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2-01   726

“슬퍼하자, 우리를 돌아보고 기도하자.”

– 포또띠씨 강연 전문

2003년 11월 30일

가장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 이런 중요한 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신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이 저의 첫번째 한국방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친절과 접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여러분의 역사와 여러분의 관심에 대해, 그리고 여러분의 결정이 이 행성의 미래에 미칠 매우 중요한 역할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제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저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으로부터 배우는 것 역시 저의 행복이고, 여러분의 상황에 대해 더 나은 이해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저는 지난 9.11공격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큰형을 잃은 사람으로서 여기에 왔습니다. 그날의 끔찍한 사건을 두고 미국정부가 국내적으로, 또한 국제적으로 보여준 반응에 대해 깊이 염려하는 미국시민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가족모임, 즉 그들의 슬픔이 평화를 위한 행동이 되도록 결심한 9.11희생자들의 부모, 형제, 자매, 아이들 모임의 발기인중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왔습니다.

2001년 11월의 마지막 주, 즉 2년 전의 바로 이 주간에, 저와 이 모임을 결성했던 사람들 은 서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워싱턴 디씨에서 뉴욕까지 “평화와 치유를 위한 걷기”에 참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대대적인 아프가니스탄폭격을 거부했음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테러리즘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혹은 9.11테러리스트들을 붙잡기 위한 방법으로 위장되었던 그 폭격을.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이 더 큰 맥락에서 일어났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매일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세상, 바로 그 맥락 가운데서 그들의 죽음은 일어났던 것입니다. 매일같이 강대국들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며 테러를 저지르는 세상, 매일같이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모든 죽음이 기억되고 애도되기에 마땅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세상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21세기가 매우 힘있는 메시지를 가져왔었음을. 우리의 폭탄들이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군대가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의 인감됨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할지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죽었을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특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현실과 분리된 채 그들 자신만의 행성에서 사는 양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강대국인 우리가 더 이상 어떤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던, 그리고 고의적인 잘못이 없었던 결백하고 깨끗한 나라인양 가장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아직 우리의 이런 생각을 들을 준비가 된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은 강한 감정입니다. 그것은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서로에 대한 그리고 그 밖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간과하도록 이끌었던 바로 그 두려움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옅은 지식과, 언론이 졸렬한 보도때문에 두려워했던 그들은 9월 11일에 있었던 시민들의 죽음을 예외적인 것으로, 전엔 결코 있지 않았던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날의 공격을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들도 예외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것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시민의 자유에 대한 제약과 헌법수호에 대한 위협을 지지했습니다. 이라크가 9.11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주의와 같은 위험한 여론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국가주의는 그들의 정체성안에 있는 오만함을, 세상을 지배하고 그들 자신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고자 하는 욕구로 바꾸어버렸습니다. 2년후 우리는 9.11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대응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습니까? 한가지 답은 박애주의자이자 논설가이기도 한 노먼 커즌즈의 말에서 발견됩니다. 그는 일본의 원폭생존자들이 겪는 참상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지혜는 결과를 내다보는 것이다.”라고. 그의 기준에 의하면 우리의 대응은 지혜롭지 않았던 것이 명백합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공격함으로써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핑계로. 그리고 그 결과, 우리에 대한 그들의 폭력은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하는 친지들을 죽이는 것에 대한 변명의 구실로 우리가 사랑하는 친지들의 죽음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미국인들의 죽음은 늘어만 갔습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 심리적 불안과 안보의 불안을 낳기 위해 9.11로 인해 생긴 심리적 불안과 안보의 불안을 역이용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의 조국은 덜 연합되고 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는 9.11공격에 의해 생겨났던 두려움이 소위 “테러에 대한 전쟁”과는 무관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된 강력한 도구였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배웠습니다. 인류는 그들이 깨닫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개인의 이야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비인간적인 테러와 전쟁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더욱 인간적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약하게 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나아감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강하게 할 수 있었음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2년전 제가 주저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이 마음안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칠십칠세이지요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알고나서 고통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짐, 짐, 짐이라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지요. 그러던 중 “나는 다른 어느 누구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을 겪게되길 원치 않아.”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부모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 그러한 슬픔 가운데서, 어머니는 개인적인 대응을 넘어 공동체적 대응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단지 그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어머니들을 위해서, 단지 그녀의 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아이들을 위해서.

