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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6.02.11
  • 540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헌법의 평화국가의 원리와 충돌한다



열(熱)받는 일들

지난 한주일 동안 언론들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 관한 정부 기밀 유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전통적인 신문매체들의 상당수는 NSC와 국정상황실 등의 기밀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것에 매우 열(熱)을 받아 국회의원의 자질과 정부의 무능을 연일 질타하면서. 좌파정권 내의 권력다툼, 얼치기 자주파와 골수 자주파의 대립양상이라고 보고 국가의 안위에 큰 구멍이 생긴 듯이 유난을 떨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큰 문제는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미 2003년도에 외교부, 국방부 관료들이 독단적으로 미국 측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를 용인을 하였으며, 그러고도 관련 협상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 온 시민단체는 물론 국민들에게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헌법 74조를 언급할 것도 없이 대통령은 군정(양병)권과 군령(용병)권의 책임자이다. 그러나 양병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인 전략적 유연성문제를 주권자를 대리하여 통수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외교부가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미국 측과 각서를 교환했으며, 현재 그 보고 시점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지만, 한동안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외교각서 교환의 핵심역할을 했던 위모씨는 전략적 유연성 업무를 총괄하는 주미공사(1급)로 옮겨 갔고, 외교안보정책을 총괄 조정했던 이종석 전 사무차장은 통일부장관에 내정되어 있다. 국민들과 인터넷 매체들이 열(熱)을 받는 것도 당연지사다.

그러나 내가 정작 열(熱)받는 일은 헌법의 평화국가 원리가 이참에 또 무참히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사여구

유연성이라는 부드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강경하고 공세적이다. 즉 종래의 해외주둔 미군이 해당 주둔지역에 대한 외부의 침략에 대하여 수동적이고 자위적인 방위나 봉쇄를 그 주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었던데 비하여, 유연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 해당 주둔지역이 아닌 곳에도 적극적이거나 공격적인 목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것으로 군의 역할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한미군이 한국에 대한 방위를 위한 목적으로만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중동에도 파견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에 대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군대로 그 성격을 탈바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방배치군 형태의 군대를 비록 후방에 두더라도 신속기동군 형태의 군대로 재배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전략적 유연성은 주변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미국 군사전략상의 일대 대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탓에 군사전략의 일대 변화 다시 말해 총론의 근본적 변화에 대하여서는 아무리 우방이라 할지라도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그간 한국 정부와 미국은 총론에 대한 명확한 동의없이 각론에서부터 이를 진행하여 온 것으로 이번 전략적 유연성 합의 파문으로 실체가 들어나고 있다.

연합토지관리계획, 우리가 숙원사업이라고 여겨왔던 용산미군기지의 이전, 평택으로의 이 미국의 재배치, 등 일련의 사태는 이른바 실용주의적 자주파의 성과물이 아니라 사실은 주한미군이 신속기동군으로 그 역할과 활동범위가 넓어지는 것이었고, 총론적인 군사전략 변화를 위한 각개약진이었던 셈인 것이다.

평화국가의 원리와 충돌하는 전략적 유연성

2006년 2월, 한미동맹의 이러한 공세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중요한 헌법 원리의 하나로 평화국가의 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현행 헌법은 전문에서 ‘세계평화’에 공헌할 것을 다짐하고. 제5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2항에서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규정에 따르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문언자체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평화국가원리의 내용은 외적의 침략이 있는 경우에 국토방위를 위한 자위권을 인정할 수 있을 뿐, 외국에 대하여 군대를 파병하거나 이를 위한 신속기동군의 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위권의 행사도 유엔헌장에 따르면 안보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까지의 잠정적 조치(51조)일뿐이며, 어떠한 분쟁도 교섭, 중재 조정 등 평화적 수단에 의존할 것(제33)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법의 대원칙이다.

