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2-03   665

[기고] 제 갈 길 가는 미군과 ‘뒷북’치는 한국

미국은 현재 이라크에 주둔중인 미군 13만1천6백명의 순환을 내년 1월부터 시작하여 주 이라크 미군 수를 11만여명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또한 이러한 미군의 전반적인 감축과 함께 이라크 주둔 현역병이 대폭 방위병과 예비군으로 대치되어 실제로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미군 현역병의 수는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미군 순환 계획에 비추어 볼 때 주한미군 일부를 이라크로 재배치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근거가 취약할 뿐더러 한국군을 파병할 명분도 빛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11월 26일 예비군의 추가동원령과 추가대기령에 서명, 지난 11월 6일 발표된 주 이라크 미군의 순환계획의 본격적인 이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이라크 자유 작전 2’에 동원된 예비군과 주방위군의 총 수는 5만6천5백4명, 대기령을 받은 수는 6만6천5백31명이 된다. 이 순환계획이 완료되는 내년 5월이면 이라크에서 예비군과 주방위군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재의 20%에서 40%까지 느는 반면, 이라크에 잔류하는 현역병 수는 6만여명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이 같은 미군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는 이유는 현재 이라크 주둔군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미 육군의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육군의 부담이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육군은 아프가니스탄 등 미군이 벌여놓은 전쟁의 뒷수습에 계속 투입되어 군인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미 육군은 현재 이라크와 쿠웨이트,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군인들의 퇴역을 금지하고 있다. 이 ‘퇴역금지’ 조치는 이미 퇴역을 예정하고 있던 군인들에도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에서의 임무가 종료된 후에도 3개월간 유효할 정도이다.

미국은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우방국들에 추가파병을 요청했으나 파병을 결정했던 터키가 결정을 번복하는 등 난관을 겪자 이 같은 고육지책을 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순환계획의 뒤에는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이라크 전쟁을 혼자서라도 끌고 나가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이 순환계획에 따르면 현재 바그다드에 배치되어 있는 제1기갑사단은 제1기병사단으로 교체되며, 이라크 북부 모술지역에 배치된 제101공중강습사단은 독일에서 이전되는 제1보병사단으로, 이라크 서부에 배치된 제82공수사단은 제1해병사단 (제25보병사단의 1개 여단과 함께)으로 교체된다. 현재 제4보병사단이 배치된 바그다드 북부 ‘수니 삼각지대’는 제2 보병사단 제3여단, 일명 ‘스트라이커 여단’이 담당하게 된다. 워싱톤 주에 본부를 둔 이 스트라이커 여단은 지난 여름 한국에서 훈련을 한 바 있으며 이라크 배치를 앞두고 현재 쿠웨이트에서 훈련중이다. 이 여단은 최신 장갑차와 첨단 통신장비 등을 갖춘 미군의 최첨단 정예군으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군사혁신’의 보병판이다. 미군은 현재 해외에 배치한 보병부대를 점진적으로 스트라이커 여단으로 교체할 계획으로 있는데, 이라크의 저항이 가장 거센 지역에 배치되어 그 전투력을 검증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현재 남부지역을 맡고 있는 폴란드 다국적군과 영국군은 계속 이 지역에 주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순환계획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군의 파병예상지로 지목되었던 모술지역에 제1보병사단이 배치된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애초에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제 101공중강습사단을 교체하기를 원했으나 이 구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독일 내 여러 기지에 분산주둔하고 있는 제1보병사단을 이라크로 파병하기로 한 것이다. 최정예부대의 하나인 제1사단은 스트라이커 여단을 휘하에 추가하여 수니 삼각지대와 모술 등 바그다드 북부 지역의 치안을 담당한다. 또 11월 6일에 발표됐던 순환계획에는 없던 해병 3개 대대 (5천여명 추산)가 26일에 추가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은 우방국의 추가지원이 없다는 전제하에 이런 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계획으로 보아도 한국군이 추가로 파병되어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냉정하게 일방주의 길에 들어서 저만큼 가고 있는데 한국은 낄 자리도 없는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 한다고 온 나라가 소란하다. 미국은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한국은 ‘뒷북’을 치고 있는 꼴이다. 또 이 계획의 어디에도 주한미군을 이라크에 배치한다는 대목은 없다.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제2사단을 투입한다는 계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미국의 양대전쟁전략에 비추어 봐도 주한미군을 이라크에 파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서재정 (코넬대학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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