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0-17   1313

<최현주가 만난 사람> 한비야 “파병하면 나는 모술로 못 돌아가죠”

3개월간 구호사업 펼쳤던 한비야 긴급구호팀장이 전하는 모술 현지 상황

지금 한국사회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느냐를 놓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파병할 경우 예상주둔지인 모술지역의 상황은 파병결정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다. 정부가 주관한 현지조사 조사단은 모술지역의 치안상태가 나아지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그 조사가 불성실한 조사였음이 드러남에 따라 모술지역의 상황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사이버참여연대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라크 모술지역에 3개월 동안 머물렀던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을 만나 모술지역 상황을 직접 확인했다. 편집자 주

모술지역 치안상황부터 물었다.

“모술지역이요? 긴급구호팀들마저 철수하는 상황입니다. 긴급구호요원이라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구호를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이잖아요. 불이 나면 모두 대피해도 소방수는 불길로 뛰어드는 것처럼 긴급구호요원들도 다들 피신하는 구호현장에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철수할 정도라면 정말 위험한 것이죠. UN은 700여 명 중에서 20여 명만 남기고 철수했고 국제적십자도 직원들을 철수시킨다고 들었어요. 옥스팜(Oxfarm)이라는 큰 구호단체도 철수할 계획으로 알고있고. 우리도 인원을 축소했잖아요. 상황은 좋지 않아요. 이번 월드비전의 모술 긴급구호사업일은 최소 12명은 있어야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한 팀을 꾸릴 수 있는데, 결국에는 제가 나오던 8월 말에 4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어요. 비상상황시 한 차로 철수할 수 있으니 4명이 남은 것이죠. 남은 이들은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바로 지금도.”

모술지역에 얼마나 머물렀을까. 현지 상황에 대해 좀더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저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모술에 머물렀죠. 원래는 3달간 있기로 되어있었는데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놓고 철수했어요. 국제구호단체에서 따로 쓰는 4단계 안전코드가 있어요. 코드그린(code green)은 안전, 그렇다고해도 지금 우리나라처럼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고 긴급구호상황에서 그나마 안전하다는 것이죠. 코드엘로우(code yellow)는 위험할 소지가 있으니 예의주시하라, 코드레드(code red)는 위험, 1시간 내에 탈출할 채비를 하고 있어야하죠. 마지막이 코드블랙(code black)인데 철수죠. 코드블랙이면 현장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저희팀이 있던 3달 동안만 3번이나 철수했어요. 그중 2번은 1시간 거리의 아르빌이라는 도시로 피해있었고, 1번은 아예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가야만 했었죠.”

구호요원들 중에도 사상자가 있었는지 물었다.

“우리 요원들 중에는 없었지만, 유엔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다쳤었죠. 크게 다치면 결국 죽는 것 아니겠어요. 구호요원들이 이렇게 목숨걸고 일하는데 총으로 위협받고 협박편지 받고 그러면 억울하죠. 또 현지인들도 너 외국인 도와주면 죽을 줄 알라고 협박을 받아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해도 되요. 이라크내의 반연합군세력들은 모든 외국인들을 미군의 협력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그걸 나무랄 수는 없다고 봐요.”

지금 이라크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식수, 의료, 교육 등 이다. 스스로 전후복구를 해낼 수 없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닌가. 왜 도와주려는 국제단체에게까지 테러를 가하는가.

“재건사업이요? 분명히 이라크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죠. 석유매장량도 세계2위니 돈도 많을테고 이라크인들 또한 특별해요. 이라크인들과 일해 본 이들은 누구나 인정할 거예요. 정말 자존심이 강하고 의지 높고, 교육열도 높고. 젊은 사람들 보면 다들 독립군같아요. 지금 다만 여력이 없는거죠. 지금은 일단 전쟁에서 헤어나와야하고 전쟁 전에는 경제제재를 당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도와줘야하는 거예요. 이렇게 어려울 때. 이후에는 그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테구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현지에서 펼쳤던 구호사업에 대해 물었다.

