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04-03-10   1867

[인터뷰] 유정애 코넬대 박사

“남과 북은 손등과 손바닥, 북한자유법안은 손목 자르려는 시도”

미 의회에서 제정하겠다는 ‘북한자유법안’은 미국의 주장처럼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향상’을 위한 것인가. 유정애 박사는 단호하게 ‘노우’라고 답한다. 북한자유법안의 본질은 탈북자를 양산해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것으로, 핵과 미사일에 이은 대북압박용 카드라는 것. 미 의회가 이 법안의 제정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북한자유법안’의 문제점과 배후를 연구, 발표해 한국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유정애 박사를 9일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유정애 박사는 미국 코넬대 개발사회학과 박사과정으로 현재 이화여대 여성연구원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미국이 북한자유법안을 제정하려는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인권문제는 미국의 대북정책 안에서 핵과 미사일에 이은 대북압박용 카드로 보인다. 지난해 7월 미국의 한 의원은 <워싱턴 포스트>지에 동구권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하게 인권문제를 제기해 탈북자를 양산해 북한정권체제를 몰락시키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이 아니다. 워싱턴에 있는 대북강경론자들도 비슷한 말을 해 왔다. 지난해 8월에는 대북특사로 간 캘리 차관보가 핵, 미사일과 함께 인권문제를 이야기했다. 이번 2차 6자회담에서도 인권문제가 거론되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순수하게 인권만을 문제로 제기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북압박용 카드로 해석된다.”

지난 4일, 미 의회 본회의에서 ‘북한자유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 논의되지 않았다. 원래 그 논의를 할 자리가 아니었다. 북한자유법안 그 자체로 상정되면 행정부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이민국이나 법무부가 그렇다. 그래서 법안을 찢어서 다른 법안과 합치는 방식을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4일에 그 중에 한 갈래가 시도될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시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본다. 부활절 지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다.”

4일에 본 회의에서 북한자유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는 소식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긴급하게 미 의회와 미국NGO들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 시민사회의 이러한 노력이 어떤 기능을 한다고 보는가.

“미 의회나 미국NGO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데 전혀 영향을 안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NGO들에게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한국시민사회에서 대안적 주장을 한다면 같은 양심적 세력이 미국NGO들도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진보적 시민사회의 의견표명이 없다면, 대외적으로는 이른바 우파라고 불리우는 반북단체들의 목소리가 한국 시민사회를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이 북한인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입장표명이다. 북한인권 상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다고 본다. 요즘 흘러나오는 자료들 중 많은 부분이 가공된 것이지만 그중 신뢰할 만한 것도 분명히 있다. 북한인권 문제를 미국이 대북압박용 카드로 쓴다는 점이 나쁘더라도 북한인권 그 자체가 심각하다는 점은 지적해야 한다. 인간이 밥을 안먹고 살 수가 있는가. 그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사회의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는 ‘인권’ 그 자체보다 정치적 텍스트로 읽혀진다. 한편에서는 북한체제를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제제 등 미국의 패권적 행태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북한이 미국에 의해 반세기에 가깝게 압박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경제제제부터 풀려야 한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북한인권문제를 지적해야한다. 한반도 양심세력들이 미국의 문제만 지적하고 북한당국의 비행을 눈감고 말 안하면 북한체제에서 인권유린 당하는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바람직한 방향의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정당성, 당위성, 도덕성 등이 바로 시민사회의 자산 아닌가.”

인권문제를 포함해 한국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은 극단적이고 양면적이다. 무찔러 없애야할 적이기도 하고, 보듬어 안아야 할 동포이기도 하다. 한 개인 속에서도 이런 혼재된 의식이 나타난다. 이런 혼란이 북한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대응을 가로막는 점이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남과 북은 손등과 손바닥 같은 존재라고 본다. 손바닥 없는 손등이 존재하겠나. 비록 지금은 분단상태라 마치 손등과 손바닥이 따로 움직이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통일이 되면 하나의 온전한 손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으면 북에서 일어난 일들이 전혀 관련없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외부세력이 손목을 자르겠다고 덤벼든다고 치자. 손목이 잘리면 손등은 살고 손바닥만 죽겠나.

