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 나은 병역제도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

더 나은 병역제도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병역제도다. 병역제도에 대한 논쟁은 지난 수십년간 언제나 뜨거웠지만, 지금이야말로 병역제도 개편을 진심으로 토론해야할 시기이다. 인구절벽 문제에 당면했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현재 병력 규모를 유지할 때 2025년부터는 입영 대상자 수가 필요한 병력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기고, 2040년에는 입영 대상자 수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병역 자원이 부족해지는 현실에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현재 수준의 병력 유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전제일까? 한국군에는 여전히 50만명의 상비 병력이 필요할까?

이미 90년대부터 다수의 연구 결과가 한국군 적정 병력의 규모를 30만~40만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병력 규모 10만명 이상인 징병제 국가의 인구 대비 병력 규모 평균 수치를 대입해도, 30만명이면 충분하다. 징병제 시행 주요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인 군 복무기간 역시 병력 규모 감축에 맞게 당장 12개월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병역제도의 장기적인 개편을 준비하기 전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한정된 예산과 자원 하에 군비 투자는 다른 사회적 투자를 포기한 대가로 이루어지기에, 군사력 형성이 절실한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인 ‘유사시 북한 안정화 작전’, 즉 북한을 점령할만큼 충분한 병력과 사단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은 국제법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을 뿐 아니라 비현실적인 계획이다. 더이상 군사력은 병력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남한의 군사력은 이미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며, 국방비 지출은 북한의 총 GDP 규모를 넘어선지 오래다. 2018년 김윤태 국방개혁실장 역시 “무기체계 성능은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이 우리가 우위다. 전문가들은 첨단무기체계 능력을 군사력의 90%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군비는 줄일 수 있고, 남북 대화와 상호 위협 감소, 신뢰 구축을 위해서라도 줄여나가야 하는 문제다.

지금은 병력 규모를 줄일 때이지 징집 대상을 확대할 때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성 징병은 현실적이지 않다. 징집으로 인한 젊은 남성의 희생에 대한 답은 “여성도 군대 가라”가 아니라 “국가가 징집의 이유를 명확히 하고 복무 여건을 개선하는 등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며 장기적으로 희생의 크기를 줄여나가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여성도 군대를 간다면 성평등이 실현될까? 군사주의 문화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다. 폭력, 위계, 적대행위를 경험하거나 훈련 받는 일은 줄이고 없애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다.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모병제 전환 역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이 군대에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군사 영역의 많은 부분을 민영화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져올 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국가가 독점한 폭력 수단이자, 가장 강력한 물리력인 군대의 문제를 소수의 관심사로 만들고 전문화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군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개입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장기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풀어야 한다.

병역제도에 대해 쏟아져 나오는 의견들이 반갑다. 이 논쟁이 선거 전후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회적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안보 환경이나 군사 전략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고 국방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열려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병역제도가 평화와 군축의 관점에서, 군비를 줄이고 희생을 줄이는 방식으로 개편되기를 바란다. 다 같이 나빠지지는 말자. 다 같이 좋아지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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