“긴급구호는 수술실이예요. 응급수술실. 사고나서 다쳐온 사람을 어떻게든 살려내는 일을 하는 거죠. 보통 긴급구호하면 식량과 대규모 난민문제인데, 다행히 이라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예요. 사실 물이 없는게 아니거든요. 고대문명의 발생지라고 하는 티그리스 강이 흐르고, 굉장히 큰 댐이 있어요. 예전에는 사담댐으로 불리웠는데 지금은 모술댐으로 바뀌었을거예요. ‘사담’이라는 것은 다 이름이 바뀌었거든요.

아무튼 이 모술댐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있는데요. 문제는 상수도관이 다 망가진거죠. 상수도는 주위 나라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아주 잘 되어있었는데 몇십년동안 관리를 못하다보니 파이프가 망가진거죠. 그래서 끊어진 파이프를 연결해준다던지 녹물이 나오니까 정수를 하는 일이 당장 필요한거죠. 여기는 화장실에서 휴지대신 물을 쓰는 문화잖아요. 그런데 물이 없으니 굉장히 불결하죠. 소변이어도 문제인데 대변이면 어떻게 하겠어요. 위생불결로 생기는 문제들이 많죠. 긴급구호에서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여긴 학교가 건물만 있지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예요. 특히 농촌지역은 화장실조차 없어요. 그래서 참여연대와 함께한 평화캠페인을 통해 추진한 것이 바로 ‘학교를 통한 식수사업’이예요. 학교에 오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학교에 오면 깨끗한 화장실에 얼마든지 갈 수 있도록 만들자고 한거죠.”

그 정도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그녀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식수사업 국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이에 대한 성과를 묻자 대답하는 목소리가 하늘 끝을 찌를 정도다.

“198개 학교에 식수사업을 했어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도 물이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와서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막 나오잖아요. 화장실에 가도 물이 있구요. 그게 200여 개 학교나 되는데, 보통 한 한교에 300명 만 쳐도 그게 몇명이예요. 그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거죠. 300명이 뭐예요. 2교대로 나눠 수업을 받으니… 정말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았죠. 우리가 작업할 때부터 벌써 아이들이 와요. 일 마치고 물이 나오면 아이들이 얼마나 신기해하는지 몰라요. 물이 이라크말로 ‘마’인데, 모술엔 사투리가 있어 ‘마이’라고 하거든요. 아이들이 물을 틀며 ‘마이 마이’ 그러는데 그게 꼭 ‘내거야 내거야(my my)’로 들려요. 내가 식수사업을 하니까, 물이랑 한국인이란 말을 붙여서 ‘마이꼬리,마미꼬리’그래요. 그게 꼭 ‘나의 한국, 나의 한국’이렇게 들려서 얼마나 기분좋은지 몰라요.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놀라서 쳐다보니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구호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데 왜 우리한테 총구를 겨눌까 억울한 생각이 들다가도 현장에 가서 아이들이 물보고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모든 시름이 다 잊어버려요. 바로 저걸 위해서 우리가 그렇게 애를 쓴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죠. 진짜 중독이야 중독. 그런 얼굴을 한번 본 사람은 긴급구호 현장을 떠날 수가 없을거예요. 정말 떠날 수 없을거야.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생각을 해봐요. 태어나서부터 한번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잖아요. 안그래요? 애들이 열 살이라고 보면 경제제재때 태어난 애들이잖아요, 아무 것도 팔지도 못하고 사지도 못할 때. 그리고는 ‘전쟁,전쟁,전쟁’만 들으면서 무서운 독재밑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엄마아빠는 모두다 잃고. 이런 아이들이 물 나오는거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거예요. 그걸 보고 있자니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그동안 뭘 했나, 또 도와줄 것은 없나하는 생각도 들구요.”

