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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평화나누기
  • 200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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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평화운동가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일이다. 마흔 넷의 평화운동가 안젤라 젤터로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곧 범죄”라는 섬뜩한 말을 들은 것이. 내가 영국 런던에 도착한지 5개월째, 아직은 주위 가득한 낯섦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호기심이 살아있었던 1996년 8월이었다.

<희망의 씨앗 : Seeds of Hope>의 일원이 되기 전, 안젤라는 영국숲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였다. 숲네트워크 활동에 대해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목재회사를 상대로 삼림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목재구입방식을 바꾸도록’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무차별적인 벌목을 반대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도모하는 운동이었으리라.

여느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안젤라도 지역 안팎의 연대모임들에 나갔고 거기서 다른 ‘희망의 씨앗’들, 그러니까 그 당시 서른을 전후한 또래들 로타 크롤리드, 조안나 윌슨, 그리고 한해 전 무기박람회장에서 전투기에 붉은 페인트를 집어던져 2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온 안드레아 니드함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동티모르문제, 영국의 무기수출문제, 무장해제운동 등에 대해 토론하다가 평화운동의 구체적인 한 가닥으로 ‘전투! 기 무장해제 프로젝트’에 마음을 모은다. 그리고 그들은 이 활동을 이끌어나갈 단체 ‘희망의 씨앗’을 만든다.

사건은 간단하고 대단하다.

1996년 1월 29일 새벽 3시, ‘희망의 씨앗’ 소속 3명의 영국 여자들이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로 되어있는 스물 네 대의 전투기 중 하나가 있는 영국 랭카셔 위튼에 있는 브리티시에어로스페이스사 공장 안에 있는 격납고로 숨어 들어간다. 가지고 간 망치(흔히 집에서 쓰는 작은 ‘가정용’)로 전투기에서 기관총, 레이저 등 무기로 쓰이는 부분만을 파괴했다.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전투기 무장해제에 쏟은 그들은 그 작업을 끝내자 이 호크전투기 수입국인 인도네시아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된 동티모르의 어린이와 여자들의 사진을 전투기에 붙이고 2개의 플래카드를 늘어뜨렸다. “동티모르에 정의와 평화를” “칼을 보습으로”. 전투기 조종석에 지난 9개월간 그들의 활동을 담은 비디오테입과 자료집을 올려놓고 전투기 주위에 상징적으로 꽃과 곡식의 씨앗들을 뿌리며 ‘전투기 무장해제 프로젝트’의 성사를 자축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구속되었다.

▲ 영국의 대표적인 반핵, 무장해제 단체인 TRIDENT PLOUGHSHARES(트라이던트 보습만들기). 핵무기 무장 시스템인 트라이던트를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무기들을 농경에 사용할 수 있는 쟁기로 바꾸자는 의미이다. '희망의 씨앗'이 또한 이 단체와 함께 하고 있다. (http://www.tridentploughshares.org/)

안젤라의 역할은 이 다음부터였다. 영국 곳곳을 돌며 영국 정부의 전투기 판매를 즉각 중단하라는 캠페인과 토론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동티모르를 강제 점령한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영국 정부가 전투기를 팔았고, 바로 그 전투기들이 동티모르 주민들을 학살하는 데 쓰인다는 것을 선전했다. 국회의원들을 만나 비디오테입과 자료집을 건네주고, 국회에서 무기판매중지 건을 토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 보이며 “이게 다음 전투기 부술 때 쓸 망치”임을 공공연히 선포(?)했다. 그러다 안젤라는 어느 집회 참석 직전에 연행되어 ‘기물파손 공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30일. 리버풀 법정은 1백50만 파운드의 손해배상판결을 받았던 ‘희망의 씨앗’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198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전개된 무기파괴운동 혹은 보습운동 총 쉰다섯 차례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안젤라를 만난 것은 8월. 그러니까 무죄판결 후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런던에 왔을 때였다. 신문기사와 또 이들이 만든 비디오 자료를 통해 접한 이 흥미진진하고 대단한 활동의 주인공을 만날 생각에 얼마나 흥분했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바쁜 일정 탓에 방송 전후로 인터뷰를 했는데 친절하고도 단호한 사람이었다.

사건이야 이미 신문이 다 정리한 터여서 내가 물어본 것은 ‘희망의 씨앗’이라는 ‘조직’에 대한 것이었다. 평화를 위한 여성주의적, 분리주의적 실천이라고 강조한 점이 눈에 뜨였기 때문이다.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의 저가 경험한 한국 사회운동의 규모와 이슈가 사회운동의 전부인줄 알았던 ‘우물 안 개구리’에게 몇몇이 전투기를 무장해체하는 프로젝트로 평화운동을 벌이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인데 이 조직은 대표도 없다는 말로 자신들의 실천철학을 펼쳐놓는다. “뭐.. 남자들과 일하면 우선 대표 정하고 조직체계 잡고 그러면서 실제 활동 이외의 문제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게 되니까...”

안젤라는 거창하고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슬쩍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만 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렇구나. 대표 뽑지 않고도, 운영위원회 구성하지 않고도 조직을 만들 수 있구나, 그러고도 9개월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저렇게 엄청난 직접행동까지 나서다니!

그 이후 난 우연히 두 번인가 더 안젤라를 마주쳤다. ‘쥬빌리 2000’에서 외채탕감운동을 할 때 열린 시위에 나갔다가 반핵운동 유인물을 나눠주길래 반가워한 것과 런던 시내에서 어디론가 바삐 걷고 있던 안젤라를 길 건너편에서 얼핏 본 것이 전부다. 그리고 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천안에서 열린 한국사회포럼에서, 때론 광화문이나 시청에서 한창 열변을 토하는 연설자를 보고 있을 때나 집회군중과 전경들이 실랑이를 벌일 때 가끔 안젤라를 추억한다. 상상력으로 조직과 활동을 다르게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안젤라가 내게 준 충격의 느낌을 되새겨내려 안간힘을 쓴다.
양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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