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5-03-25   1001

<안국동窓> 일본의 독도침략과 미일동맹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전범재판을 보면서 ‘나치라는 악마가 사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가장 놀랐다고 한다. 바로 그렇다. 이 세상에는 악마도 천사도 없다. 오직 악마도 될 수 있고 천사도 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일본의 독도침략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일본은 ‘기형적 민주국가’다. 의회가 있고 선거를 치른다는 점에서 분명히 민주국가이지만, ‘천황’이 여전히 ‘신적 존재’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범세력이 처단되기는커녕 여전히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이 있어도 이런 치명적 문제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에서,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듯해도 이런 참담한 상황에 사실상 손놓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한국보다도 훨씬 더 기형적이다. 문제는 이런 ‘기형적 민주국가’가 평범한 일본인들을 다시금 ‘일본 제국주의의 악마’로 만들 것이라는 데에 있다.

‘기형적 민주국가’로서 일본은 본질적으로 2차대전 이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핵심은 ‘천황’이라는 절대적 존재와 그를 내세운 우익의 지배이다. 패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우익은 ‘패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패전’은 없고 오직 ‘종전’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강한 부정이 자리잡고 있다. 남경대학살도, 731부대도, 정신대도 결코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결과 일본 우익은 지금도 ‘대동아공영권’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강력히 추구하고 있다.

일본 우익은 분명히 일본을 또 다른 ‘종전’으로 이끌고 가고 있다. 평범한 일본인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별 다른 저항없이 또 다른 ‘종전’으로 이끌려 가고 있다. 이러한 평범한 일본인들의 태도는 제국주의적 일본 우익의 훌륭한 알리바이가 된다. 옛날에는 ‘천황’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국민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독도침략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시마네현의 조례 제정이라는 형식으로 취해진 독도침략은 이를테면 시마네현민의 뜻을 모아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독도침략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한 지방정부에서 조례를 제정한 것에 대해 우리가 너무 강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일본의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좌우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 것이다. 일본의 지방자치를 흔히 ‘1/3자치’라고 부른다.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대체로 ‘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끌어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악명높은 토건국가 일본의 부패구조는 이러한 ‘1/3자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마네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의 중앙정부는 분명히 통제할 수 있었다. 고이즈미와 그 부하들은 시마네현이라는 지방정부를 내세워서 독도침략을 자행한 것이다.

정말이지 가증스럽게도 일본 우익은 ‘냉정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의 침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냉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적반하장식 주장에서 우리는 일본 우익의 실체를 다시금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2차대전에서 저지른 온갖 범죄도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다. 독도침략을 침략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2차대전의 범죄에서 잘 드러났듯이 일본 우익은 분명히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응징의 대상일 뿐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정상적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 출발점은 정상적 응징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정상적 응징은 없었다. 부분적인 비정상적 응징이 있었을 뿐이었다. 최고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죄값을 치른 전범들 중에는 조금 억울한 자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전범재판 직후에 일본에서는 ?일본무죄론?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널리 읽히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분열증적 상황이 빚어졌는가? 그 근원은 미국의 동북아정책이었다.

올해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 전에 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했다. 이러한 일본의 침략을 가장 먼저 ‘승인’해 준 나라는 미국이었다. 1905년 7월 도쿄에서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과 일본의 가쓰라 다로 총리가 밀약을 맺어 미국은 일본의 조선침략을 ‘승인’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침략을 ‘승인’했던 것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진보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히 ‘민족의 원수’이기도 하다.

올해는 또한 해방 60주년이다. 일본으로서는 패전 60주년이다. 그러나 일본 우익에게는 여전히 종전 60주년일 뿐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최고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교두보로 일본을 활용하고자 했고, 이 때문에 최고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나치의 히틀러는 죽었으나 일제의 히로히토는 살았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적국에서 동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빼고는 일본의 본질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독도침략의 주체는 일본의 지배세력인 일본 우익이지만, 그 배후는 미국의 지배세력인 미국 우익이다. 미국 우익은 세계를 오로지 지정학의 관점에서만 파악한다. 이에 따르면 동북아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고, 한국은 이 강대국의 남진을 막기 위한 잠재적인 전쟁터이며, 일본은 잠재적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지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우익은 100년 전에 일본과 밀약을 맺었던 것이며, 60년 전에 전범재판 쇼를 열어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른바 한미일동맹의 핵심은 미일동맹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의 라이스 순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라이스는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공공연히 지지했을 뿐더러 독도침략을 사실상 묵인했다. 백년 전의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부시-고이즈미 밀약’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맥아더의 전범재판 쇼가 라이스의 동북아 순방 쇼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을 ‘기형적 민주국가’로 만든 미국은 급기야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을 공공연히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표는 올바른 것이었다. 지금 동북아의 정세는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너무나 불길하고 불안하다. 미일동맹은 다시금 이 땅을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일본 우익은 공공연히 침략을 자행하고 있다. 미일동맹과 일본 우익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는 강력히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시민사회는 너무나 소극적이고 침체되어 있다. 일본의 민주화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분발이 절실하다.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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