구호라고는 하지만, 연일 사상자가 생기는 전쟁터다. 3개월 동안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예전에 세계일주할때는 이라크에 못 갔어요.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비자가 안나오더라구요. 드디어 이번에 89번째 나라로, 여행가가 아닌 긴급구호팀장으로 이라크에 가게 된거죠. 저는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나 바그다드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그러니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가보니까 난리가 아닌거예요. 치안이 안좋아서 매일매일 무슨 일이 생기는 거예요. 학교정수기 안에는 폭탄이 들어있죠. 그럼 영국폭탄제거반에게 부탁해 폭탄을 제거하죠. 우물 파는데 쓰는 펌프를 누가 훔쳐가서, 그걸 잡으러 가야하기도 하고. 또 공사하다가 사람들이 다치기도하고 아무튼 매일매일 무슨 일이 생겨요.

그뿐이 아니죠. 3개월 동안이 이라크의 여름이었는데 평균 53도가 넘는 날씨였어요. 저녁에 샤워기를 틀면 컵라면을 익혀 먹을 만큼 뜨거운 물이 나와요. 그게 낮동안 지붕 위 물탱크에서 달궈진 거죠. 그 물을 받아서 식힌 다음에야 샤워를 할 수 있죠. 에어콘은커녕 선풍기라도 돌릴 수가 있나, 전기가 없잖아요. 그런데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니 온몸은 땀띠죠. 따가워서 잠을 못자요. 너무 더워서 잠은 아예 안와요. 또 벽은 너무 뜨거워서 닿을 수도 없고. 잠깐만이라도 더위를 식힐 수가 없어요. 거기에 한국과 연락하려면 시차가 안맞으니 더 잠을 못자고, 그래서 제가 병이 난 거에요.”

지금 한비야 씨는 극심한 탈진현상으로 인해 안면근육 마비되기까지 했다. 한국에 돌어온지 한달도 더 지났지만 아직 완치되지 못했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30분가량이 지나자 벌써 얼굴 한편이 굳어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굳어가는 뺨을 손으로 잡고 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눈물과 땀으로 3개월을 보내고 나니 이제 이라크가 남의 나라가 아니예요. 그래서 누가 이라크에 희망이 없다 이러면 갑자기 열이 팍 올라요. 기회를 주기나 해봤어요? 또 우리가 파병문제 얘기하면서 국익논쟁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얘기하면서 정작 이라크 얘기는 없잖아요. 우리가 이라크 사람들 도우러 간다면서요. 그럼 명목상으로라도 이라크 사람들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또 우리를 원하는지 이런 것들이요. 이라크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우리 국익 때문에 파병을 했다 이런 것과 미국이 이라크에 석유 때문에 침략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하나도 안 다르지. 미국은 석유 때문에 온것이고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온 것이고. 우리가 미국을 그렇게 욕한 것과 똑같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요.”

청와대가 이라크 전투병 파병에 대해 국민적 여론수렴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수석이 제일 먼저 만난 이들이 바로 이라크 현지에 머물렀던 긴급구호팀들과 반전평화운동가들. 한비야 씨도 이 자리에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물었다.

“일단 경청하는 분위기였어요. 파병이든 반대이든 방향을 결정해놓고 제스추어로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자리가 마련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대한 결정이잖아요. 모술지방 치안이 안전하다고 그럴게 아니라 치안이 이렇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알려질 일인데 말이죠. 우리처럼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긴급구호팀들도 철수를 할까말까하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치안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을 사람이 있겠어요.

사람이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고 사상자들이 늘어나는데 어떻게 안전하다고 볼수가 있어요. 그러면 괜히 의구심만 들고 신뢰성만 없어지죠. 차라리 모술지방의 치안은 이런 상황이고 앞으로 어떤 점에서 불안할 소지가 있다고 솔직히 시인하는 것부터 파병논의를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그 다음에 각각의 상황에 따른 우리의 대응 시나리오는 이렇다라고 제시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정말 치안이 안전할 때, 파병했는데 갑자기 공격을 당했을 때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것이 좋은 방법 아닐까요. 실제로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하다 하다가 사상자라도 나면 뭐라고 설명할 거예요. 상황을 정확하게 전하고 우리는 이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요.”

