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5-10-17   1470

<안국동窓> 전시작전권 환수를 스스로 거부하는 자들

지난 국군의 날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언급한 이래,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온전한 군사주권 차원에서 전시작전권 환수는 당연한 것이며,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편에서는 한국군 스스로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반도 안보상황에서는 여전히 ‘이르고 성급한’ 주장이며,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자주군대가 아니냐라는 식으로 딴지를 걸고 있다. 놀라운 것은 후자의 논리에서 어떻게 하면 작전통제권을 빨리 되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전시작전권은 지난 1950년 전쟁 당시에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된 이래, 지금은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금의 한미연합지휘체계상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력 대부분이 한국군이며, 주한미군 전력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일례로 주한 미 공군은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미국의 한 장성이 말한 것처럼 “전세계에서 가장 보기 드문 주권양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전시작전권 환수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한국 군당국이나 보수정치권, 언론 등에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북한군에 비해 전력이 열세이며,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스스로가 전시작전권 환수를 거부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될 법하다.

이번 전시작전권 환수 주장에 우려하는(실제로 반대하는) 논리도 다르지 않다.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국민적 판단과는 달리 이들은 북한에 비해 남한의 전력이 여전히 열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자주국방을 이루겠다고 해왔으면서도 여전히 대북정보 및 C4I 등을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나아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전시작전권이 없이 자주군대가 아니라는 국방인식은 ‘지나치게 자학적’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남북관계 특위는 “전시작전권 환수는 한미 군사동맹의 기본축을 흔들고 한미동맹의 균열마저 가져올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NATO를 예로 들며,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 총사령관이 행사하고 있지만 NATO 국가들이 군사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확보를 통해 지금의 온전치 못한 군사주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을 ‘자학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의 군사주권 현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박근혜 대표의 말을 빌자면, 이들이 오히려 스스로의 무감각과 몰이해를 자학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균형을 이루겠다고 엄청난 국방예산을 쏟아 부어왔고, 구체적인 무기도입 비용만도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높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셀리그 해리슨의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저자는 ’남한은 결코 자주국방을 이루고자 하지 않는 것 같다’는 한 연구원의 말을 인용하면서, 남한 군부가 자주국방의 목표 시점을 계속 연장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미군 감축을 막기 위해 1975년까지 자주국방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한 뒤, 1980년대에는 몇 년 안에 북한과 군사적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을 했으며, 1989년 남함의 『국방백서』는 1996년까지 남한 단독으로 국토를 방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99년 국방개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남한이 2010년까지 북한과 군사적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수십년 동안 대북 전력 우위를 달성할 의지가 없었거나, 무능력했다거나, 혹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국가방위를 위해 남북이 동원하는 전력의 차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지금도 여전히 대북 전력이 열세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북한에 대한 우위전력을 갖기를 포기한 것이거나, 아니면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을 위한 여론 호도책인 것이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한 국가의 전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열세이든, 우세이든 간에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스스로 전시작전권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유사시를 대비해 국가간 군사동맹을 유지하거나 다자간 안보기구를 통해 분쟁을 예방하고 있다. 한 국가와 경쟁과 대결상태에 있다고 전시작전권을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거나 중, 일과 같은 수준의 전력을 비교하면서 작전통제권 이양이 섣부른 요구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아예 전시작전권을 받지 말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더 나아가 다국적 군사기구인 NATO에서의 미군총사령관의 작전통제권 행사를 한미연합사와 같은 쌍무간의 기형적인 군구조에서의 전시작전권 행사와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적절치 못한 비교일 뿐만 아니라, 엉뚱하게 말꼬리를 잡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동북아 안보환경과 정세변화도 조속히 전시작전권을 넘겨받아야 할 중요한 이유이지, 작전통제권 환수를 미룰 이유가 되지 못한다. 심각한 주권훼손의 문제로 지적되던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에 따른 주한미군의 감축과 재배치가 진행되고 있고, 주한미군으로부터 판문점 JSA공동경비 등 10대 임무를 2006년까지 한국군이 이양받기로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한반도 방위에만 한정되지 않도록 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과 한국군으로의 한반도 방위 전환 등이 필연적으로 한미연합지휘체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03년 한미 양국은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와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을 통해 한미연합지휘관계 연구를 의제화 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이제 온전한 군사주권 차원에서 그리고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속히 전시작전권은 환수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작전통제권은 개폐가 불가피한 한미연합사를 넘어 유엔사 차원에서 환수받아야 한다.

다가올 10월 21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비롯한 한미연합지휘체계의 변화가 보다 전면적으로 예고될 것이다. 위험천만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동맹의 지역동맹으로의 전환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한 세대 이상을 규정할 미래 한미동맹 재편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발목을 잡는 딴짓거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박정은 (평화군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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