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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09.21
  • 535

[한반도 브리핑] 한계 봉착한 남북한 전략, 정상회담 고려하라



우리의 상상력을 반(反)패권주의적 관점에서 발휘해 보자. 미국의 유일패권적 지위가 사라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평가할 때 21세기 초반은 미국의 패권이 최고조에 도달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달은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최고조에 달한 미국의 패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패권에 도전하는 무수한 시도들이 좌절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패권은 스러질 것이다. 늙은 제국은 한 번에 죽지 않고, 서서히 사라질 뿐이다. 달이 차오르는 시간이 긴 만큼, 달이 기우는 시간도 필요하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나.

패권의 남은 시간은 패권에 도전한 세력들의 무덤이 늘어날수록 줄어든다. 노회한 패권은 무덤의 수를 늘이지 않으려고 하고, 영악한 도전세력은 묘지로 가는 길을 다른 도전세력들에게 양보하려고 한다. 그래도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묘지에는 무덤이 늘어난다. 역사의 시계는 멈추는 법이 없고, 역사의 주역들은 종종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과연 우리는 알 수 있을까. 아무리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다고 하더라도.

갈림길에 선 한·미 양국

세 개의 현안이 2006년 9월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쟁점으로 논의됐다. 북핵,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한미FTA. 이 세 가지 쟁점적 현안에 대해 한·미 정상은 두 개의 결론을 내렸다.

먼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FTA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한·미 양국의 동맹관계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양국이 공유하는 이익의 크기가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차이가 났다. 최근 언론에 회자된 표현을 빌면, 양국 최고지도자는 대북정책에서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상호 인정했다(agree to disagree on North Korea, 미첼 라이스 전 국무부 관리). 한미동맹이 일방주의적이지 않다면, 이러한 차이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동맹은 두 개의 국가가 협력하는 방식이지, 두 개의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합치거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예속되는 방식은 아니다. 패권국가가 강요하는 일방주의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FTA를 논의하는 현재 상황에서 일방주의만으로 한미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긴 하지만, 자연스럽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2005년 9·19합의 이후 한·미 최고지도자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차이는 이미 오래된 것이자 예견된 것이었다. 단지 그 차이가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9·19합의 자체가 '출구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맹이 변화하고 있는 시기에 차이를 드러내는 일은 서로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투른 외교는 차이점을 먼저 드러내려 하지만, 능숙한 외교는 공통점을 앞세운다.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의 입장 표명에서도 외교는 작동하고 있다. 두 정상은 6자회담에 대한 책임감 및 기대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우선적으로 확인했다.

차이점은 조심스럽게 표현되었다. 한쪽에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과 '추가 대북제재에 대한 우려', '6자회담 실패 가능성을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는 시기임'이 강조되었다.

다른 쪽에서는 '북한의 6자회담 참가 거부'와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5개국의 협력(alliance) 강화 및 실질적 위협 인식'이 강조되었다. 차이점은 미묘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회담 이후에 흘러나오는 정보들은 한·미 사이에 견해차가 의외로 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언론의 보도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현재 북한에 가하고 있는 금융제재를 완화하고, 덧붙여 추가 제재를 미루어줄 것으로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는 한국 정부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한국 측의 의지도 높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당연히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다. 박경순,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우려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사용했을 두 가지 설득논리를 잠시 살펴보자. 한국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쌀·비료 지원을 중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사실상 제재와 다름없는', 그리고 '유엔 결의안의 정신에 따르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이 대미 설득논리로서 어떤 효과를 가질지는 의문스럽지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북포용정책의 기본정신 또는 병행전략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현재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이란핵 문제, 레바논 문제, 이라크전쟁 문제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맡겨달라는 주문으로 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그다지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미 미국은 자신의 방법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계에 봉착한 남북한의 전략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한미정상회담은 9·19합의 이후 다른 길을 걸어 왔던 양국 정상이 서로 만나 상대방의 생각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 정부에게 9·19합의는 외교적 성과였다. 9.19 당시 미국은 한국과 중국의 끈질긴 중재노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으며, 북한 또한 6자회담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되지 않았다는 데에 만족했다.

한국 정부는 9·19합의에 기초해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9·19합의를 '잠정적 정전협정'으로 인식하고 있던 미국은 합의 직전부터 금융제재라는, 북한에 대한 '저강도 압박' 혹은 '비군사적 전쟁'을 시작했다. 북한이 경수로 건설을 요구하면서 '외교적 대결'을 시도할 때, 미국은 이미 '외교의 장'을 떠난 상태였다. 미국 정부가 떠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의도는 제대로 실현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남북한 모두는 남북관계를 한 단계 전진시킬 수 있는 내부 동력을 갖지 못했다. 남한 정부는 남북경협과 대북경제지원을 급격하게 확대할 수 있는 물적 역량도, 사회적 합의기반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북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정책은 성과 달성과 정책 심화 사이의 선순환고리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북한 당국은 미국의 대북압박정책 때문에 체제생존전략 자체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내몰리고 있었다.