정부가 파견한 이라크 현지에 대한 1차 보고서에는 모술지역의 치안이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조사보고서를 한비야 씨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한참동안 꼼꼼히 읽은 후 답했다.

“이 조사보고서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작성했겠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군이 전투병으로 파병된다면 이 보고서에 적힌대로 ‘군사작전보다 치안유지 및 재건지원에 집중’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적어도 모술지역에서는요. 원래는 점령군이 그 지역의 치안유지를 담당하잖아요. 우리같은 구호단체들의 안전도 챙겨야하구요. 그런데 지금 점령군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알테고 자기들도 시인할 거예요. 점령군 대부분인 미군에 대한 이라크의 반연합군세력의 공격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미군들은 그에 대응하기 급급하죠. 주민들 치안유지와 재건지원보다는 자기 안전유지가 더 급하다는 느낌을 줘요. 미군들은 그야말로 자기코가 석자예요. 자기들 치안이 너무너무 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치안에 신경쓸 경황이 없는거죠. 그래서 결국 우리같은 인도적 구호단체는 물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죠. 긴급구호팀으로 현장에 가면 통상적으로 그 지역 점령군이나 유엔의 안전브리핑을 받거든요. 우리가 일일이 안전상황을 꿰뚫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유엔의 물자창고 등을 같이 쓰는데, 이번 모술의 경우는 반대였죠. 유엔 물자창고에 불이 나고 총알이 날아드는 상황이니까요.”

현실적으로 미군이 치안유지를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죠. 자기들 치안유지가 너무나 급하거든요. 미군 스스로가 이라크내 반연합군세력에게 극도로 긴장해 있어요. 그로인해 반연합군 세력의 습격에 오히려 과잉반응해 더 큰 불상사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예요. 정찰을 한다는 패트롤카들은 쏜살같이 달려요. 정찰을 하려면 천천히 달리면서 주변을 살펴야하잖아요. 미군들에 대한 공격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거든요. 우리도 모술에 사무실이 있기는 한데 3주일인가 전에는 모술 시내에 공격이 있어서 아예 직원들이 중요한 문서들을 챙겨 근처의 아르빌이라는 도시로 대피했죠. 제가 있을때만해도 위험해도 하루정도 있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그 후에는 일주일이나 있어야 모술로 되돌아 온 것을 보면, 상황이 좋아진다고 볼수는 없는거죠. 제가 있는 3개월동안만 보더라도 미군에 대한 공격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치안 및 질서유지 재건유지에 주력할 수 있을까? 적어도 모술에서는 지금 당장은 어렵다고 봐요.”

미군이 치안유지를 못한다면, 추가로 파병되는 전투병들이 그 공백을 메꿀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치안유지라면 어느 정도의 활동일까. 단순한 검문검색과 수색활동일까.

“치안유지를 한다는 것도 전투를 각오해야할 정도구요. 정찰차가 다니면서 수색작전을 벌이며 외국군이 와서 자기들 검문검색을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한국군이 가면 이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검문검색 뿐 아니라 수색에 들어가면, 아이구. 거기는 아직도 매일 ‘후세인이 나타났다’는 말이 도는 지역이예요. 현상금이 250만달러인데 우리가 잡으면 절반은 월드비전에 기부하고 나머지로는 여행다니자 이런 농담 매일 하거든요. 후세인이 매일 나온다 이러니 대규모 수색작전은 불가피하죠. 그럼 그 일을 누가 하겠어요? 다국적군이건 평화유지군이건 그 지역에 있는 군인들이 모두 함께 해야할텐데, 그걸 우리 군인들이 할 생각을 하면, 아이구, 나는 눈앞이 캄캄해요.”

