 2020(안)’에 따라 기술집약형 군 구조와 전력의 첨단화를 위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총국방비 소요 621조원 중 상당수를 전력투자 및 전력증강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국방부는 이러한 기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방개혁의 추진 방향으로 ①국방의 문민 기반 확대(군은 전투임무 수행 전념), ②현대전 양상에 부합된 군 구조/전력체계 구축, ③저비용·고효율의 국방관리체제로 혁신, ④시대상황에 부응하는 병영문화 개선이라는 네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2020년까지 군병력 50만으로 감군(減軍)’이라는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실질은 그 동안 유지되어온 한국군의 ‘양적 구조’를 ‘질적 구조’로 재편하는 군확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차기 잠수함 등 51개 사업에 52.6조원이 소요되고 차기 전차 등 14개 사업에 14.9조원이 투여되며 전력 투자비로 64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결국은 ‘국방개혁 2020(안)’의 전체 내용은 매우 방대하지만, 핵심은 오히려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국방부는 국방개혁을 평화와 실질적 군축을 위한 프로세스로 보지 않고 한국군을 ‘효율적인 선진 정예강군’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세스로, 즉 ‘남한판 강성대국’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4. 안보국가로부터 평화국가 만들기로

한반도는 전쟁의 상흔을 가장 집약적으로 가지고 있는 곳이다. 우선, 직접적인 전장이 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평화적 생존이 심대하게 침해받은 역사가 있으며,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많은 인명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6·25라는 전대미문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쳤다.

그런데도 이러한 전쟁의 참화가 전쟁에 대한 참회가 아닌 대결과 긴장으로 이어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피침략의 역사와 그로 인한 피해의식이 전쟁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기념하고 숭앙하는 것 같은 일련의 분위기, 군확을 너무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안보지상주의로 발전하여 심지어 안보를 위해서는 인권도 평화도 희생할 수 있다는 전도된 사고가 남과 북의 역사를 지배하여왔음을 돌이켜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군확만이 생존을 보장하고 군축은 생존과 거리가 있다는 사고가 남과 북에서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북은 핵실험으로 남은 핵우산정책과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 군확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비핵화에 터잡은 군축이 진행되지 않으면 평화적 생존은 확보되기 힘들다. 대결과 긴장이 계속될 뿐이다. 군축에 기초한 평화적인 생존의 방도, 평화적 프로세스에 의한 생존의 방도가 남북한 모두에게 요구되는 때이다.

미국 역시 이번 핵실험을 통하여 대북 압박정책이 더이상 군사외교적 성과가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한반도를 평화국가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세스에 동참해야 한다. 핵실험으로 요동치는 한반도 평화 정착은 평화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달성될 수 있으며, 지금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위한 민족공조에서 뾰족한 답을 찾을 때이다.

이경주 (인하대 법대 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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