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9-04-22   2666

[대북제재 연속기고 ④] 대북 제재가 결국 남북을 만나게 해줄까?

대북 제재가 결국 남북을 만나게 해줄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대북제재 연속기고④] “제재 때문에”에 가로막힌 남북 교류협력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지난 2월, 제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되면서 ‘대북 제재’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졌습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동하기 위해 대북 제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할지에 대해 다양한 필자의 칼럼을 연속 기고합니다 – 기자 말 

 

What makes a land bad? (무엇이 한 국가를 ‘나쁜 나라’로 만드는가?) 전 세계 배낭 여행자들의 친구인 Lonely Planet을 만든 토니 휠러는 이렇게 물었다. ‘Tony Wheeler’s Bad Lands’는 조지 부시가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국가들, 이라크, 이란, 북한을 비롯한 9개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다. 그는 책에서 아홉 개의 국가 중 ‘최고로 이상한 나라’로 북한을 꼽았다. 가는 곳마다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고립이 초현실적일 정도였다는 것이다. 

 

‘Bad Lands’ 발간 이후 10년이 지났다. 다른 문제를 차치하면, 북한은 전 세계에서 내가 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듯이, 가지 못한다고 하니 더 가고 싶은 나쁜 나라였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12일~13일,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에 실무자로 함께할 기회를 얻어 금강산에 다녀오게 되었다. 10년 만에 금강산에서 다시 열린 남북 민간교류 행사였다. 남측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한국종교인평화회의(7대 종단)가 2019년 첫 민간 교류 행사를 함께 준비했다. 

 

▲  북측 출입경사무소에서 받은 통행 허가 도장 ⓒ 새해맞이 연대모임 추진위원회

 

 

넘어가도 괜찮아

 

“손에 든 짐 몇 짝?”이라고 묻는 귀여운 북한의 세관 신고서를 적는 동안 버스는 고성 출입경 사무소에 도착했다. 공항 출국장에 섰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CIQ(세관, 출입심사, 검역)을 거쳐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남측 대표단을 태운 버스는 남방한계선, 군사분계선을 차례차례 넘었다. 북방한계선을 넘자마자 휘날리는 작은 인공기가 눈에 들어왔고, 무표정한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를 넘어가면 뭔가 큰일이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모든 풍경이 평온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금강산 호텔에 들어서자 곳곳의 명랑하고 예쁜 그래픽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색감이며 글씨체가 레트로의 천국이었다. 여기가 을지로인가, 북한인가 싶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남겼다. 나처럼 북한을 글로 배우고 자란 친구들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전 찬 바람이 선명하던 2월, 그때만 해도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는 그 길을 곧 많은 사람들이 오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새해맞이 연대모임에 참여했던 남측 대표단이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7대 종단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간에 경제협력이 시작된다면 가장 먼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금강산 관광일 것”이라며 신계사 템플스테이 등 금강산 관광의 길을 여는 남북 종교계 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다.

 

▲  2019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새해맞이 연대모임 ⓒ 새해맞이 연대모임 추진위원회

 

 

“제재 때문에”

 

당시 남측 참가자들은 큰 기대를 안고 분야별 모임에 참석했다. 생태환경, 평화군축, 학술, 언론, 문화예술, 법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남북 교류 제안을 내놓았다. 모두가 전방위적으로 남북 민간교류가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북측 참가자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많은 것이 풀릴 거라 생각했고, 남측 민간 단체들의 수많은 교류 제안이 팩스로 오고 있지만, 대북 제재로 바늘 하나, 타미플루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남북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서로의 온도 차를 여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새해맞이 연대모임 행사를 공식 취재하기 위해 동행한 기자들은 노트북과 방송용 ENG 카메라 등 취재 장비를 가져가지 못했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에 관한 사항이라고만 밝혔을 뿐, 결정 과정이나 구체적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과 협의가 완료되지 않아 취재 장비 반출이 어렵게 됐다는 말뿐이었다. 미국산 부품이나 기술이 포함된 제품 반출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핸드폰은 물론 노트북도 없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취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고성 출입경 사무소에서는 미군 군복을 입은 유엔사 군인들이 남측 참가자들이 손에 든 짐을 하나하나 살펴보았고, 참가자들의 DSLR 카메라 중 어떤 것들은 북측으로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제재 때문에”라는 말뿐, 어떤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  2019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새해맞이 연대모임 ⓒ 새해맞이 연대모임 추진위원회

 

 

유엔 결의안이 담고 있는 건 경제 제재만이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한편 많은 것을 바꾸지 못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등을 합의한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은 유예되었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들은 제재뿐만 아니라 ‘평화적, 외교적, 정치적 조치’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을 촉구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포괄적 해결책’을 주문한 것이 결의안의 진짜 의미다. 제재가 북한 주민의 삶을 악화시키거나 인도적 지원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대북 제재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러한 결의안의 취지를 해치고 있다.

 

제재와 압박은 한반도 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의 제재와 압박에도 핵 능력을 키워왔으며, 제재를 적대 정책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반도의 핵 갈등은 ‘불량 국가’ 북한의 일탈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과 군비 경쟁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남한은 북한의 국내총생산(GDP)를 상회하는 군사비를 지출해왔으며, 이는 주한미군의 군사비는 제외한 수치다. 북한이 핵·미사일과 같은 비대칭 전력에 집착하게 된 것은 도저히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반도 비핵화는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북미 관계 정상화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답답한 정책으로는 절대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와 완전한 비핵화’에 포괄적으로 합의한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미는 대화를 조속히 재개하고, 비핵화 논의와 더불어 북미 수교나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간의 인도적 문제 해결, 교류협력 발전을 어렵게 하는 대북 제재는 조속히 완화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단계적, 동시적 이행을 통해 북미 간 신뢰가 쌓이면 더 큰 도약도 가능할 것이다. 

 

▲  해금강 해돋이 풍경 ⓒ 참여연대

 

 

지난 겨울 ‘나쁜 나라’로의 짧은 여행은 한반도 평화가 정상회담으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서로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고 섞여야 한다. 군사 분야, 경제 분야, 민간 교류 분야의 남북 협력을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초다. ‘제재 때문에 안 된다’는 관성적인 태도보다 ‘제재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절실한 시점이다. 이미 남북 정상이 합의했고, 과거에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으며, 시민들의 공감대도 높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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