검문검색이나 수색작업은 실제로 사람이 죽는 수준일까. 총격전이 벌어지는지 사상자가 생기는지 물었다.

“그럼요. 수색작전에서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이 다행히 무기도 없고 잔챙이들이었다면 양쪽 사상자 없이 끝나겠지만, 만일 최후의 저항이다 이러면요? 시장에 가면 수류탄 정도는 굴러다녀요. 수류탄은 1달러에 4개씩 판다니까요. 미사일 있냐고 하면 아마 얼마줄래 이럴걸요. 별거 다 있어요. 돈만 있으면 무기야 얼마든지 있어요. 정말 위험하죠. 이런 상황이니 치안유지가 보통 일이 아니죠. 지금 당장이라야 미군보다야 한국군에 대해 저항감이 덜하기는 하겠지만 우리도 미군과 같은 일을 하게 되면요? 이라크인들은 한국군이 뭐하러 오는지 아마 모를걸요. 왜냐면 CNN이나 BBC 등의 뉴스에서나 미국 내에서도 한국파병은 크게 다뤄지지 않잖아요. 미군 대신 검문검색하고 데모진압하고 수색작업하면 어떨까 하고 물어봐야죠. 그런거 없이 이라크인들에게 미군이 좋아 한국군이 좋아 하면 당연히 한국군이 좋다고 대답하겠죠.”

미군에 대한 반감은 어느 정도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심각하죠. 처음에는 기대를 좀 했던 것 같아요. 후세인이 나가서 정말 좋다, 우리에게 자유가 왔구나 하면서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제가 프로젝트 현장조사를 위해 5월에 갔을 때는 적어도 그랬어요. 그런데 프로젝트 시작하면서 6월에 모술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죠. 점령군에 대해 ‘저들이 정말 도와주러 왔을까. 자기잇속만 채우러 온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면서 여러 가지 악의적인 루머들이 돌기 시작했어요. 예를들어 여자가 강간당했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는 너무나 큰 일이거든요. 성폭행 사건이 나면 피해가족 전부와 가해가족 전부는 100년 원수, 1000년 원수로 지내요. 그런데 누가 미군들에게 성폭행 당했다 이런 루머는 미군들에 대한 반감이 어느정도인지 알려주는 것이죠. 미군입장으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들은 미군들이 너무나 싫은거죠. 7∼8월이 되자 미군에 대한 반감은 눈에 띄도록 심해졌어요. 제가 오기 전에는 ‘후세인도 싫지만 미군은 더 싫다’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구호일을 하니 민간인과 접촉이 많잖아요. 아마 모술주민들을 가장 많이 만난 외국인일 거예요. 학교만해도 200여 개니 각 학교 교장과 교사들, 학생들만해도 하루에 몇십 명 몇백 명은 만나거든요. 이들한테 공공연하게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군이 가서 ‘치안유지나 재건지원’에 주력할 수가 없을거예요.”

만일 전투병이 파병되면 모술지역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월드비전이 진행하던 식수구호사업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당연히 못하죠. 한국군이 모술에 파견되면 월드비전 한국은 당분간 모술을 떠나야지요. 남을 도우러 가지만 우리 목숨이 위태로워져가면서까지 있을수는 없잖아요. 국제본부에서 다른나라가 와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지만, 저로서는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이제 물밑작업하면서 현지인들, 좋은 건설업체와 엔지니어들 다 알아놓고, 종교지도자들과 자치정부 관련자들과 네트워크 형성을 해가면서 1차 사업을 진행해왔거든요. 이제 2차 사업이 진행되면 그게 꽃을 피워야하는데, 그걸 두고 다른 지역에 가서 일하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깝지요. 일단 지금 2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어요. 만일 파병하면 모술에서는 못하니 알룻바라는 서부지역으로 가고, 파병 안하면 그대로 모술에서 일하면 되고.”

