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한민국에 던진 질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한민국에 던진 질문

이태호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평화군축센터 소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고통과 비통함이 전해지고 있다. 이 전쟁이 지금까지 무르익어왔던 ‘신냉전’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이 그 대리전장이 되고 있는 것인가? 여러모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여년 전 발생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만큼이나 전쟁 이후의 세계를 확연하게 바꾸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단언컨대 이 침공의 결과가 전쟁을 문제해결 수단으로 삼은 세력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이 불러올 피해, 왜곡, 갈등을 복구하는 데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대선 쟁점의 하나로 떠올랐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 전쟁이 국제질서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두고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토론되어야 할 것들이 정작 거론되지 않고 있다.

첫째, 전쟁은 문제해결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 문제의 평화적인 해법은 무엇인가에 관한 토론이다. 우리 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면서도 이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과 정부가 단 한번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는 조문이기 때문일 터다.

미국의 요청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는 것과 침략전쟁에 반대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전면전을 일으킨 세력에 맞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19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반대하지 못했고, 미국에 대한 제재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쁜 전쟁임을 알고도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국군을 파견하기까지 했다. 이라크와 전세계가 무장 갈등의 악순환을 지금까지 겪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영국은 ‘정보실패’였다는 변명 섞인 반성을 공식평가서로 내놓았지만,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성한 적도 공식평가서를 내놓은 적도 없다. 당시 일부 정치인들이 용기있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었지만, 그뒤 이라크 침공에 가담한 역사는 여야 주류 정치권 모두에게 잊고 싶은 과거로만 남아 있다. 

이라크 침공 때 미국에 대한 제재를 주장하지 않았으니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도 동참해선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당시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의 편에 서서 싸웠고 지금도 침략에 괴로워하는 우크라이나 민중들의 편에 서 있다. 한국 정부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민중을 도와야 한다. 다만 이때 문제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일관된 태도 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두가지 숙제를 떠안았다. 하나는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돕는 것이다.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되, 우크라이나 분쟁의 원인제공자 중 하나인 나토(NATO)의 편에 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신냉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이 전쟁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정신은 온전히 발휘될 것인가? 이제 한국 정부와 정당들이 답해야 한다. 물론 이 질문은 정치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던져져 있다.

둘째,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의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질문을 던졌는데, 미국과 러시아의 설득으로 핵무기를 포기했던 우크라이나가 침공받는 상황에서 한반도 핵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정치권도, 심지어 언론도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아마 미국 눈치가 보여서이리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대선주자들은 모두 안보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정부도 한반도 안보상황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의 안보 상대인 북한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면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설득으로 핵무기를 포기한 탓에 침공당했다고 진단할 가능성이 높다. 탈냉전 이후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 등 미국의 설득으로 핵무기를 포기한 모든 나라가 침공을 당하거나 내전으로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한의 1년 군사비는 북한의 1년 총 GDP의 1.5배에 이른다.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군사비는 제외한 수치다. 이 정도로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 북한은 스스로를 우크라이나로, 한미동맹을 러시아로 대입하여 이해할 법하다.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북한이 핵을 가지든 안 가지든 핵으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옵션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전력 강화 태세’를 지시하여 국제적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북한에게 더욱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할수록 북한은 힘에 의한 안보와 대량살상무기 획득에 더욱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그게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입장에서는 핵무기를 포기한 약소국에게 확실한 국제적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해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나 주류 정당 어디서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군축협상을 보다 진지하게 시도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확실한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선제적으로 이행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으니 참 이상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2월 27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장외성명에 연명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불안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일방주의적 해석의 일단을 드러낸 섣부른 조치다. 또 한국은 작년 하반기 이후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한 로켓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의 발사실험을 시행해왔고, 며칠 전에는 한국형 사드(THAAD)로 알려진 L-SAM(장거리지대공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이 이중기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북한이 이중기준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토론이 대한민국의 공론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신냉전으로 휘몰아쳐가는 국면에서 우리 외교의 큰 약점이다.

대한민국이 진정성을 가지고 전쟁에 반대하며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이끄는 평화지향국가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신냉전의 맹목적 행동대장이 되어 70여년간 겪어온 대결의 악순환을 이어갈 것인지,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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