그것은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지역신문에 논설을 쓰게 하고 라디오 방송에 나가도록 한 것은 그 선언이 담고 있던 뜻이었습니다. 저의 논설중 하나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었습니다. “어떤 곳의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저는 우리나라의 국민이 세계의 불의가운데서 우리 자신의 역할을 살펴보기를,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폭력의 순환을 끝낼 수 있을지 되돌아볼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같이 저는 우리 조국에게 어떤 다른 대응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공동체적 인간애를 향한 뜻과 참된 안정과 평화를 향한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러한 대응을. 그리고 저는 이러한 생각을 주저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이와같은 생각을 공유했던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필리스와 올란도 로드리게즈를 만났습니다. 그들 또한 세계무역센터에서 아들을 잃었지요. 그 공격이 있고나서 단지 이틀 후 그들은 “우리 아들의 이름으로는 아니하자”라는 선언문을 썼습니다.

“우리 아들은 비인도주의적 이념의 희생자로 죽어갔다. 우리의 행동이 그와 똑같은 목적을 도와서는 아니될 것이다. 슬퍼하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기도하자. 이 땅에 참된 평화와 정의를 가져오는 합리적인 대응에 대하여 생각하자. 그러나 이 시대의 비인간성을 더해가는 국가로서는 아니하자.” 여러분의 아이가 살해당한지 단지 몇 일 후에 여러분은 이와같은 선언문을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리타 레이자를 기억합니다. 그녀는 세계무역센터에서 남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는 단지 휠체어에 있는 친구와 함께 뒤에 머물고자 했을 뿐이었지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깊이 상처입은 이 나라가, 군대를 내보내는 어떤 일을 하지 않기를 나는 나와 동생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되불러올 힘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분노로 하여금 현실의 안목을 가리지 않았던 리타 레이자의 지혜를 보게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9.11의 실상은 살인은 어느 때나, 어디서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무연센터의 무고한 직장인이든, 아프가니스탄의 무고한 어린이이든, 혹은 이라크의 무고한 아버지이든, 비행기 납치범의 테러리즘에 의한 것이든, 전쟁의 테러리즘에 의한 것이든 살인은 언제나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비극인 것입니다. 그리고 테러리즘과 전쟁에 의한 죽음은 언제나 세대를 가로지르는 오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형의 죽음은 제가 크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웃집 친지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더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제이크와 자넷입니다. 유대인인 이들은 우리가 어릴때 캔디를 사먹곤 했던 “제이크의 레드 앤 화이트”라는 작은 가게를 갖고 있었습니다. 제이크와 자넷은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분들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여든을 넘기셔서 쉬고 있지요. 저의 부모님들은 마을 어귀에서 혹은 수퍼에서 이분들을 만나곤 했을 것입니다.

자넷은 저의 어머니에게 “나는 테러리즘이 무엇인지 알아”라고 말했겠지요. 그녀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느날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줄을 섰던 그 일을. 그녀의 모든 가족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들이 줄을 서 있었지요. 당시 소녀였던 자넷은 금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금발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되어 마지막 순간에 그 줄 밖으로 끌려나왔습니다. 가스실로 죽음을 맞으러 나아가는 모든 가족을 바라보던 중, 그녀는 갑자기 줄에서 떨어져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살아남은 한 사람이었지요.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매일의 삶 속에서 그녀의 마음에 떠오르는 그 모습을 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왜 그녀는 살았고 그들은 죽었는지 의아해합니다. 전쟁은 세대를 가로질러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그녀와 저의 어머니는 새로운 유대감을 갖게 되었고 서로의 슬픔으로 인해 생긴 새로운 이해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해병 4사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남태평양에 배치 되었고 사이판, 티니안, 이오지마를 포함한 섬들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가장 치열했던 전투에서 그는 중대원의 75%를 잃었습니다. 그의 역사는 지금 이 방에 계신 분들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시키에 원자폭탄이 사용되었던 바로 그때 일본 본토의 상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80대 후반에 접어선 그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는 제게 그의 훈련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 그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레더넥(Leatherneck)”이란 이름의 잡지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 잡지는 미해병 4사단을 위한 잡지인데, 어떤 미망인이 자신의 남편에 대한 소식을 물으며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그는 여러해 전에 죽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참전 군인들은 늙어갔고, 세상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참전 군인들이 남편에 대한 어떤 소식이라도 들려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답장을 썼다는 소식은 놀라웠습니다. 아버지는 그녀의 남편을 전혀 몰랐고, 직접적으로 함께 복무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얼굴도 본적이 없었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전쟁에서 처음으로 보았던 유해가 그분의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켓의 뒤에 큰 글자로 새겨져 있던 그 분의 이름을 읽었었습니다. 그리고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의 유산입니다. 세대를 가로질러 미치는 악몽인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또 다른 어떤 악몽을 지니고 살아 오셨는지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일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그들 국가에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악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50년간 그들은 무엇을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까? 그곳 어린이들에게 10년 이내에, 혹은 20년 이내에, 그들이 자라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이들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과 어떤 결말을 공유하게 되겠습니까?