그녀의 말이 더 빨라졌다. 한국군이 전투병으로 파병되어 모술을 떠날 생각만으로도, 다른 구호단체들도 빠져나가 이라크인들에게 전해질 도움이 줄어드는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조여드는 듯 얼굴은 붉어지고 말은 빨라졌다.

“모술지역에서 월드비전 한국의 식수 프로젝트만으로도 7만5천 명이 매일매일 깨끗한 물을 먹고 있잖아요. 7만5천 명이 얼만큼인지 아세요? 얼마나 많은데요. 올림픽경기장을 꽉 채우고도 남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면 설사병나고 온갖 수인성 전염병 걸리잖아요. 아이들은 더하죠. 그런데 지금 치안이 안되서 못 들어가 못 도와주는 거잖아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저기있고. 우리는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데, 못 들어가다니. 구호를 막는 모든 일에 반대해요. 우리가 모술에 가서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이 올 까봐 안타까워요. 저는 정말 모술에서 일하고 싶어요. 정말로요.”

모술은 이라크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터키, 시리아, 이란과의 국경이 가깝다. 나라없는 최대 민족인 쿠르드인들은 이라크 북부지역에 쿠르드 자치구역을 만들어냈다. 그 도시가 바로 모술과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아르빌이라는 곳이다. 아르빌은 한지붕 두집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이라크 땅이고 이곳에 있는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패스포드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정부, 군인, 행정부를 가지고 있고 사용하는 돈도 다르다. 미군들은 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인들의 도움으로 이라크에 무혈입성했다. 그래서 미군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가는 이라크 전역에 비해 아르빌만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온 연합군 감사합니다’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점령군에 우호적인 분위기다. 그런데 터어키가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에 자국내 쿠르드 반군 진압을 조건으로 내 걸었고 이에 미국은 응한 상태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술에 주둔한 점령군은 이라크반군만이 아닌 쿠르드인과도 맞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나빠질 것이다.

“당연히 나빠지겠죠. 우리가 쿠르드인과 이라크인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그들이 왜 독립을 원하는 지도 모를텐데, 그들간의 문제잖아요. 아이구.”

새롭게 전해진 상황에 그녀는 말을 하다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걸 우리가 풀어야하나요. 또 다른 변수, 어려운 변수가 하나 생기는 거죠. 여태껏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에는 크루드인들이 따로 자치구를 갖고 있고 점령군에 우호적이라는 상황이 한 요인일텐데, 그 평화로운 전선이 무너지고 나면 또 다른 해결해야될 문제가 발생하겠죠.”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신뢰할 수 있는 2차 조사단 파견이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지 상황을 명확하게 알게되면 전투병 파병에 대한 논리는 설득력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2차 조사단 구성을 위해 연일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2차 조사단을 구성하게 된다면, 혹시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저는 구호단체팀장으로 일하겠어요. 대신 모술지방에 있어던 사람으로 의견이 필요하면 그것은 돕겠습니다.”

2차 조사단이 가게 되면, 어떤 것을 조사해야 할지 물었다.

“2차 조사단이 간다고 해도 1차때처럼 겉핡기만 하고 오기 쉽죠. 가는 사람들이 아랍어를 잘 한다거나 현지 정서를 잘 아는 것도 아닐테고, 조사기간동안 대규모 설문조살르 할 수 있는 것조 아니잖아요. 일단 현지상황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는데, 무엇을 객관이라고 할 수 있을지가 참 어려운 일이죠. 저는 정면승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민간단체들만 간다면 또 한쪽 시각만 전해질 수 있으니. 먼저 객관적인 자료들부터 검토해야한다고 봅니다. 국제엔지오들 평가, 유엔보고서 등이 있겠죠. 또한 우리의 파병과 이해관계가 없는 국제NGO에게 직접 상황판단을 전해 듣는 것이 중요한데 쉽지 않을거예요. 왜냐면 파병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장에 가서는 각 지역마다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꼭 만나와야 해요. 실질적으로 그 지역의 리더니까요.”

