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6-03-02   714

<안국동窓> 한나라당과 성범죄

서울 구치소에서 교도관의 성폭행에 시달리던 한 여자 재소자가 자살을 시도해서 뇌사상태에 빠졌다. 아동 성폭행의 피해자들이 수사로 말미암은 2차 피해의 문제에 견디다 못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참혹하게도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조차 한번 실시한 적이 없는 한나라당은 ‘전자팔찌’를 대책으로 내놓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잘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여러 부정적 별명들을 가지고 있다. 분단상황을 악용한 반민주적 행태 때문에 ‘색깔당’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아예 차 채로 불법정치자금을 챙긴 정경유착의 행태 때문에 ‘차떼기당’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자신의 정략적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극단적 대치를 강행하는 태도 때문에 ‘떼쓰기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상태를 종합해서 ‘딴나라당’이라는 최악의 별명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전자팔찌’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추행당’이라는 또 하나의 수치스런 별명이 보태질 모양이다. 한나라당의 3선 의원이자 신임 사무총장이었던 최연희 의원이 2006년 2월 24일 동아일보 기자 7명과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한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여기자가 항의하자 그는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 황당한 ‘해명’이 더욱 큰 분노를 일으켰다.

이 술자리는 박근혜 대표 쪽에서 동아일보 쪽에 신임 당직자들과 상견례를 하자고 요청해서 마련되었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대표, 이규택 최고위원, 최연희 사무총장, 이계진 대변인 등 7명이 참석했고, 동아일보에서는 임채청 편집국장, 이진녕 정치부장, 한나라당 출입기자 등 7명이 참석했다. 이 때문에 이번의 사건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권언유착’이 빚은 성범죄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잘못된 술자리가 잘못된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다. 이런 ‘권언유착’의 문제도 이제는 청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최연희 의원은 2월 26일에 한나라당의 당직을 그만 두었고, 2월 27일에는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여론이 너무나 나빠지자 한나라당에서 그를 사실상 ‘출당’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가 저지른 짓은 명백한 ‘범죄’이고, 이에 대해 그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한나라당의 ‘갱생’을 위한 대대적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최연희 의원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한나라당에서는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2004년 봄에 발표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들 중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행태로 선정된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의 다수가 한나라당 소속이었으며, 특히 김무성, 이경재, 정두언 등 세 사람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김무성 의원은 2002년 7월 12일 장상 총리서리 지명과 관련해서 “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게 될텐데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명백히 ‘여성 모독’에 해당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경재 의원과 정두언 의원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

정두언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던 2003년 10월 28일에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경향신문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는 성추행을 저질렀다. 다음 날 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기운에 실수한 것 같다.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경향신문사를 찾아가 사과했고, 이명박 시장도 서울시청 출입기자단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2004년 초에 총선시민연대가 이 사건으로 그를 낙천 대상자에 포함시키자 그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급기야 2004년 2월 12일에 전국언론노조가 ‘양심불량 성추행범 정두언의 사죄와 정계 퇴출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다음이 그 주요내용이다.

정두언 씨는 그러나 최근 총선시민연대가 당시의 성희롱 사실을 들어 자신을 낙천 대상자에 포함시키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자도 이해한 사안이다” 등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며 성추행 피해자인 여기자의 가슴에 또다시 못을 박았다. 또 경향신문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사건 당시 보도과장이자 현 총무과장인 서울시 최모 과장이 “문제의 사건을 없던 일로 해달라”며 피해 여기자를 최근까지 여러 차례 괴롭혀왔다고 한다.

한나라당에 요구한다. 정두언 씨는 여기자 성추행 당시 한나라당 소속 정무부시장이었고 지금도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는 총선출마 희망자다. 당연히 한 당원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그에 걸맞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만일 정두언 씨가 한나라당 공천으로 총선무대에 서게 된다면 언론노조는 한나라당을 ‘성추행범 옹호정당’으로 규정,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도록 해줄 것이다.

그러나 언론노조의 이런 경고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사실 한나라당은 이 성명이 발표되기 전부터 이미 ‘성추행범 옹호정당’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3년 12월 23일 한나라당의 이경재 의원은 정개특위의 일방적 의사진행을 막기 위해 위원장석에 앉아 있던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을 가리켜 ‘다른 여자가 우리 집 안방에 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 몰상식한 성폭력적 발언은 즉각 커다란 파문을 몰고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도 역시 몰상식한 것이었다.

2004년 7월 21일 이경재 의원의 발언에 대해 여성부는 ‘남녀차별행위(성희롱)’라는 내용의 결정문을 이경재 의원에게 보냈다. 다음 날인 7월 22일 한나라당의 여성의원들은 ‘박근혜 패러디’에 대해 “청와대에서 의도적으로 야당대표에 대한 성적 비하성 표현을 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이경재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영선 최고위원은 “자기 집에 쳐들어 온 사람을 떠밀어 밀쳐내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정도의 사건”이라고 답했다. ‘성희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답변은 여성모독의 문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이중잣대의 산물이었다.

이런 반여성적 이중잣대의 비호 아래 한나라당 의원들의 여성모독 행태는 계속되었다. 2005년 9월 22일, 주성영 의원은 국감기간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10여명과 함께 피감기관인 대구지검 간부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벌였다. 이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는데, 여주인과 여종업원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 ‘여성 성기를 빗댄 욕설’은 아니더라도 여주인과 여종업원들에게 여러 차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2005년 12월 19일에 또 벌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던 중에 한나라당의 임인배 의원이 국회의장 여비서에게 여러 차례 욕설을 퍼부었던 것이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그저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여러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나라당은 여성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행태를 보여왔다. 그것은 여성의 능력을 비하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성의 존재를 노리개로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한나라당이 성폭력범에게 ‘전자팔찌’를 채우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넌센스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 대표를 맡고 있는 유일한 정당이기에 이런 넌센스의 정도는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전자팔찌’는 이중처벌과 과잉감시라는 반인권의 문제를 안고 있는 동시에 성폭력범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되기 어렵다는 비효율의 문제도 안고 있다.

다른 당은 어떤가? 아마도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심각한 반면교사의 사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윤리특위를 허울로 만들어 놓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이 사건도 시간을 끌다가 덮어 버릴 우려도 크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이다. 국회가 늑대와 여우의 소굴이어서는 안 된다. 늑대와 여우가 정치인의 탈을 쓰고 행세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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