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0-23   1265

<파병반대의 논리> 파병, 대한민국 외교의 파탄

각계전문가와 세계지성이 말하는 이라크 파병반대의 논리

미국 영국의 이라크 침략 명분은 후세인 정부가 알카에다 테러조직과 협력하고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모두 알게 되었고 또 미영 양국 정부조차 최근 시인할 수밖에 없었듯이 두 가지 침략 명분은 모두 사실과 무관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미군 당국에서 조작한 여러 가지 언론보도와 전혀 달리 이라크에서는 알카에다와의 연관성 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조직적 정보조작에 기초한 노골적 침략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유엔 이라크 사찰단이 이미 이라크 침공 이전부터 미국 CIA가 제기한 이라크의 이동식 대량파괴무기 생산시설에 대한 증거가 없고 어떠한 시설물에서도 생물, 화학무기의 생산 또는 저장시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라크는 현재 장기 미해결 무장해제에 관한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는 사실입니다.

전후 이라크에서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개발 증거를 찾으려고 했던 노력을 두고 외신은 “3억 달러를 들여 90일 동안 찾아낸 것이 고작 (무해한) 약병 한 개”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영 양국 정부는 정부내에서 침략 명분의 허구를 지적한 내부 정보를 조작하고 해당 관리를 협박해 자살하게 하거나 사회적 매장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정부에서 불가능한 비열한 공작정치의 진상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라크 침략이 명분이 없는, 또 명분을 체계적으로 조작한, 순수하게 점령을 목적으로 한 침략행위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혹시 명분이 일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법리적 측면에서 역시 미국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 자행된 국제법상 불법행위, 즉 범죄행위입니다. 이를 지원하는 것 역시 국제법상 불법행위이며, 현재 이라크를 불법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미군 및 외국군과 이라크인들간의 무력충돌의 책임은 점령군에 있습니다.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 및 외국군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규정에서도 그렇고 미군 스스로의 호칭에서도 그렇듯이 명백한 점령군입니다.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침략행위의 결과로 점령을 강제하는 점령군에 저항하는 것은 이라크인들의 고유한 자위권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한국군 등 외국군이 미 점령군을 도와 이라크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억제, 반격하게 되면 이 역시 심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되며, 현재의 국제법에 근거한 재판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군대를 보낸 각국 정부는 피소되어야 합니다.

한미동맹을 위해? 그 위험하고도 맹목적인 선동

파병 찬성론자들은 한미동맹의 가치를 근거로 파병을 정당화하지만, 이 역시 법적 근거를 무시한 감성적 선동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헌법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전쟁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격받지 않았을 경우 타국에 전투병력을 보내 전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 원칙입니다.

여기에 바로 한미동맹을 규정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조차 한국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UN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UN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파병 찬성론자들이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 규정에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미동맹이나 다른 어떤 가치가 중요하게 존재하더라도, 국가의 행위는 철저하게 헌법과 국제법의 제약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이 무시된다면 법치국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군사쿠데타와 군부의 내란죄 등 법치국가에 대한 도전을 국민으로 힘으로 지금까지 극복해온 나라에서 이렇게 국가의 불법행위에 눈감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라크 침략 및 점령은 불법이며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미래에 매우 위험한 전례가 됩니다. 미국 영국은 유엔안보리 결의 없이 “예방전쟁 독트린”에 의해 선제공격의 군사행동을 취한 것인데, 이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 유엔을 통해 국제적인 합의기반을 구축하려는 평화의 노력을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이라크 침략과 점령이 정당화되면 향후 국제사회의 분쟁을 유엔을 통해 중재,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강대국에 의해 언제든지 무력화될 수 있는 국제기구의 신뢰는 한번 추락하기 시작하면 돌이키기 힘들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유엔안보리 결의 없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 지원하는 것은 결국 유엔을 통한 무력의 조절 보다 강대국의 선제공격 독트린에 동조, 이를 정당화하게 되는 것으로서 무력분쟁의 가능성이 잔존하는 한반도 및 다른 분쟁지역에서도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매우 위험한 외교 노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안한 점령을 기대하지 말라’ – 이라크인들의 이유있는 저항

전쟁은 또 하나의 국가 행위가 아니라 다수의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는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미국 영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현재 6천명에서 2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라크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이들 중 다수는 민간인들입니다. 비록 독재치하에 있었지만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도 없이 자기 나라를 침략하고 파괴했으며 또 현재 불법 점령하고 있는 외국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저항에는 이러한 억울한 죽음과 파괴에 대한 분노가 들어있습니다.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미군 및 외국군, 그리고 심지어 유엔 원조기구의 시설에까지 가해지는 이라크인들의 습격은 점령이 지속되는 이상 줄어들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영군의 침략 명분이 백일하에 허구임이 드러나면서 이라크인들의 무장저항이 날로 체계화되고 주민들의 지지를 더 받게 되는 ‘물을 만난 물고기’의 상황이 되고 있으며 이에 비해 미군 등 다국적군은 점령의 명분 문제와 극심한 주민저항 때문에 사기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달리 이라크와 인근 국가의 사람들은 전쟁 초기부터 이번 침략 전쟁이 이라크인들에게 가져다준 참상을 거의 매일같이 생생한 화면으로 보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안정적인 점령을 지속하는 것을 불가능하며, 미국의 동맹국이 이 지역에서 주민들의 지지 속에 편안한 주둔을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미국과 점령군의 입장이 아닌 이라크인의 눈으로 봐야

명분 또는 법률적 정당성이 무시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파병 찬성론은 한가지 면에서 완전한 도덕적 윤리적 파탄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은 흑인 암살을 일삼던 KKK 테러단이나 흑인 노예를 부리던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에서 보이는 것과 매우 유사한, 이라크인들에 대한 멸시의 입장입니다. 도대체 한국정부가, 한국군이, 나아가 그 어떤 외국세력이 이라크인들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파병 찬성론은, 고귀한 이라크인들의 목소리와 마음을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는 도덕적 윤리적 원칙을 완전히 저버리고 있습니다.

파병 찬성론은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관심이 앞섭니다. 때문에 이라크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점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미 희생되었고 현재 남은 문제 역시 이라크인들의 결정할 이라크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주객의 전도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일을 처리하는데 완전한 윤리적 파탄입니다. 이라크인들은 한국의 국익 추구에 단순한 수단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설혹 유엔과 국제법이 강대국의 독단 앞에서 무력하다 할 지라도, 이라크의 운명은 이라크인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다는 명분마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렇게 오만하고 멸시하는 태도로 침략당한 나라의 국민들 앞에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이대훈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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