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8-12-24   2334

김칫국 많이 마신 파병론자들과 이라크 파병의 교훈


‘이라크 평화재건 활동’의 본질


국민들의 관심이 국회에 쏠려있던 지난 19일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자이툰 부대와 쿠웨이트에 파견되었던 다이만 부대가 철수하였다.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파병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철수하는 이들에 대한 환대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파병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깊은 갈등을 돌아볼 때 국민들의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사회적 현안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정부와 언론에서는 파병부대의 평화재건활동을 높이 치하했다. 물론 한국군이 무사귀환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투르드족의 깊은 신뢰를 얻고 돌아왔다는 평가에도 궁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세기적 침략전쟁이었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한국의 정책결정과 파병부대의 활동에 대해서는 엄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한국의 이라크 참전을 평화재건 활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비켜간 쿠르드지역 아르빌에 주둔하면서 일종의 소규모 ‘새마을 운동’을 하고 온 것을, 그리고 전쟁수행을 위해 병력과 물자수송을 지원한 것을 과연 ‘이라크 평화재건’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짓 혐의를 두고 강행되었던 외국군의 폭격과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을 목도한 이라크 주민들이 이번 전쟁에 얼마나 큰 반감을 갖고 있는지는 부시가 당한 ‘신발 봉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누구를 위한 평화였고, 전쟁피해자들을 위한 ‘재건’이었나. 이라크 역사도 한국군의 이라크 참전을 평화재건 활동이었다고 평가할까.


석유자원 확보, 기업진출? 김칫국 많이 마신 파병론자들 


돌이켜보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지지했던 여론에는 맹목적인 주장을 제외하고 크게 두 가지 논리가 있었다. 하나는 한미동맹을 위해 불가피하는 것, 또 하나는 석유자원 확보가 용이해진다는 것이었다. 파병론자 대부분은 석유확보를 단골메뉴로 거론하곤 했었다. 석유를 목표로 한다면 결국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다를 게 없으며, 석유확보 가능성은 정부의 자의적인 기대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전쟁 6년이 경과하는 지금 결과는 어떠한가? 정부는 석유공사가 쿠르드 정부와 맺은 원유채굴권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파병의 큰 성과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사실상 이조차 무효화되었다. 애초부터 쿠르드 정부가 남발하는 MOU의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애초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관심이 없거나 침묵하였다. 그럼 한국의 기업진출은 성공하였나? 성공사례가 있으면 이미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터이다.


앞으로 한국군의 해외파병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군의 해외작전 경험에 대한 욕구가 더해져 한미동맹 차원의 파병이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언제나 모든 논리를 압도하곤 한다. 동맹을 앞세우는 순간 논리는 없어지고, 미국 측 요구를 한국이 거절할 수 없다는 일종의 패배감, 피해의식이 작동한다. 그래서 한국민이 주한미군을 위해 지고 있는 과도한 재정적 부담은 고려되지 않는다. 파병의 성격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평화를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만, 어느새 동맹은 목표가 되어 버렸다.


분쟁에 대한 이해 없이 미국이 요구하면 파병하는 나라 

그 결과 한국은 군대를 파병하면서 해당지역 분쟁에 대한 이해나 접근방식에 대한 고민없이 미국 측 요구에 따라 파병을 결정해왔다. 그러나 지난 해 아프간에서 23명의 한국 민간인들의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에 있을 때 아프간에 파병했던 한국은 막상 피랍 한국인을 석방시키기 위한 정보나 인적 네트워크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김선일씨 피랍 살해 사건 때는 또 어땠나. 정부의 대응은 언제나 입국금지 국가로 지정하는 사후적 조치뿐이었다. 
 
지금 아프간 재파병이나 선박보호를 넘어서는 임무수행을 요구받고 있는 소말리아 파병도 그렇다. 하지만 아프간이든 소말리아든 그들의 정치경제적 안정없이 군사적 동원으로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간은 군사력으로 점령을 시도한 영국과 소련도 좌절시킨 군벌중심의 나라이다. 이미 기업형으로 발전한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국내 문제 해결없이 군사력만으로 근절시킬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은 또 다시 파병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혹자들은 한국군 파병 때마다 안전여부를 따지는 우리에게 “평화를 위해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물론 평화를 위한 희생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희생이냐를 따지지 않고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의 나라를 무단으로 침략하거나 군사력으로 개입하려는 이들을 돕다가 이에 저항하는 현지인들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것을 과연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파병하느냐”라고 반드시 물어야 하고, 무모한 희생이 없어야 하기에 파병지의 안전도 물어야 한다.



파병 결정하고 평가도 검증도 없는 정부와 국회

조만간 정부는 아프간이든 소말리아든 파병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정부는 파병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요청에 대한 응답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지방재건팀(PRT)의 대규모 파견이든, 경찰 파견이든 내용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미국은 무장해제나 저항세력이 만든 검문소 해제, 저항세력 소탕지원을 위한 아프간 경찰 훈련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고, 그 역할을 한국에게 맡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내 활동보다 훨씬 외부 노출이 커서 위험성도 훨씬 높은 일이 될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파병요구는 여러 형태로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파병을 결정하고 동의해주었던 정부와 국회는 아무런 평가도 검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라크, 아프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여전히 그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덧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김선일, 윤장호, 배형규, 심성민, 그리고 왜 현지 주민들이 그들을 증오하는지 알지 못하는 파병 미군들 모두 전쟁의 희생자들이다. 한국인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전쟁을 기억하고, 한국 파병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무모한 파병을 계속하기에는 파병이 남긴 교훈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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