저는 우리 군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이들 역시 테러리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입니다. 저는 또한 티모시 맥베이를 기억합니다. 그는 오클라호마시 폭발사건을 일으켰던 걸프전 참전 군인입니다. 저는 존 모하메드를 기억합니다. 그는 메릴랜드 지역의 연쇄 저격사건에 책임이 있었던 걸프전 참전 군인입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었던 4명의 특수부대원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제가 살고 있는 노오스 캐롤라이나로 돌아왔었고 그들 네명은 모두 아내를 살해했습니다.

팃낫한 스님은 말합니다. “우리가 매일 어린이들에게 살생을 가르칠 때 그 상처는 깊습니다. 그들은 분노를 알게 되었고, 여러해 동안 상처를 안고 갑니다. 이러한 종류의 정신적 고통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다가오는 세대에도 전달됩니다. 그렇게 많은 전쟁의 씨앗들에 물을 줌으로써 초래할 장기적인 결과들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들 중의 하나는 우리가 지닌 과거와의 중요한 연결고리들이 단절되는 것입니다. 형이 죽었을때 제가 가장 생각했던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음식은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속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때는 오직 생일,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날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식사를 합니다. 우리는 음식으로 생일을 축하하고 음식으로 결혼식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에도 음식과 음료를 나눕니다.

그래서 형이 죽었을 때도 저는 음식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준비하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저녁만찬이 있었지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를 대접하는 카톨릭의 전통입니다. 그때는 대합조게 소스와 새우 칵테일, 굴 튀김, 말린 대구로 파스타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태어났던 이탈리아의 마을에서 자란 밤나무로 만든 그릇에 식사를 했을 것입니다. 또 백포도주를 마셨겠지요. 그것은 해마다 이어져 오는 가족의 전통이었습니다. 형이 죽은 이후 저는 얼마나 그 전통이 축소되었는지를 기억합니다. 우리의 기억을 나누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어주어야 할 한사람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죽일 때는 단지 한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님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전통과 가족과,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와의 관계도 함께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과거와 이어주는 관계뿐만 아니라 미래로 이어주는 관계도 함께 죽이는 것입니다. 저의 어린 아이들은 죽은 제 형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죽은 아들이 결코 그들의 전통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을 알고 돌아가실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모든 죽음은 과거와의 ,현재와의 그리고 미래와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모든 죽음은 세대에 걸쳐 확장되는 비극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관계를 다시 만들어나가는 것은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일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도록.

9.11 이후 우리모임은 전 세계의 그리고 전 미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가족이라 불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인류의 이익이 그들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그들이 지닌 고통과 상실감의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증거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유사한 손실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국에 의해 일본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의 공포를 실감하게 한 히바쿠사(원폭생존자)공연전시를 보고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이 역사적으로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초래한 인간의 고통에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아니한 채로. 그러나 히바쿠사(원폭생존자)공연전시는 우리로 하여금 전쟁의 지속적인 결과를 상기시키는데 매우 귀중한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그들은 복잡한 인간의 단면을 종종 간결하게 그리고 검고 하얀 전쟁의 상으로 증거하지요. 이것이 그들의 가치있는 증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가족회 설립자인 이차크 프란켄탈을 만났습니다. 그의 큰 아들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살해당한 희생자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잃었다고. 그리고 오늘날 그는 자녀를 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부모들을 이어주는 부모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을 대화로 이어주는 특별전화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양측은 서로의 인간됨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의 모임에서 이스라엘인과 함께 팔레스타인인은 “똑같은 피, 똑같은 고통, 똑같은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헌혈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개 이상의 관을 유엔 앞에 내려놓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시민의 죽음을 극화하였는데, 각각의 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가치있는 증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화해를 위한 피살희생자가족회라는 모임의 회원인 버드 웰치를 만났습니다. 이 모임은 살인범의 사형을 반대하는 피살희생자가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버드의 딸은 오클라호마시 폭발사고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고 스스로를 자학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신이 변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는 텔레비전 쇼를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오클라호마시 폭발을 일으켰던 티모씨 멕베이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게되었습니다. 그는 그 아버지의 눈에서 상처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이 사람을 만나야만 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멕베이의 아버지와 자매를 만났고, 그들에게 그날의 비극으로 인하여 영원히 관계를 맺었으면 하는 바램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분노로부터 풀려나게 됩니다.