나아가 평화국가의 원리와 같은 헌법의 원리는 그저 보기 좋고 듣기 좋고 치장하기 좋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국내관계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국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하며,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기관이 준수해야할 최고의 가치 규범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 행정에 관한 것이든 외교에 관한 것이든 평화국가의 원리에 반하지 않는 정책집행과 정책결정을 하여야 한다. 국회도 평화국가의 원리에 반하는 입법을 하여서도 안되며 법률뿐만 아니라 헌법의 다른 조항들조차도 헌법원리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국회도 헌법수호기관의 하나로서 평화국가의 원리에 반하는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주권자의 제청이 있으면 평화국가원리에 반하는 법률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하며, 외교행위라 하더라도 통치행위라고 비켜나지 말고 과감히 위헌이라고 인용결정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정부가 평화국가의 원리를 무시하고 외교적 역학관계만을 고려하여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것은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무지와 무시와 안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헌법원리의 중대한 변화가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몰래 진행된 것은 평화국가원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사실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리가 국민주권주의에 따라 민주주의국가임을 우리 헌법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반민주적인 선거법이나 반민주적인 정부정책이 시정되어야 하듯이, 평화국가의 원리가 우리 헌법의 중요한 기둥 중의 하나라면 국가기관의 외교적 행위를 비롯한 모든 국가정책과 행위는 시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이번 기회에 헌법에서 아예 평화주의라는 깃발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의 원조격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정부의 외교행위는 평화국가의 원리에만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수비범위가 확대되면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자체와도 충돌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이번 논란에서도 밝혀졌듯이 정부, 국회 내에서도 일고 있는 실정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방위의 범위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또는 미합중국 영토로 한정하지 않고 ‘태평양지역’에서의 무력공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을 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이하 ‘태평양조항’). 따라서 태평양 지역을 넘어선 중동 또는 어느 지역에 신속기동군 출병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개념에 합의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어긋나게 된다.

그렇다면 ‘법대로’하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여 ‘태평양조항’을 ‘전지구조항’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최고규범인 헌법에 적합한가 하는 점이다. 아니 ‘태평양조항’ 그 자체도 평화국가의 원리에 적합한 것인지 숙려(deliberation)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할 것이다.

우리가 언터처블한(untouchable) 영역으로 생각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사실은 평화국가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생각을 추슬러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우선, 앞서 언급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태평양 조항은’ 국군의 사명을 국토방위로 한정한 현행 헌법 제5조2항의 국토방위 임무에 걸맞지 않는다. ‘태평양 조항’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의 원조격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집단적 방위를 위한 공동의 행동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 헌법에 집단적 방위에 관한 실체적 근거규정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혹자는 헌법 제60조에 안조보장에 관한 조약이라는 문구를 들이댄다. 하지만, 이것은 권리의 실체를 선언한 실체적 규정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절차적 규정이다. 1980년 헌법부터 등장한 국군의 사명 중의 하나인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문구에서 찾더라도 문제가 간단치 않다. 우리 헌법이 민주주의국가원리 못지않게 중요한 원리로 평화국가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가안보 개념은 이미 몇몇 헌법교과서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국토방위와 동일한 개념으로 제한 또는 축소 해석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에 열(熱)심인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우리가 입헌주의를 통한 국가와 사회의 정상화를 꾀한다면 ‘법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특히 헌법의 근간이 되는 헌법원리를 국가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의 균형자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침략과 전쟁의 참화로 얼룩진 동북아에서 진정한 균형자로 나서기 위해서는 평화국가라는 우리 헌법의 비젼을 이제 골방에서 안방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더군다나 전략적 유연성과 같은 공세적인 개념이 동맹관계라는 이름으로 강요된다면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중동의 국가들이나 중국 등 미국의 현실적 잠재적 경쟁자와의 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경험하였듯이 전쟁은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며, 평화적 생존권이 위협받는 곳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지 않았지 않든가.

전략적 유연성 논란을 계기로 추상화된 국익을 위해서 인권을 희생시키는 국가론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장기전략에 시선을 두고 인권과 군축을 위한 유연한 프로세스에 발을 내딛는 국가비젼, ‘평화국가라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 이에 걸맞는 외교정책의 재조정과 시정이 절실하고도 시급하다.

이경주 (인하대 교수,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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