자연히 북한 최고지도부는 정책결정·집행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아마도 권력기반에 대한 자신감조차도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열차시범운행의 결렬(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무산(6월)은 9·19합의의 성과가 남북관계에서조차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결국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의 저강도 압박에 대한 북한의 강경대응이었으며, 이는 남한의 대북 쌀·비료지원 중지라는 강경대응을 불러왔다. 9·19합의 9개월 만에 남북한과 미국은 다시 끝(출구)이 보이지 않는 미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9·19합의가 찾아낸 '출구'는 이제는 더 이상 6 개국이 함께 통과해야 할 문이 아니라, 북한만이 통과해야만 시험대가 되었다. 한국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출구전략에 따라 서로 대응하는 상호신뢰조치를 핵심내용으로 한다면, 미국 정부는 '북한 핵무기 계획의 검증가능한 제거'를 유일한 출구이자 출구로 가는 통로로 보고 있다. 아마 이 때문에 미국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일종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출구전략이라는 모호하지만 창의적인 접근방안이 패권국가의 '창의적'인 압박정책 때문에 '출구'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아니, 이제 남북한의 한계를 파악한 미국에게는 출구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국은 출구의 바깥에 서 있다.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고 한 남한이나, 대미 강경대응을 통해 미국을 움직이려고 한 북한이나 미국을 다시 그들이 서 있는 장소로 불러들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한은 미국에게 줄 대가를 이미 담보로 맡겨놓은 상태이고(심광현, "패착 확인한 정상회담···궁지에 몰린 'FTA' 도박", <프레시안>, 북한은 자신들의 협상수단이 실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이처럼 전략의 한계에 봉착한 남북한 모두에게 '패'를 뒤집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남한은 북한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여력이 남아 있는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아직 한국 정부가 움직일 여지가 남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부담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져야 한다.

북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긴장고조 쪽으로 갈 것인가, 화해모색 쪽으로 갈 것인가. 과연 긴장고조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최후의 패'가 북한에게 남아 있는가. 추가 미사일 발사, 핵실험, 이 모두는 허황된 수단이 아닌가. 이미 대포동 2호의 실패가 분명해진 마당에, 핵실험은 '미사일 시험발사'라는 예방주사를 맞은 미국의 네오콘들에게 조금이라도 자극을 줄 수 있을까.

동북아 군비경쟁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남한의 입장에서는 핵실험이 가져올 여파가 두려울지 모르지만, 신념으로 무장한 네오콘들에게 핵실험은 '전투심'의 고취와 '좋은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핵실험이 실패한다면, 한반도 주민이 받게 될 환경적 재앙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북한 지도부와 군부가 입게 될 대내외적인 '상처'는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남북정상회담이 '중간 출구'가 되기 위해서는

북·미 갈등이 양국의 대응논리에 따라 위기로 다가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는가?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제재조치 강화는 당분간 유보될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과 호주의 대북제재조치는 미국이 우리에게 줄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1695호)의 동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려고 하는 입장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 설득은 이어지겠지만, 북한 지도부의 태도를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중국의 설득이 압박으로 바뀔 때, 북한의 태도는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자연히 중국은 설득과 압박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 나갈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역할이 여전히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 9·19합의 1주년과 한미정상회담을 전후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제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남한의 북한에 대한 선의의 우선조치, 북한과 미국을 오가는 남한의 지속적인 특사외교, 남북정상회담, 정책제안들의 내용은 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김연철, "9·19공동성명 1주년, 6자회담은 살아 있나?", <프레시안> ; 김근식, "9.19합의 1주년, '한반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김연철, "한미정상회담 이후 대북 포괄적 접근 어떻게 할 것인가?", <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 김대중 전대통령 긴급호소, "북한 문제, 네오콘은 손 떼고 한국 의견 존중하라",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06. 9.

이러한 정책제안들을 정책구조의 차원에서 살펴보면, 남한-북한-미국 사이에 관계개선을 촉진시키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 정책구상이며,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은 남북정상회담이다.

과연 남북정상회담은 가능하며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세 가지 정도의 지적이 가능하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은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 2년여의 시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둘째, 남북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하는 국제적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 전후에 이루어졌던 유럽연합 국가들의 대북한 포용정책 및 관계정상화뿐만 아니라, 북한의 활발한 대외관계 개선 활동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북한 지도부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북한은 1990년대 말부터 경제회복·성장을 위해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체제정비작업에 들어갔으며, 개혁개방정책은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이러한 조건들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남북한 당국 사이에 신뢰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고, 남한은 곧 대선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을 밀어줄 국가들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남북한 당국 모두 국내적으로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지기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서 모든 일들은 압축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불가능한 일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최고지도자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판단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반도가 위기의 국면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으며, 이번의 위기가 남북한 모두에게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북한 국가뿐만 아니라 한민족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남북 정상은 만날 필요성을 강하게 갖게 될 것이다.

과연 남북의 두 지도자는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위기를 살아 온 사람은 위기에 무디지 않은가?

* 본문 기사는 <프레시안>에 실린 기고문 입니다.
박순성(동국대 교수, 평화군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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