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9-08-06   1013

클린턴과 쌍용자동차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의 순안공항에 내리는 순간, 평택에서는 경찰이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파업을 진압하기 위한 작전에 착수했다. 우리 안의 평화는 무너졌고, 한반도 평화는 다시금 북-미대화의 함수가 되어 버렸다.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적대하고 있는 국가에 전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한다. 시장만능주의의 선봉이었던 이 국가는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개입을 서슴지 않는다. 다른 한편, 미국과 전략동맹과 에프티에이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국민이 북한에 구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압정책을 선호한다.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대응에서 드러나듯, 시장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다.

적대와 시장의 유지가 자국민의 안전과 노동자의 생존권에 우선하는 가치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고전적 질문을 다시금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국가가 안과 밖에서 공공이익을 추구하지 못할 때, 국가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공공이익인가를 논의하는 공론장조차 위협받고 있다. 정책 없는 대북정책과 대안 없는 노동정책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갈등해결을 추구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란성 쌍생아다.

북-미관계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새로이 등장한 미국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주저한다. 적대적 말의 공방이 오가고, 그 말이 행동과 정책으로 구체화되면 위기로 비화된다. 위기가 닥치면 협상이 시작된다. 1차 핵위기는 제네바합의로 봉합되었고, 2차 핵위기는 6자회담을 매개로 북한 핵의 불능화를 도출했다. 20여년에 걸친 북미공방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할 때, 한-미관계도 협력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제네바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방해하려 했고,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남북대화는 없었다. 반면 2000년 6·15공동선언과 북미공동코뮤니케는 남-북-미관계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용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 위기가 이익인가, 평화가 이익인가.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북한과의 협상을 주저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핵의 불능화를 둘러싼 6자회담 참여국들의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 대외협상과 대내적 결속에 유리하다는 학습을 한 북한은 2009년 4월과 5월, 로켓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고 ‘핵억제력강화로선’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고 밝혔다. 3차 핵위기다. 3차 핵위기는, 1, 2차 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6자회담을 거부하고 북미 직접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은, 오바마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핵심 목표인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규범 가운데 하나인 핵군축이 한반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0년 5월로 예정된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에서 오바마 정부의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정책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새로운 북미공방의 일차 마감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의 전개과정에서, 미국 기자의 월경과 구금이라는 우연적 사태로 북미협상의 시간이 조금 빠르게 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북-미 직접대화의 시작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언론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면전환의 계기점’이 될 것이란 기대도 감추지 않고 있다. 북-미대화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처럼 한-미 사이의 불협화음을 감수하면서 북-미대화 발목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북-미대화를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의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선택이 우리의 공공이익을 증진할 수 있을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한국정부의 침묵과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경찰력 투입이라는 두 사건에서, 우리사회의 공공이익이 실종되고 있음을 본다. 정부가 핵위기의 지속과 쌍용자동차 사태의 강제해결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사회세력의 입장에 선다면, 우리 내부의 갈등을 덮기 위해 한반도 평화과정을 외면한다면, 정부는 대내외적으로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



* 이 글은 한겨레 (2009. 8.6)에 실린 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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