문제가 많다해도 북한은 이미 한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현존하는 두 나라가 한반도라는 한배를 타고 있는 것인데, 냉정히 말해 한반도는 넓은 지역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배 곯아 죽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음식찌꺼기가 넘쳐난다. 한배를 타고 있는데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냐. 이런 상황은 불합리하다. 배고팠던 경험을 가진 사람은 알 것이다. 굶는다는 것은 대단한 설움이다. 서로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어려울 때는 도와주고, 너 죽고 나 살자고 달려들면 말리면 된다. 또 옳지 않을때는 비판해야 한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 살아갈 존재라는 인식부터 가져야한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왔나. 북한자유법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개발원조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시골에 댐을 짓거나 학교를 만드는 등 지역과 커뮤니티 개발 활동, 전쟁터에서의 난민구호 활동 등을 했다. 지역도 중동, 북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등 30여 국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미국의 교회협회, 세계봉사협의회, 록펠러재단 등에서 일했다. 북한식량안보 프로그램도 오랫동안 진행했다. 북한자유법안은 한반도에게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개발원조 활동을 하며 북한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실제로 본 북한의 인권상황은 어떤가.

“인권문제는 직접 접한 것은 아니다. 문서로 봤다. 그러나 북한은 매우 통제된 사회라는 점은 분명하다. 방문했을 때마다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의 영양상태에 가장 충격을 받았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처럼 오랜 개발원조 활동 덕분에 어디를 가면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가장 먼저 보인다. 식량난이 일어나기 전인데도 아이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식량결핍에서 오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북한자유법안이 제정될 것으로 전망하나.

“(단호한 목소리로) 제정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제정될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대북압박을 넘어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일들이 광범위하게 벌어질 것이다. 북한 내부의 민주화를 지원한다면서, 실제로는 체제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풍선 속에 라디오를 넣어주는 등 탈북을 유도해 북한체제를 압박한다는 것인데 한국에게 영향이 없겠나. 또 북한도 그래라하고 가만이 있겠나. 북한자유법안은 물론 이와 유사한 법안도 안된다. 북한인권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는 것이 맞다.”

초강대국인 미국에게 북한은 비교가 안될 약소국 아닌가. 미국이 법안까지 제정해 북한을 제어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한반도가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다.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경제대국인 일본의 한가운데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 영향을 미치는데 중요한 거점인 것이다. 또한 미국이 자신들은 갖고 있으면서 남은 못 갖게 하는 핵, 생체무기 등 확산방지 측면에서 봐도 쉽게 무시할 나라는 아니다. 북한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들도 저항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 이유들로 미국에게 있어 북한은 무시할 수 없는 국가다. 물론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파키스탄, 중동 등 여러 대응할 지역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예의주시하면서 시시각각 대처하고 있다.”

이 법안의 중요성에 비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한반도를 겨냥하고 주권을 겨냥해 이런 법안을 만들고 있는데, 정부가 그것을 반박하지도 않고… 솔직히 말해 믿을 수가 없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한국정부와 국회, 정치인들은 집단적인 자아도취병에 빠져있는 것 같다.”

미국은 강대하고 오만한 국가 아닌가. 그런 미국에 대항해 북한자유법안제정 시도를 막을 수 있을까. 그것도 정부도 아닌 역량도 정보도 부족한 시민사회의 힘으로 가능하겠나.

“맞다. 미국은 오만한 나라다. 일부 국민들도 오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 오만하지 않은 양심적 미국인들과 대화를 해야한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다. 여러 차원에서 여론이 형성된다. 좋은 양심세력이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양심세력이 연대를 해서, 어떻게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시민사회는 우선 담론을 형성해야한다. 북한인권에 대한 대안담론 형성이 시급하다. 이 법안의 제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빌붙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소위 ‘한국사회 내의 북한인권단체들’은 각성해야 한다. 건강한 우파로 살고 싶다면서 어떻게 그런 활동을 하나.”

이라크전쟁을 비롯해 대북정책 등 미국의 강경한 외교정책은 911테러가 직접적 발단 아닌가. 이제 좀 진정의 기미가 있나.

“미국과 미국인에게 충격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후에 전설로 만들어진 면도 있다. 현 부시 대통령은 911을 계속 배경으로 쓰려고 한다. 네오콘들 등 강경파들도 자신들의 세력을 펼쳐가는 기반으로 쓰러고 하는데, 그러려면 2001년의 911 하나만 가지고는 어렵다. ‘911’이 계속 살아 이어져야 한다. 이라크전쟁도 그 전설을 이어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렇다쳐도 이라크인들 입장으로 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통탄할 노릇인가. 북한과 한반도가 다른 ‘911’로 이들에게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2일,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주최한 토론회를 비롯해 이제부터 한국은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북한자유법안’의 문제점이 논의되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이후 법안제정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과정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

“물론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본다. 비록 미국시민이지만 한반도가 파멸되는 것을 원치않는 한민족의 일원이기도 하다. 나의 몫이 있다고 본다. 북한자유법안 제정반대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운동과정에 초대를 한다면 기꺼이 응하겠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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