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5-11-18   878

<안국동窓> 소신 바꾸기도 폼나게 하는 정치인, 유시민 의원

유시민 의원이 이라크 전쟁이 “석유 때문에 일으킨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라크 파병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것은 “비겁했고 또 잘못된 결정이었다”며 이번 2차 연장안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지겠노라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의원은 14일 오후 서울대 정치학과 모의국회팀에서 주최한 특강에서 “궂은 일은 대통령이 하고 폼은 국회의원이 잡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욕먹을 때는 같이 먹고 비가 올 때는 같이 맞아야 되지 않겠나”라며 이같이 주장했다는 것이다.

우선, 유시민 의원은 과연 입장을 바꾸는 말도 참 폼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시민 의원 같은 재담꾼이 아니라면 이 당혹스럽고 창피한 얘기를 그렇게 당당하고 멋지게 할 수 없었을 터이다.

한편, 유시민 의원이 그런 방식으로 파병 찬성 입장을 피력하는 바람에, 파병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 혹은 의원들은 명분이나 찾고, 영웅입네 하며, 심지어 대통령의 말 못할 고민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비겁하고 생각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유시민 의원은 “대통령도 내키지 않지만 6자회담이나 한미관계 등등 국가적으로 필요해서 파병안을 냈다”며 ”내가 욕 안먹기 위해 반대하고 넘어간 것”으로 “찜찜함이 일년 내내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유시민 의원이 당시 ‘욕을 안먹기 위해’ 반대하고 넘어갔던 것이라면 참 유감이다. 유시민 의원처럼 논리적이고 민주적 신념이 나름대로 분명하고 명료한 사람이 그랬다니 더더욱 그렇다. 6자회담이나 한미관계 등등 ‘국가적’인 문제와 파병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고 어떤 점에는 없는지, 불가피하게 파병한다면 어떤 조건과 수준으로 할 것인지 정연하게 따지지 않았다니? 그리고 파병한 후에도 언제 군을 뺄 것이며, 이라크에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를 검토하여 국회에서 논의에 부칠 생각을 왜 안했는지? 더구나 그것에 대해서 잘했든 못했든 보고서 한 장도 제대로 안 내놓는 국방부, 외교부, NSC 등의 태도에 대한 비판과 분석도 없이 ‘국가적인 일’을 고민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보조를 함께 취하지 못했다는 ‘찜찜함’과 ‘반성’ 속에 일년을 보냈다니, 이 모든 것이 한마디로 ‘의외’다.

며칠 전 필자는 국방부에서 자이툰 철군 결의안 심의를 하는 것을 방청한 적이 있었다. 국방부장관이 “국가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한 일이니 찬반토론은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발언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제 새롭게 의리를 따져 국가와 대통령을 대변하고자하는 유시민 國會議圓 앞에서 나는 국방부장관에게서 보다 더 아득해지고 답답해옴을 느낀다.

유시민 의원은 지난 2004년 5월 13일 서프러이즈와의 채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 = 다음 질문 부탁해요~

서 = 이라크 파병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파병이 계속 연기되고 있는 가운데 재검토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파병문제에 대한 묘안은 없을까요???

유 = 묘안요? 생각이 안날 때는요, 벼개 밑에다 묻어 놓고, 잠자는 게 최고에요.

서 = 저의 단골수법인데요

유 = 묘안이 생각날 때까지. 새로운 묘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집행을 못하는 거지,

서 = 흠… 맞습니다 마꼬요~~

유 = 백악관 시계도 돌아간다! 연말까지만 버티자.

서 = 부시의 낙선은 틀림엄따~~이 문제에 대해 더 하실 말씀은.

유 = 지금 같아선 보낼래도 보낼 수가 없지 않아요?

서 = 넵

유 = 재검토하기 싫어도 안할 도리가 있나요? 전 그렇게 봅니다.

서 = 맞습니다….

유시민 의원이 지금 같아서는 보낼래야 보낼 수 없다고 했던 그 5월 13일에서 한 달 뒤엔 이라크에서 김선일이 죽었다. 그렇다면 더욱 더 보낼래야 보낼 수 없는 조건이 된 것일 터이다.

내 생각에는 이 활기찬 채팅 인터뷰를 할 때 유시민 의원이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찜찜함을 느꼈다면 훨씬 신중하게 반응했을 터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찜찜함을 느끼고 말고가 아니다.

정작 이날 인터뷰에서 유시민 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진지하게 밝히지 않았고 핵심을 비껴갔다는 점이 더 고약하다. 그는 “00 안할래야 안할 도리가 없다”라는 ‘주어’가 없는 정세인식 – 보기에 따라서는 경박한 상황론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요컨대 진정성 대신 능란한 수사로 응답했던 것이다.

며칠 뒤 17대국회 개원 직후 파병철회 문제를 논의하는 열린우리당 의원 총회가 열렸을 때도 유시민 의원은 그런 식이었다. 유시민 의원은 파병철회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주장하지 않고, 파병철회 결의안이 법률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것을 ‘추진 할래야 할수도 없다’며, 예의 그 논법을 사용하여 테크니컬한 궤변을 펼쳤다. 열심히 반대하는 사람 기죽이지 말고 그냥 가만이나 있으시지….

당시 필자는 파병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원내대표실 앞에서 유 의원을 만나서 파병철회를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때 유의원은 특유의 시원시원시원하고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냉소적인 말투로 “내가 노대통령을 도와야지 어떻게 파병반대를 돕겠냐고” 말했었다. 나는 당시 농반 진반으로 들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말을 할 때 유시민 의원은 “찜찜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4달이 지나 2004년 말, 파병연장 문제를 다시 얘기하게 되었을 때, 유시민 의원은 파병철회 연장 여부 논의에서 별다른 주의주장을 펼치지 않았고 조용히 본회의에 출석해 조용히 반대표를 던지는 것 이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비겁’했던 거다. 그러나 나는 그가 왜 비겁하다고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을 배신했기 때문에? 그러나 내게는 그가 서프라이즈에서의 쾌도난마나 원내총회에서의 달변에서 보인 비겁함과는 다른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도대체 ‘비겁함’이란 무엇인가? 몇 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따져보자.

유시민 의원이 진심으로 파병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유의원 자신의 그런 행태가 본인에게는 좀 마음에 안 들고 구질구질해 보일지언정 그 자체로는 비겁하다고 말해서는 안될 겸허하고 진솔한 최소한의 행동이었다. 의원이 조용히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필요한 직무수행의 한 방편이다. 더구나 말마따나 파병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이나 당론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신과 유권자를 의식하여 조용히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기본은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폼 안나면 어떤가? 유권자를 의식하거나 역사의 평가를 의식하는게 비겁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만약 유시민 의원이 파병이 필요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유 의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와 논리를 총동원해서 자신을 믿었던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어설픈 참회록으로가 아니라, 왜 연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말해야 한다. 대통령 팔지 말고, 당 팔지 말고, 같이 비 맞느니 마느니 하는 의리 팔지 말고 자신의 논리와 인식으로 승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 의원이 소신도 아니지만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정말로 비겁하게 행동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진솔해지는 길이다. 짐짓 ‘의리’를 지키는 것처럼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 비겁한 사람이라고 뒤통수치지 말고, 조용히 아무말 하지 않고 소신을 뒤집는 거다. 변명의 여지없이 묵묵히 대통령과 같은 운명을 가면 된다. 자신의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수사학은 그 자신도 타락시키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망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소신을 바꾸면서 순교자까지 되려는 사람은 싫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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