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8-07-04   2186

[2008 평화학교 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쟁, 왜 일어나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7월 2일부터 15일까지 매일 저녁 7시 느티나무홀에서 “지구 평화를 지켜라-국제분쟁의 이해와 한국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평화학교를 엽니다. 아래 글은 평화학교에 참여하는 분들이 강연을 듣고 직접 후기를  올린 것으로 이를 통해 더 많은 분들과 평화학교에서 진행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주최하는 평화학교가 7월 2일 입학식에 이어 오늘(3일)부터 본격적으로 주제강연이 진행된다. 그 첫 번째로 십수년 간 국제분쟁 지역들을 돌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로부터 듣는 2강 <국제분쟁 이해, 근원과 양상> 수업이 시작되었다.

 “냉전 이후 모두가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계는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먼저 20세기의 전쟁을 이미지로 느껴봅시다.” 김재명 기자는 ‘우리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의 주제로 짤막한 영상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은 전쟁을 여기서 영상으로 보지만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라고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지구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순간보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왜 모두가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전쟁이 인류사에서 반복되는 ‘데자뷰’가 되는 것일까? 포스트 냉전시대에도 왜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가?



정치적 행위인 전쟁, 그리고 합법성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폭력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행위다. 정치적 동기를 지닌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속성이 그 양태를 결정한다. 이런 고전적인 정의를 넘어서 현재 사회과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1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적대적인 행위”를 전쟁으로 규정한다. 케네스 왈츠에 따르면 이러한 전쟁의 원인은 국제 정치 질서의 세력 불균형에 있다. 힘에 대한 정치적 투쟁이 종식되기 어렵기 때문에 완전한 평화가 존재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쟁이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상으로 전쟁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기준이 있다. 외부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방어 전쟁, 그리고 국제법을 위반한 국가를 응징하는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그 합법성을 인정받는다. 김재명 기자는 이와 같은 기준을 간명하게 정리하면서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죠. 단지 대량살상무기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서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걱정과 큰 차이가 없는, 국제법상의 명백한 위반입니다.”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전쟁은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승자에 의해 재해석되곤 한다. 이에 따라 국제법상으로는 합법적인 약소국의 민족해방전쟁이 강대국에 의해서는 ‘테러리스트’로 매도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무력투쟁이 해방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김재명 기자는 당신이 지은 책의 제목을 인용하며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평화를 기원하는 반어적 표현이다, 민중 계층이 포함되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적인 현실에서 평화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등 자신의 생각들을 조심스레 밝혔다.


이에 대해 김재명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로마인과 미국인들의 평화이지 전세계적인 평화가 아닙니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팍스 아메리카나는 평화가 아니라 비극입니다. 그런 강대국의 평화를 저는 기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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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쟁은 현재진행형, 평화를 고민할 때


포스트 냉전시대에도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주주의의 수호를 핑계로, 자유를 위한다는 핑계로 자행되는 전쟁은 약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다양한 수사들이 있지만 전쟁의 첫 희생자는 언제나 진실입니다.” 이와 같은 김재명 기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에서 승자를 따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전쟁과 같은 극단의 폭력은 누구에게나 상처이고 아픔으로 남기 때문이다. 케네스 왈츠는 “전쟁에서 누가 이겼느냐고 묻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지진에서 누가 이겼는지 묻는 것과 같다”고 썼다.


1990년대 이후 전쟁은 국제전보다 내전의 형태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냉전시기 초강대국을 위한 대리전은 오늘날 전쟁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실패한 국가’, 즉 더 이상 내부의 폭력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국가에서 장기화된 내전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소말리아와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90년대 이후 변화된 전쟁 형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이후 전쟁에서는 인종청소, 대량학살과 같은 비극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폭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30만이 넘는 소년병이 강대국의 ‘죽음의 상인’이 수출하는 소형무기를 가지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반복되는 데자뷰로서의 전쟁은 21세기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반도 역시 평화와 전쟁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분단 상태의 한반도는 항상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평화와 전쟁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통찰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어떻게 평화를 디자인 할 것인지, 한반도 구성원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며 또한 이는 평화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의 소중한 몫이기도 하다.
 


임우섭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자원활동가, 평화학교 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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