실로 우리는 모두 비극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내일의 회원들과 같이 버드 웰치는 치유를 위해선 우리의 관계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올해 2003년 9월 11일 저는 9.11희생자들의 유가족 수천명과 함께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추도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거기에 도착했을때 하얀 작은 리본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날의 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온 가족들이 슬픈 형제애 가운데서 서로가 공동체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특별가족의 자리로 들어갔을때, 저는 작은 가지로 엮인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보았습니다. 한 바구니에는 물병이 있었고 다른 바구니에는 크리넥스 티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바구니에는 장미가 들어있었는데, 각 줄기는 저마다 노랑, 하양, 빨강, 그리고 다른 각각의 무지개 빛 아름다운 꽃들을 맺고 있었지요. 한편 오전 내내 어린이들은 그 날 고인이 되신 분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후에 우리는 비탈길을 따라 두 탑의 기초가 서있는 구덩이까지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가 보았던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바구니들이었습니다. 물은 그날 흘렸던 눈물을 상징했습니다. 티슈는 아직 고통당하고 있는 저들이 계속적인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꽃들은 재생과 삶의 아름다움을 상징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슬픔을 넘어 자라나기 위해선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해선 눈물을 필요로 하듯이, 물은 장미가 자라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물의 상징은 제 마음을 계속해서 채웁니다. 저는 물을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기원으로 생각했습니다. 수천마일을 뻗어나가며 대륙을 나누는 물의 거대한 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한편 저는 모든 땅들이 연결되는 이 지구를 남겨둔 채 사라지고 말라버리는 대양들과 저 물의 몸을 상상했습니다. 그릇된 장벽과 지리적 경계를 잊은 채 우리가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면 하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40년전 바로 이 주간에 암살되었던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의 말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최종 분석에 의하면, 우리의 가장 공통적인 연결고리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공기로 숨을 쉽니다. 우리는 모두 아이들의 미래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것 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적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친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실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동안, 우리는 연대의 힘과 국제법의 규칙을 통해 더 좋고 재치있는 대안들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테러리즘이 실제로 문제가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테러리즘은 문제의 징후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는 군사주의요, 제국주의요, 국가주의요, 다른 사람들의 생명보다 몇몇의 생명이 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고쳐가야 할 잘못된 생각이고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일 먼저 이런 것들을 기꺼이 인식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신중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수없이 많이 들어온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힘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것 외에는. 그러나 제게 있어서 자유는 여러 선택의 가능성을 갖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우리는 최후의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하기 전에 우리가 지닌 모든 대안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9.11의 교훈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폭탄은 우리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군대도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성벽도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대량살상 무기의 시대인 21세기에 우리는 우리의 상호 인간됨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공존의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죽어갈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는 말합니다. “뒤틀려진 고통의 역사라 해도 다시 되돌리수는 없는 것, 용기를 가지고 직면한다면,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는 우리 각자에게 새역사를 만들어나갈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크고 거창한 몸짓에서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서로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는 관계속에서.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군대의 힘을 초월하는 어떤 힘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적인 힘, 윤리적인 힘, 정당한 법의 힘으로부터, 또한 전통과 역사로 이어지는 관계로부터, 테러리즘과 전쟁으로 분쇄된 세계를 다시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가족들의 그쳐지지 않는 사명인 것입니다. 초대에 감사드리며 여러분을 이처럼 중요한 여행의 동반자로서 환영합니다.

* 본 원고는 포토티씨의 강연 원문(영어)을 ‘이라크 평화기도회’ 참여단체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라크 평화기도회는 공의정치실천연대,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변호사회, 기윤실, 뉴스앤조이, 두레연구원6기, 분당두레교회 청년회, 새벽이슬,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 수원성교회 사회선교위원회, 언덕교회, 인터콥, IVF사회부, 복음과상황, 통일마당(11월 현재 15개단체)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화군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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