여기게 덧붙여 현지인들을 몇 명 고용해서 객관적인 설문조사를 시도해볼 것을 제안했다. 모술지역 주민들을 표본추출해 심층적인 인터뷰도 하고 수치로 제시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해보라는 것이다. 기층 주민들부터 정책결정자들까지 최대한 여론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보아야할까. 인권과 평화가 인류가 추구해야할 가치라는 점에서 아마 전세계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쟁은 반복되고 그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다. 구호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전쟁을 막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또한 그녀가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맞아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는 평화운동가, 인권운동가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웃음) 평화라는 것도, 사람이 먼저 살고봐야 평화죠. 물론 이라크는 남아프리카처럼 일주일내에 식량공급을 안하면 절반이 죽어나가는 긴급 구호현장은 아니예요. 하지만 죽어가는 시간만 다르다뿐이지 깨끗한 물이 없어 병에 걸리고 의료품이 없어 고칠 수 있는 병을 못 고치면 결국에는 죽어가는 거잖아요. 평화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평화라는 게 머리 위에 있는 뭔가가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 그들의 마음과 몸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말로 하는 사람은 따로있고. 근데 저희는 굶어가는 사람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게 가장 중요한 거죠. 목 마른 사람한테 물 주는게 가장 급한 일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이라크가 석유를 팔아서 뭘 하는가에 대한 것은 우리의 아젠다 밖이예요. 우리 긴급구호단체들의 아젠다는 지금 당장 생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런데 치안이나 기타 여러 정치적인 문제로 우리가 가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죠. 도움의 손길을 방해하는 그 모든 세력을 없애는 것이 우리 일의 목표죠. 왜냐면 가장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거기에 우리의 도움이 가는 것이니까. 그게 평화라고 생각해요. 평화에 대한 정의는 각각 다르겠죠. 또 자기자신의 평화가 가장 중요할테고.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나만 평화롭다고 평화롭다고 할 수 있나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우리단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평화예요. 타인없이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것부터 평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다시 파병문제로 돌아왔다. 파병논쟁이 뜨겁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 아닌 개인 한비야의 의견을 물었으나, 그녀는 개인이 아니라 지금은 긴급구호팀장으로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니, 파병에 대한 입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를 피했다.그녀가 일하는 월드비전에는 구호단체는 인도적 차원에서 전쟁 자체는 반대하지만,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표명을 할 수 없는 내부 규정이 있다.

“파병이냐 아니냐는 논쟁에 앞서 적어도 3가지 시나리오는 나와야지요. 최악, 최선, 그리고 가장 가능성 높은 상황. 구호단체에서는 이렇게 일해요. 7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7가지는 안되더라도 3가지 상황은 놓고 판단을 해야죠.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각각의 계획 그에 대한 대응을 구체적인 안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하지 않겠어요? 파병한다면 전투병으로 보낼 경우와 아닌 경우, 각각 예상되는 문제점과 대처방안이 있어야지요. 또한 관련 정보들을 공개하고 서로가 가감없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해야죠. 모술에 치안이 정말 안전하다면, 안전한데 치안유지하러 왜 보내나요? 이런 말도 할 수 있어야하잖아요. 조금이라도 국제역학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이 좋던 싫던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겠지만 많이들 모를거예요. 만일 파병하게 되면, 나는 이라크에 가서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고민이예요. ‘당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치안유지하러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요청하지 않았잖아요. 임시적으로 이라크를 대표하는 과도정부는 노골적으로 다국적군이 오지 말라고 하고 있잖아요. 2차 구호사업하면서 매일매일 주민들을 만날텐데, 특히 아이들에게 저는 뭐라고 해야할까요.”

한비야 씨는 2차 구호사업을 위해 11월 초에 다시 이라크로 떠날 계획이다.

최현주 사이버참여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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